[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논객칼럼=김호경]

수상한 남자의 초호화판 파티

개츠비는 매우 수상한 사람이다. 이름도 불분명하다. 어떤 사람은 그가 "사람을 죽인 범법자"라 말하고, 어떤 사람은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을 나왔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독일 빌헬름 황제의 조카 아니면 사촌”이라 입방아 찧는다. 그 어느 것도 정확히 알 수 없음에도 사람들은 매일 밤 개츠비의 저택으로 부나방처럼 몰려간다. 그곳에서 초호화판 파티가 열리기 때문이다.

미국 동부 롱아일랜드 해변의 웨스트에그에 있는 개츠비의 저택은 40에이커(약 4만 9천평)의 넓이이고(32평 아파트 1532채를 깔아놓은 면적) 당연히 대리석 풀장과 멋진 정원이 있으며, 저택은 우뚝 솟은 탑을 지닌, 유럽의 고성(古城)을 닮은 최고급 럭셔리 주택이다. 하인(당시에는 ‘하인’이라는 표현을 썼다)도 여럿이다. 파티가 열리면 값비싼 음식들과 과일, 술, 와인 등이 넘쳐나고, 4인조 밴드가 아닌 소규모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연주한다. 방문객의 고급 차들이 넘쳐나 도로까지 5줄로 주차해야 한다.

초대장을 받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오는 사람, 지나가다가 불쑥 들르는 사람들도 많다. 개츠비의 하인들은 그들을 문전박대하지 않는다. VIP들과 어중이떠중이들이 어울려 파티장은 늘 시끄럽고, 사람들은 술에 취해 춤을 추고, 노래 부르고, 그러다가 밤이 이슥해지면 혹은 새벽녘에 운전기사가 모는 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간다. 아예 개츠비의 집에서 쓰러져 자고 가는 사람도 있다. 올빼미 눈을 지닌 사내도 그중 한 명이다. 그가 이 소설의 마지막에 던진 말은 ‘위대한 개츠비’의 모든 것을 집약해준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상류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들려준다.@김호경

‘남의 잘잘못을 따질 때’ 기억해야 할 것은?

대부호는 개츠비에 그치지 않는다. 롱아일랜드 해협을 건너 이스트에그에 사는 톰 뷰캐넌은 개츠비보다는 못하지만 시카고의 거부이다. 그는 예일대학을 나왔고, 미모의 데이지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톰은 데이지와 함께 남태평양으로 9개월 동안 신혼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돈이 많고, 데이지는 톰을 너무 사랑해서 그가 옆에 없으면 안절부절못한다. 그 이유가 정말 사랑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까?

닉 캐러웨이는 데이지와 6촌간이며, 톰과는 대학동창이다. 닉이 아직 어렸을 때 아버지가 들려준 충고는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남의 잘잘못을 따질 때는 언제든지 이 세상 사람들이 너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말은 이 소설의 첫 부분에 나오는데 이 말에 매혹되어 <위대한 개츠비>를 읽기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 과연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의문을 갖고 출발한다. 뷰캐넌이 먼저 등장하고, 그는 부자이고, 가식적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을 알아채기 때문에 그가 문제의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의문은 ‘개츠비라는 사람은 왜 위대한가?’라는 것이다. 그 의문의 답을 닉이 들려준다.

부클류 공작의 후손인 닉은 그럭저럭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하고,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중서부를 떠나 뉴욕의 증권회사에 취직한다. 6촌 여동생 데이지 부부를 만나면서 뜻하지 않게 사랑과 욕망의 대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간다. 때는 1차대전이 끝난 1922년 여름이다.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대상은 다름 아닌 여자

미국은 1776년 독립했을 때 13개 주의 연합체였다. 그런 미국이 언제 세계의 최고 강대국이 되었을까?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1차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난 후 미국을 얕보는 나라는 없었다. 국토는 넓고, 인구는 많고, 자원은 풍부하고, 기계의 발달로 산업은 나날이 발전하고, 그만큼 부자들도 늘어났다. 그 부자들 중에는 겸손하게 살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람도 있지만 흥청망청, 과시욕, 무분별한 사치에 매몰되어 몰락한 사람도 있다.

