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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는 집[허승화의 요즘론]
허승화 | 승인 2020.07.01 09:00

[청년칼럼=허승화]

‘나는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잃어버렸던 자다’

이 문장은 정약용 선생이 쓴 수필, <수오재기>에 등장하는 구절로 정약용 본인이 스스로를 평가한 말이다.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 글을 보고, 나는 위인으로만 알던 정약용이 이런 말을 쓴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전 교과과정을 통틀어 이 구절에 제일 꽂혔다.

<수오재기> 속 ‘수오재(守吾齋)’라는 이름은 ‘나를 지키는 집’이라는 뜻으로, 정약용의 큰 형님 정약현이 자신의 집에 붙인 이름이다.

큰 형님은 왜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귀양살이 중이던 정약용은 어느 날 문득 의문을 갖는다.

‘나와 굳게 맺어져 있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가운데 나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 그러니 굳이 지키지 않더라도 어디로 가겠는가? 이상한 이름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을 거듭하던 정약용은 이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 이름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논객닷컴 자료사진

정약용은 이어서 ‘천하 만물 가운데 지킬 것은 하나도 없지만, 오직 나만은 지켜야 한다. (..) 오직 나라는 것만은 (..)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다가도, 잠시 살피지 않으면 어디든지 못 가는 곳이 없다.’라고 쓴다. 그에 이어 ‘나는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잃어버렸던 자’라고 고백한다. 과거를 보고 공직에 나가 돌아다니다 귀양살이를 시작한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오직 나의 큰 형님만이 나를 잃지 않고 편안히 단정하게 수오재에 앉아 계시니, 본디부터 지키는 것이 있어서 나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라고.

어쩌면 전 국민이 반쯤 귀양살이 중인 것 같은 지금 시점에, 그가 깨달은 바를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나는 모두가 움츠러든 이 시국에 집값이 솟구치는 현상이 참 재밌다. 한국인의 내 집에 대한 집착이야 원체 유난스럽지만, 집에 대한 집착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집값이나 물질이 아니라 스스로라는 것을 우리는 자주 망각한다. 우리가 ‘나를 지키는 집’에 사는 게 아니라 소유물로서의 ‘집’을 지키는 '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유사 귀양살이 중인 지금, 물질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유배지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정약용 선생처럼 우리도 나만의 수오재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잘못 간직하고 있다.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를 자주 들어가면서 본 바에 따르면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우울감이나 권태감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아진 것 같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신호다.

나 역시 어느 때보다 더 오랜 시간 집에 머물게 되었다. 요즘 나는 집에서 매일 넷플릭스를 틀어 무엇이라도 본다. 그러나 재미있어서 보는 건 아니다. 딱히 할 게 없어서 본다. 나는 이제야 영상을 보는 것 외에 딱히 집에서 할 여가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보기만 하는 것도 나를 잃어버리는 것에 가깝다.

나를 지키는 집이 되려면

여태까지 나는 집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집이지만 늘 손님 같았다. 나는 집에서 홀로 있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충전할 수 없었다. 어떨 때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꾸짖기 위해서 집에 숨어들기도 했다. 분명히 나 역시 나를 잘못 간직했다 잃어버렸던 자다.

집에 머물며 우리가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잃어버린 나'를 되찾아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적기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결국 나를 구하는 것은 나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나를 용서하는 것이 1번이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으로 이 시간을 채우면 집 나간 내가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를 지키는 집'을 만들 일만 남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나를 지키는 집’이란 마음속의 공간일 수 있다. 우리의 영혼에게도 쉴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그게 여가라고 생각한다. 그 여가는 어딘가에 가서 특별한 활동을 하며 멋지게 노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 집안일을 하는 것이나 단순 노동을 하는 것, 일기를 쓰거나 아주 쓸 데 없는 일을 저지르거나 필사를 하거나 요리를 하는 것, 게임을 하는 것도 마음에게 쉼을 선사한다면 훌륭한 여가가 된다.

모두 어떤 형태로든 나만의 ‘수오재’를 갖게 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마음의 쉼을 주기도 한다. 이 시국에 각자 영혼을 단단히 지키는 법을 연습하고 그 노하우를 온라인을 통해 타인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온전한 일상이 언제 돌아올지 불투명하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 '그럼에도 삶이 지속된다'는 것을 안다. 부디 이 시국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키는 여름이 되길 바란다.

허승화

영화과 졸업 후 아직은 글과 영화에 접속되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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