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단상=권혁찬]

[논객단상]

@오피니언타임스

“저기 횡단보도에 좀비 걸어가네 거북처럼 쭉 빠진 일자목으로...느릿느릿한 걸음걸이 신호가 빨간불 바뀐 줄 모르고 폰만보며 걸어가네~~~~”

(이동순 시인의 ‘좀비에 관한 연구-스몸비')

스마트폰(smart phone)과 좀비(zombie)가 만들어낸 신조어 스몸비(smombie).

시인은 균형감각이 마비돼 스마트 좀비화(化)한  현대인들을 질타합니다.

요즘 스몸비는 시인이 질타한 수준에서 한단계 더 레벨 업(level-up), 빠르게 진화 중입니다. 고열의 사우나 찜방에 스마트폰을 들고 들어가는 건 예사고, 온탕에도 폰과 함께 과감히 입수(入水)합니다. 입수파도 각양각색. 폰을 든 채 탕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가는가 하면, 욕탕용 플래스틱 바가지를 물위에 띄워놓고 그 속에서 폰을 만지작댑니다. 방수 폰이라면 탕 속에 빠져도 문제될 게 없겠지만... 그래도 보는 이로선 ‘저래도 돼나’ 아찔(?) 합니다.

며칠 전 지하철 공중화장실에서 일. 중년 남성이 ‘줄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 폰을 소변기 위 좁은 공간에 올려놓고는 일을 봅니다. 스마트 폰도 즐기고 배변도 편한 자세로 해결하는, 색다른 광경이었습니다. 볼 일은 시원하게 봤을테지만 모양은 좀 사나웠습니다.

“...고요해 고요해 고요해~ 모두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스마트폰만 골똘히 골똘히 들여다보는 좀비~열차에서 내렸지만 폰만 보며 몰려나가는 좀비떼~청각은 죽었고 메마른 시각만 남았네...”

시인이 '지하철 스몸비'에 가한 일침입니다.

이즈음 지하철 전동차에선 대부분 이어폰을 낀 채 게임하거나 기사,영상 따위를 봅니다. 열이면 아홉 스마프 폰에 '마스크 쓴 코'를 박고...

잡소리 들리지 않아 좋을 겁니다. 이쯤되면 ‘군중 속의 고독’, 그것도 ‘아주 철저한 고독’입니다. 스마트 폰이 SNS세상에선 소통의 극대화를 가져다줬을지 모르나 현실에선 철저한 고립과 단절을 가져왔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뭇 대중에 싸여 살면서도 내면의 고립감으로 번민하는 사람들을 가르켜 ’고독한 군중‘이라고 설파했던 게 1950년대.  두어세대나 지난 지금, 진화하는 스몸비를 보노라면 70년 전 대학자의 예지력(?)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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