뷰캐넌과 개츠비는 그런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하기에 닉은 개츠비를 향해 처음에 “내가 노골적으로 경멸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깎아 내렸다. 그때만 해도 닉은 아버지가 말한 “남의 잘잘못을 따질 때는 언제든지 이 세상 사람들이 너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충고를 적용하지 않았던 듯싶다. 어찌 개츠비뿐일까! 예일대학을 졸업한 지식인 뷰캐넌은 아름다운 아내와 좋은 집에서 살면서도 자동차 정비공의 아내와 바람을 피운다. 남자는 돈이 많으면 반드시 바람을 피운다는 속설은 정말 맞는 것일까?

부호들의 어긋난 행태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빌붙어 고급 술 한잔을 얻어 마시고, 밤새 여자들과 춤을 추려는 욕망과 허영의 남자들은 세계 도처에 넘쳐난다.

작가 피츠제럴드는 미국인의 그 속물근성과 황금 제일주의, 허욕의 나락을 날카롭게 비판해 대호평을 받았다. 그가 이러한 소설을 쓸 수 있었던 데는 청춘시절의 쓰라림에 있다. 1919년, 각고의 노력 끝에 단편소설 하나를 써서 어렵사리 잡지에 게재했으나 단돈 30달러를 받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포기했겠지만 그는 절치부심하면서 여러 편의 소설을 썼고 세 번째 장편 <위대한 개츠비>가 발표되자 어마어마한 찬사가 쏟아졌다. 심지어 시 ‘황무지’로 유명한 T.S. 엘리엇은 “헨리 제임스 이후 미국 소설이 내디딘 최초의 일보”라고 격찬했다.

1945년에 제작된 영화 포스터

왜 개츠비는 위대할까?

이 소설의 장르를 굳이 분류하자면 연애소설이다. <폭풍의 언덕>이 고전판 사랑의 비극이라면 개츠비는 현대판 사랑의 비극이다. 시각에 따라서는 사회소설로 볼 수도 있다. 주인공 닉을 제외하고 모두 불행하고, 가식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행복한 척, 교양 있는 척 행동한다. 유려한 문체, 비교적 매끄러운 번역, 빠른 전개, 미국인의 심리와 일상은 매우 흥미진진하면서도 혀를 끌끌 차게 만든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류사회’라는 것이 무엇인지 TV나 영화를 통해 짐작만 할 뿐 실제로는 참여하기 어렵고, 들여다보기도 쉽지 않다. 만약 상류사회가 있다면 그들은 정말 매일 호화로운 파티를 즐기고, 멋진 승용차로 여행을 다니고, 요트로 바다를 유람할까? 그들은 도대체 그런 돈을 어디에서 모았으며, 어떻게 모았을까? 소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또한 가장 중요한 “왜 개츠비는 위대한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도 어렵다. 어찌 보면 부질없기도 하다. 개츠비의 모든 것이 차례차례 밝혀지면서 측은하다는 생각도 든다. 닉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란 여럿이 아닌 단 하나의 창문으로 바라보면 성공하기가 훨씬 더 쉽다.” 이 말처럼 개츠비가 사랑이라는 하나의 순수한 창문으로 인생을 보았다면 그토록 비참하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더 알아두기

1.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는 1896년 미네소타에서 태어나 1940년 44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위대한 개츠비>로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낭비와 방탕으로 인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장례식에는 여류작가 한 사람만 참석했다고 한다.

2. 그는 자신의 묘비에 새길 시 한 편을 썼다.

너의 책은 나의 서랍 속에 있을텐데

너의 머릿속의 어떤 미완성 혼돈은

위대한 운명의 여신 때문에

무(無)로 돌아갔다.

- 출처 : 삼성판 세계문학전집 42. 이가형(李佳炯) 옮김

3. 1922년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이라는 단편소설을 썼는데 이를 바탕으로 2008년에 영화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제작되었다.

4. 미국인의 현대적 삶을 탐사할 수 있는 소설은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아메리카의 비극>(An American Tragedy)이 걸작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능가한다고 볼 수 있다. 노만 메일러의 <아메리카의 꿈>(An American Dream)도 비슷한 내용을 다룬 소설이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N. 호돈의 <주홍글씨>, 나브코브의 <롤리타>,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등도 읽어야 할 소설이다.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는 샐러리맨의 일탈을 그린 소설이다.

5. 은밀한 사랑을 묘사한 소설은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있다. 나흘간의 은밀한 사랑을 다룬 짧은 소설로 1990년대 중반에 베스트셀러였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ews34567@opiniontimes.co.kr)도 보장합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