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청년칼럼=한성규]

나는 맛집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 코로나19로 오랜 유배생활 끝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뭘 먹고 싶냐고 토의가 시작되었다. 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진짜 아무거나 좋은데 좀 안 기다려도 되는 곳. 인터넷 검색이 시작된다. 최소한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중에 하나는 골라야 그나마 쉬어진다. 한식당이 제일 많아 바로 식당에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아 한식에 한 표를 날린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인터넷 검색이 시작된다. 한식은 종류도 많아 또 여러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탕, 찜, 구이, 볶음 등등 서서히 짜증이 올라온다. 내가 대충 하나를 찍으면 이제 각자 시식평을 읽기 시작한다. 나는 남들의 음식 평가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냥 어디든지 들어가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마음 뿐이다. 한 사람이 평이 좋은 식당을 고르면 다른 하나가 즉각 악평을 찾아낸다. 귀신같다.

나는 이제 배고픔에 지쳐 그냥 아무데나 가면 안 되냐고 울먹인다. 그 아무데나가 제일 힘든 답이라고, 너같은 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 아니냐는 핀잔이 돌아온다. 나는 역 주변 이라면 십중팔구 있는 김밥천국이라도 가자고 했다가 취향도 없고 교양도 없는 무식쟁이 취급을 받는다. 서로 음식그림을 돌려보고 품평이 이어진다. 잠자코 20여분을 더 기다리면 드디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리뷰를 단 식당으로 행선지가 정해진다.

픽사베이

결정장애와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가 만들어낸 맛집현상

결정 장애가 일반화 되고 실패를 유달리 두려워하는 한국인들은 결국 좀 더 많은 대중의 선택을 따른다. 특히 군대나 회사에서 욕을 많이 먹어본 사람들은 특히 더 심하다. 무엇보다 실패해서 욕을 먹지 않는 게 지상목표이므로.

그렇게 찾아간 리뷰 많은 식당은 당연히 사람들로 넘쳐난다. 다른 팀들도 우리와 비슷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기번호 155번 지금 몇 번이 들어갔냐고 물으니 방금 144번이 들어갔단다. 11팀만 나오면 된단다, 망할. 11명이 밥을 먹고 나올 시간은 나에게 11번 환생하는 만큼 억겁의 시간이다.

배고픔에 짜증이 밀려오고 각자 휴대폰을 꺼낸다. 나는 잠시나마 배고픔을 잊기 위해 핸드폰 게임을 시작한다. 30분이 지난다. 침묵과 배고픔을 견딜 수 없는 나는 편의점이라도 잠깐 다녀오려고 했다가 욕을 먹는다. 싸가지 없는 놈. 참을성 없는 놈. 어디서 성질을 부리냐. 저놈은 외국에서 살다 와서 그렇다 등등 온갖 비난이 쏟아진다.

시간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세시가 다되어가지만 아직 다섯 팀이 남아 있다. 나는 화장실 가는 척하며 뒷문으로 빠져나가 편의점으로 향한다. 배가 등가죽에 붙을 정도로 배가 고팠던 내게는 삼각김밥이 꿀맛이다. 참치라고는 손가락 한마디정도의 양밖에 들어있지 않은,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음식이다. 심지어 생수도 너무 맛있다.

대화가 불가능하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식당으로 돌아오고도 10분을 더 기다렸다. 배가 찬 나는 더 이상 짜증이 나지 않아 본래 모임의 목적이었던 대화를 시도한다. 한 시간이나 배고픔에 시달리던 지인들은 신경이 날카롭다. 도저히 대화가 불가능하다.

드디어 우리차례가 되었고 우리는 마치 큰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처럼 당당하게 식당 안으로 진입한다. 식당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 전에도 음식 이야기 말고 다른 대화가 전혀 불가능하다. 얼마나 맛있을지, 인터넷 사진과 같을지 기대와 설렘이 넘친다.

음식이 도착했다. 젓가락을 꽂으려는 내손을 누군가가 막아선다. 포토타임. 이게 뭐하는 짓이지, 하는 표정의 나를 앞에 둔 채 여기저기서 음식사진을 찍느라 난리다. 가만히 있지 말고 음식 한 젓가락 집어서 포즈를 취해보란다. 내가 음식을 입에 넣는 포즈를 취하자 미친 짓하지 말라며 못생긴 얼굴 집어넣고 젓가락에 들린 음식만 보여 달란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다른 주제의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얼마나 맛있는지, 역시 믿고 먹는 맛집이라는 둥 난리법석을 떤다. 배가 부른 내가 먹어보면 딱히 맛있지 않다. 아니 전혀 다른 음식점과 차이가 없다. 한 가지 차이라면 거기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시간 넘게 배고픔에 시달렸다가 환장한 듯이 음식을 입안으로 쑤셔 넣고 있다는 정도?

음식이 비워지고 대화를 시도해 보려 하지만 역시 가능하지 않다. 식당 여기저기서 눈치를 줘서 빨리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게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도 밖에 배고픔에 떨며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우리의 모임은 끝이 났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고 만나서 뭐 먹을까 30분 넘게 회의를 했으며 배고픔에 허덕이며 한 시간 넘게 기다렸으며, 맛집이라는 곳에서 허겁지겁 입에 음식을 쑤셔 넣고 쫓기듯이 나왔다. 그리곤 다음 모임 약속을 잡았다.

18년 전 일본도 딱 그랬다

18년 전 내가 일본에 살 때다. 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들이 일본에 대해 도저히 이해 못하는 게 하나 있었다. 음식점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는 것과 식당에서 음식 사진을 찍는 것.

18년이 흘러 우리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사회의 진보인가? 선진국의 모습인가? 배고픔이 싫고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음식 얘기만 하는 것이 싫은 나는 이런 식의 진보는 싫고, 선진국에 살고 싶지도 않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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