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시집 표지 /164쪽 / 값:10,000원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그는 흔하디흔한 풀이었다 이젠 산과 들 종일 헤매 다녀도 만나지 못한다 어렵게 복원했다는 몇 포기만 울릉도 어딘가에 겨우 있어 그것도 철조망 둘러놓았다

옛 정갈하던 그들의 터전, 그가 살던 군락지에 아파트 들어서고 밭이 통째로 사라지면서 그의 모습도 아조 자취를 감추었다 인간에 밀려난 것일까 인간이 보기 싫어 떠난 것일까

그가 울릉도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지구에서 아주 사라진다는 것 멸종이란 걸 두려워한 인간들은 뒤늦게 그를 희귀식물로 지정하고 옛 모습 복원해야 한다며 호들갑 떤다

울릉도에서 사라진 그가 뜻밖에 독도 바위틈에 나타났다 건강하고 풋풋한 얼굴로 노란 꽃까지 피웠다 오랜만에 그를 찾아낸 인간은 심 봤다며 소리 질렀다 그가 독도로 숨어든 속사연을 과연 알기나 하는지 몰랐다

- 「섬시호」 전문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희원하고, 삶과 자연을 노래하며 생태적 자연주의를 추구해 온 이동순 시인.  근 50년 시력(詩歷)을 지닌 시인이 신작 시집 『독도의 푸른 밤』을 펴냈다. 자신의 일생을 거는 심정으로 오로지 독도를 위한, 독도를 향한 헌시(獻詩)로 이번 시집을 꾸렸다고 했다.

『독도의 푸른 밤』은 그가 독도를 가슴에 품고 산 세월을 보여 준다.

시인은 날바다 새벽이면 절로 잠에서 깨어 큰 굿을 앞둔 무당처럼 독도의 혼령을 불러 모셨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독도는 수천 개의 다른 얼굴로 다가왔고... 어느 때는 한과 눈물에 젖은 얼굴이고, 어느 때는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얼굴인가 하면 어느 날은 풍상우로를 다 겪은 노인의 표정이었다. 그 수천 개의 독도를 껴안고 함께 울고 웃으며 시인 자신이 마치 독도가 된 심정으로 시를 써내려 갔다. 시집 『독도의 푸른 밤』은 명실공히 우리 땅 ‘독도’의 역사적·환경적·생태적 의미를 시로써 형상화해낸 문학 아카이브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독도에 딱 한 번 가 봤다. 모든 길이 가파른 비탈로 나 있었는데 나는 걷다가 가끔 기우뚱거릴 뿐 정작 독도의 심장에 닿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동순 시인이 혼자 말없이 두 팔 걷어붙이고 마침내 독도에 갈무리된 보물들을 채굴하는 데 성공했다. 시집 『독도의 푸른 밤』에는 조류, 어류, 식물류, 곤충류를 비롯해 지명, 지형, 인명 등 온갖 박물학적 자료로 넘실거린다. 이 많고 귀한 자료들을 시인은 어떻게 찾아낼 수 있었던가? 놀랍고도 감동적인 성과이다. 독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이토록 열정적인 시인에 의해 우리의 땅 독도는 마침내 시적인 심장을 갖게 되었다. 이 시집에 면면히 흐르는 것은 독도란 섬의 존재성과 거기서 살아가는 생명의 이야기인 동시에 빛나는 역사의식이다. 이 시집으로 독도는 드디어 한국문학의 품 안에서 외롭지 않게 되었다”(안도현 시인)

“시인 이동순은 항상 손끝, 손재주, 머리로 쓰는 시가 아니라 ‘온몸’으로 써 나가는 시를 쓰고자 했다. 그런 그가 오래전 독도에서 만난 괭이갈매기의 울부짖음을 시인 자신을 향해 던진 일갈(一喝)로 듣고, '무릇 사람이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진정한 삶의 일이란 비뚤어지고 잘못된 것을 원래의 바른 형태로 고쳐 나가려는 끈질긴 노력과 그 싸움의 과정이 아닐까 한다. 근본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줄기차게 교정(矯正)과 극복의 노력을 하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는 튼튼하고 건강한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다.'(시인의 ‘산문’ 부분)라는 깨침을 얻었던 것. 이후 그는 독도에 대한 방대한 자료 수집과 연구에 몰두하며 시로써 독도를 형상화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출판사 서평)

 

