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노조의 파업이 벌써 120일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방송사상 이렇게 길게 파업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그 사이 5명이 해고됐고, 100명 이상이 회사측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27일에도 3명의 기자가 추가로 징계에 회부됐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될지 알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무한도전을 비롯한 일부 인기프로그램은 장기간 결방되고 있다. 이번 파업은 우리나라 방송사상 보기 드문 씁쓸한 기록을 남길 전망이다.

뿐만 아니다. KBS 새노조와 YTN 노조도 파업을 진행중이다. 연합뉴스와 국민일보 등에서도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들 언론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업은 기자와 아나운서 프로듀서 등 언론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방송의 ‘멘털리티’를 책임지는 직종의 종사자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이는 이번 파업이 급여나 상여금 등 처우에 관한 불만이 아니라 방송의 존재이유,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다시 묻는 파업임을 뜻한다. 그래서 정부 여당의 일부 인사들이 ‘정치파업’이라고 매도하는 이유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정권홍보 수단으로 취급해 오던 언론사들이 지금 모두 파업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파업은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이 낳은 결과이다.  이명박 정부는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사장에 투입해 왔다. 그 과정에서도 많은 무리가 동원됐음은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무죄판결에 의해 입증됐다. 그 결과 방송이 얼마나 얼룩졌는지는 지난 몇 년간의 과정이 증명해준다.
 
이명박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그토록 공을 들인 것은 언론의 지형이 과거와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신문이 여론을 주도한다고 인식돼 왔으나, 요즘 같은 영상시대에는 방송이 주도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니 정부의 영향력이 큰 몇몇 방송사의 경우는 정권주도세력의 입장에서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말년이 된 지금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방송파업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태도이다. 박 전 대표는 침몰상태의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꿔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고, 오는 12월 실시될 대통령 선거에 나설 새누리당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그녀가 새누리당의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이제 완전히 ‘박근혜당’으로 탈바꿈했다. 

현재까지의 언행으로 미뤄보건대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방송사의 파업에 대해 상당히 냉소적인 시각을 가진 듯하다. 그녀는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인 적이 없다. 기자들이 물어도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기자가 보기에 그것은 파업을 방관하는 태도는 아닌 것 같다. 파업하는 기자와 아나운서 등 방송인들에 대한 사측의 강경한 태도를 방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마도 그녀는 지금 벌어지는 방송사의 파업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은 듯하다. 그저 단순히 ‘불법파업’이라고 치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파업이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을 결산하자는 요구임은 애써 외면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녀의 이런 태도는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시절을 다시 기억하게 한다. 박 전 대통령은 18년동안 재임하면서 언론에 대해 대체로 불편한 존재로 취급했고, 특히 1972년 유신 선포 이후에는 언론을 일방적으로 짓눌렀다. 특히 1975년에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기자들이 대거 쫓겨나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이후 이 나라에서 언론다운 언론은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태도를 볼 때 아버지 시대에 벌어졌던 그런 대량해고 ‘참극’이 다시 벌어지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파업이 ‘불법파업’이니 이를 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몰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올바르고 원칙있는 해결이라고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속 마음을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현재까지의 태도로 미뤄볼 때 이런 추론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참으로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필연이겠지만, 하필 이런 것을 닮는지 얄궂은 일이다. 박 전 위원장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박 전 대통령 시절의 ‘엄동설한’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기억하고 싶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태도를 보고 그 시절이 자꾸 연상되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 나라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렇지만 그런 기여가 인정받고 평가 받으려면 우선 그 시절에 저질러졌던 반민주적인 통치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그의 딸인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진정으로 민주적인 가치와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오는 12월 대통령선거에서도 표의 확장성을 기대할 수 있다. 과거 박정희 정부의 반민주적인 통치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표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방송사 파업에 관한 그녀의 태도는 그런 자세변화 여부를 가늠하는 유력한 잣대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고집이 센 듯하다. 과거 사학법 개정때 납득할 수 없는 태도를 끝까지 버리지 않더니 지금은 냉소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모두가 불행해지기 쉽다. 언론사 파업은 더욱 길어지고, 희생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득표력도 더 이상 커지기 어렵다.

그러니 이쯤 해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좀더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그것이 자신에 붙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얻는데 유익한 방안이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우울했던 기억을 조금이라도 불식시키는 길이다. 그녀에게 3중으로 유익한 셈이다. 그런데 과연 그녀는 이렇게 유익한 방책을 선택할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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