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복의 잡설]

[논객칼럼=김부복]

한겨울에는 유도복을 입을 때마다 많이 껄끄러웠다. 웃통을 홀랑 벗은 채 ‘맨몸’에 도복을 걸쳐야 했기 때문이다.

넓은 도장에는 ‘난방시설’이라는 게 없었다. 웃통을 벗으면 소름이 돋고 살이 오그라들었다. 덜덜 떨면서 도복을 입어야 했다. 그 도복이 가끔 속을 썩이기도 했다. 전날 흘린 땀이 밤새 얼어붙어서 도복에 살얼음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조금 더 끔찍했다.

유일한 해결책은 ‘마찰’이었다. 도복을 입으면서 양쪽 끝을 왼쪽, 오른쪽으로 여러 차례 잡아당기며 ‘맨살’과 마찰시킨 것이다. 그 마찰로 ‘열’을 일으키면 몸이 약간 풀렸다.

그 다음 순서는 ‘맨발 구보’였다. 한겨울인데도 ‘맨발’로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뛰어야 했다. 조약돌을 잘못 밟아 발바닥이 터지는 경우도 생겼다. 어린 시절 학교 유도부는 ‘운동 환경’이 꽝이었다.

유도의 기술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많다. 그래도 키가 좀 작은 선수(?)의 경우는 주특기가 대체로 ‘업어치기’다. 조금 큰 선수는 ‘허리튀기’다.

이 주특기에 제대로 걸리면 꼼짝없이 ‘한판’으로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스듬하게 떨어져서 어깨 한쪽만 매트 바닥에 닿으면 ‘절반’이다.

그러나 ‘한판’이든 ‘절반’이든 충격은 ‘별로’다. ‘낙법’으로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몸이 빙 돌아서 매트 바닥에 떨어지는 모양만 그럴듯하게 보일 뿐이다.

픽사베이

충격이 큰 기술은 따로 있다. ‘조르기’가 그 가운데 하나다. 상대방의 도복 깃을 비틀어서 목을 조르거나, 팔로 휘감아서 조르는 기술이다.

목이 졸리면 당연히 숨을 쉴 재간이 없다. ‘숨통’이 아닌 ‘동맥’이 졸리면 피가 통하지 않아서 그야말로 ‘죽음’이다. 10초 정도를 견디기도 벅찰 수 있다. 그러면 버둥거리다가 ‘기권’, ‘항복’을 하는 수밖에 없다. 살벌한 기술이다.

‘항복’을 하는 방법은 손으로 상대방의 몸이나 매트 바닥을 두어 차례 툭툭 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조르기’를 풀어준다.

김모는 어느 겨울날에도 벌벌 떨며 운동을 시작했다. 그랬다가 상대방의 ‘조르기’에 당하고 말았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조르기’에 걸려든 것이다.

고통스러웠다. 곧바로 ‘항복 신호’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상대방은 공격하는데 정신이 팔렸는지 ‘항복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김모는 목을 계속 졸려야 했다. 상대방이 목을 풀어준 것은 김모의 몸이 축 늘어진 다음이었다.

김모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러고 나서 2분쯤 후였다고 한다. 맥없이 늘어져버린 김모의 팔다리와 가슴을 열심히 주물렀더니, “아야!” 하고 투덜대면서 눈을 뜨더라는 것이다. 김모가 눈을 뜨면서 발견한 것은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동료들의 표정이었다.

이 ‘조르기’ 기술이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에서는 또 다른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백인’ 경찰관이 ‘흑인’의 목을 팔이 아닌 무릎으로 짓눌러버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릎 조르기’다. 과격하게 짓누르면 목뼈가 부러져서 목숨을 잃기 십상인 듯싶은 무지막지한 기술이 아닐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관은 ‘8분 46초’ 동안이나 흑인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렀다. “숨을 쉴 수 없다”며 살려달라고 호소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의식을 잃은 뒤에도 ‘2분 53초’ 동안 무릎을 목에서 떼지 않았다고 했다. 분노한 미국 국민이 ‘시위’를 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국민을 ‘폭력배’로 규정, 불난 데 부채질까지 하고 있었다.

김모가 숨을 쉬지 못해본 고통은 잠깐이었다. 하지만 흑인 플로이드의 고통은 ‘8분 46초+2분 53초’나 계속되어야 했다.

그런데, 김모는 정신을 놓았던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평생 잊지 못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김모의 몸은 늘어지는 순간부터 갑자기 가벼워지고 있었다. 공중으로 둥둥 떠오르고 있었다. 이리저리 날아다니기도 했다. 양팔을 벌려서 방향도 바꿀 수 있었다. 그 기분이 홀가분했다. 황홀하고 상쾌했다. 방금 전까지 목이 졸려서 헐떡거렸던 고통 따위는 사라지고 있었다.

김모는 그러다가 “아야!” 하면서 일어난 것이다. 불과 2분 정도였다고 했지만, 김모에게는 한 시간은 넉넉히 된 듯 느껴졌다.

운동을 하다가 손가락과 발가락이 삐거나 부러진 적은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았지만 목이 졸려서 정신이 깜빡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래서인지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 ‘잠깐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이다.

플로이드도 긴 고통 끝에 저세상으로 향했을 때는 김모의 경험처럼 홀가분하지 않았을까 명복을 빌어보는 것이다.

 김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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