내 어린 날

아버지는 새벽에

라디오 크게 틀어 일기예보 들으셨다

종일 바깥출입 않는 분이

주로 들으시는 건

동해 대화퇴어장의 기상통보

 

오늘은 날씨 좋아 오징어 많이 잡히겠구나

강풍 때문에 출어가 위험하겠어

파도가 높아 힘들겠네

방바닥에 누운 채

아버지는 혼잣말로 중얼거리셨다

 

나는 새벽 잠결에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물고기의 행렬 보았다

오징어 꽁치 방어 연어 숭어

돌돔 벵에돔 개볼락

미끈하고 날렵한 놈들의 유영을 보다가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한순간 동해 물 다 빠지고

독도 부근 대화퇴어장 그대로 드러났다

물고기들 깜짝 놀라

더 깊은 바다로 숨어들고

개마고원처럼 드넓은 대화퇴 평원을

나는 아버지와 둘이서

한 줄기 바람 되어 달려갔다

 

독도가 바로

등 뒤에서 웃고 있었다

리만 한류와 쿠로시오 난류가

멀리서 달려와 반갑게 마주 얼싸안는 곳

얕은 바닥엔 기름진 퇴적물 많아

온갖 물고기 몰리는 곳

 

물 빠진 대화퇴어장은 잠결에서

내가 마음껏 뛰며 놀았던

어린 날 파도 소리 들리는 운동장이었다

아버지는 무덤 속에서

지금도 새벽 기상통보 들으실까

- 「대화퇴어장」 전문

 

시집 제1부는 섬기린초, 섬장대, 번행초 같은 독도의 식물들을, 2부는 슴새, 강치, 톡토기, 둥근성게 같은 독도의 생물들이 얼마나 많은 생물학적 가치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그려낸다. 3부에서는 독도에 깃든 역사적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4부에서는 독도를 빼앗으려는 일본의 야욕과 이에 동조한 군사정권의 만행을 고발한다. 특히 독도의 현주소가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짐작케 하는 3~4부의 시편들을 읽어 가다 보면 굿을 준비하는 무당의 심정으로 살았던 시인 이동순의 슬픔과 분노, 고뇌와 의지가 읽혀진다.

 

나라가

전혀 돌섬 잊고 있을 때

거기 제집처럼 마구 드나들며

전복과 강치 훔치던

섬 도적 몰아낸 용감한 사내

 

그것으로도 모자라 일본까지 뒤쫓아가

울릉도 독도는 조선 땅이니

두 번 다시 침노해서 행패 말라며

크고 당당한 꾸중으로

섬 오랑캐 간담 서늘케 한 사내

 

꾸중만으로 모자라

그곳 태수와 조목조목 따져서

확인 문서까지 기어이 받아 온 사내

울산 사람 박어둔과 더불어

두 번이나 현해탄 건너갔던 불굴의 사내

 

이런 장한 일 하고도

격려와 칭찬과 포상은커녕

제 나라에서 오랏줄에 손발 묶여 끌려가

온갖 죄목으로 이리저리 욕 당하고

죽도록 매 맞아 귀양 간 사내

- 「안용복」 부분

 

”독도의 독은 독립이란 뜻의 독(獨).한 번도 완전독립 이뤄 보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올바른 독립 이루라는 바로 그 뜻.이번 시집을 엮으면서 시종일관 머릿속에 머물러 있었던 화두는 바로 이것이었다“(저자의 말)

#작가 소개=1950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했다. 경북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등단었다. 시집으로 『개밥풀』, 『물의 노래』, 『지금 그리운 사람은』, 『철조망 조국』,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 『꿈에 오신 그대』, 『봄의 설법』, 『가시연꽃』, 『기차는 달린다』, 『아름다운 순간』, 『마음의 사막』, 『미스 사이공』, 『발견의 기쁨』, 『묵호』, 『멍게 먹는 법』, 『마을 올레』, 『좀비에 관한 연구』, 『강제이주열차』, 평론집으로 『민족시의 정신사』, 『시정신을 찾아서』, 『한국인의 세대별 문학 의식』,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 『우리 시의 얼굴 찾기』, 『달고 맛있는 비평』, 한국가요사를 다룬 『번지 없는 주막』 등 각종 저서 56권 발간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백석 시인의 작품을 수집 정리하여 『백석 시전집』(1987)을 발간하고 민족문학사에 복원시켰다. 신동엽창작기금,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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