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논객칼럼=김인철]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Trientalis europaea var. arctica (Fisch.) Ledeb.

@김인철

봄꽃은 지고, 열매가 익어가는 6월 중순 가파른 숲길을 오릅니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형형색색으로 피었던 많은 봄꽃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숲은 진초록 일색으로 물들어갑니다. 기온은 섭씨 30도를 웃도니 한여름 뺨치게 덥지만, 일행의 발걸음엔 주저함이 없습니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폼에서 목적지에 한시라도 일찍 도착해, 목표한 바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읽힙니다. 1시간 반여 만에 해발 1,280m 높이에 도달합니다. 그리곤 한발 한발 천천히 내디디며 좌우를 살핍니다. 보석을 찾듯, 온 신경을 집중해 샅샅이 바닥을 훑습니다. “와, 찾았습니다.” “여기도, 저기도 있네요.” “자, 찬찬히 살펴봅시다. 뭐가 다른지.”

흥분한 목소리를 쫓아가니, 사초 더미 속에서 순백의 7각, 또는 6각 별들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크기는 새끼손톱만큼 작지만, 밤하늘의 별처럼 영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에 생성된 습지의 사초 더미 곳곳에 하늘의 별이 떼로 내려앉는 듯합니다. 이무기는 용이 되어 승천하고, 긴 몸을 뉘었던 구불구불한 도랑 사이사이에 별이 쏟아진 듯합니다. 2019년 7월 중순 남한 유일의 비로용담 자생지를 찾았던 ‘꽃쟁이’들이 꼭 11개월 만에 다시 또 강원도 인제군 서흥리 대암산 용늪에 올랐습니다. 비로용담과 더불어 남한에서는 오직 용늪에서만 자생하는 기생꽃을 만나기 위해서.

대암산 용늪 사초 더미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기생꽃. 6장, 또는 7장인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 보면 폭이 좁고 길쭉하며, 끝이 날카롭고 긴 특징을 보인다. 2020년 6월 12일 만났다. @김인철

 “6~7개의 꽃잎이 거의 낱장처럼 갈라지고, 각각의 꽃잎 끝이 더 날카롭고 길게 뻗는 특징을 보이네요.” “참기생꽃은 잎끝이 뾰족한 피침형인 데 반해, 기생꽃은 완만한 거꿀달걀꼴이네요.” “자생지 생태가 너무 달라요. 참기생꽃은 주로 산 능선의 응달진 바위틈에서 자라는데, 기생꽃은 습지 사초 더미에 뿌리를 내렸어요. 꽃 등 몸집도 기생꽃이 작아 보여요.”

지리산부터 가야산,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까지 비교적 높은 여러 산에 유사 종인 참기생꽃이 자생하지만, 유독 대암산 용늪의 종만 기생꽃이라 부르며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하는 데 대해 주마간산 격이나마 보고 느낀 생각을 현장에서 나눕니다. 천연기념물이자, 생태경관보전지역, 습지보호지역인 용늪은 안내원의 인솔 아래 짧은 동안 나무 통로 위에서만 관찰과 사진 촬영이 허용됩니다. 다행히 기생꽃은 통로 가까이 곳곳에 제법 풍성하게 피어 있습니다. 그 덕에 습지에 들어가지 않고도 통로에 엎드려 관찰하고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1997년 국내 제1호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용늪은 큰용늪(30,820㎡)과 작은용늪(11,500㎡)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현재 작은용늪은 복원 공사 중으로 아예 출입이 안 되고, 큰용늪만 사전 예약을 받아 최대 하루 250명까지 방문이 가능합니다.

대암산 기생꽃을 만난 지 사흘 뒤인 6월 15일 태백산에서 본 참기생꽃. 기생꽃이 한창 싱싱한 상태였던 데 반해 참기생꽃은 대개 지거나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개화 시기도 차이가 났다. 꽃 형태의 가장 큰 차이는 기생꽃에 비해 낱낱의 꽃잎의 폭이 넓어, 서로 겹치면서 둥근 별 모양을 만든다. @김인철
@김인철

기생꽃은 라틴어로 3분의 1피트, 즉 트리엔탈리스(Trientalis)란 속명에서 알 수 있듯, 전초가 10cm 안팎에 불과한 아주 작은 풀입니다. 봄꽃은 지고 여름꽃은 피기 직전인 6월 저 홀로 피는 꽃은 5~7장의 꽃잎과 1개의 암술, 7개의 수술을 갖췄습니다. 꽃의 크기는 지름 1.5cm 안팎. 달리 말해 중지(中指) 길이의 꽃대 끝에 약지(藥指) 손톱만 한 별 모양의 흰 꽃이 대개는 하나, 간혹 두 개가 하늘을 보고 달립니다. 영어 이름은 ‘아크틱 스타플라워’(arctic starflower), 즉 ‘북극의 별꽃’이니, 꽃 모양대로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이름은 유래가 아리송합니다. 그저 예전 기생처럼 예쁘다는 뜻으로 추정하지만 어디서건 속 시원한 답을 구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기생초(コツマトリソウ, 妓生草)란 일본명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일본 기생을 떠올리면 일리 있는 추론일 수 있습니다.

2016년 6월 15일 백두산에서 만난 참기생꽃. ‘북방계 식물의 보고’답게 백두산 일대에서는 남한에서 개별꽃이나 쇠별꽃을 보듯 참기생꽃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김인철
@김인철

기생꽃이나 유사 종인 참기생꽃은 전 세계적으로 시베리아 동부, 사할린, 중국, 몽골, 일본, 북아메리카 등 북반부 한대지방에 분포하는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입니다. 남한에는 빙하기 때 내려왔다가 빙하기가 끝난 후 비교적 기온이 낮은 고산지역에 겨우 살아남은 것으로 식물학자들은 분석합니다. 그러면서 여름철 최고 기온이 섭씨 15도 이하로 유지되어야 생존이 가능한데 기후변화에 따라 현 자생지들의 기온이 계속 오르면 현존하는 집단이 유지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2013년 6월 6일 설악산에서 만난 참기생꽃 군락. 비교적 사람의 손길이 덜 닿았기 때문인지 군락 상태가 양호하다.@김인철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호숫가 숲에서 2015년 7월 15일 만난 기생꽃. 꽃은 지고 열매를 맺고 있다.@김인철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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