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훈의 아재는 울고 싶다]

[청년칼럼=하정훈]

아는 동생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오래 쉬고 있던 나날 중에 간만에 아는 지인들을 만나게 되어서 조금은 상기되었다. 결혼식 당일이 되어 양복을 입으려 옷장을 열었는데, 양복이 쭈글쭈글했다. 미처 확인해서 다리지 않은 것이었다. 목덜미는 땟국 자국이 남아있어 입기가 도저히 그랬다.

'요즘은 결혼식에 가는 남자들 양복 안입기도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프에게 옷을 코디 받았다. 캐주얼하게 입고 결혼식장에 갔다. 오랜만에 가는 결혼식. 솔직히 뷔페가 너무 기대 되었다. 뷔페 먹을 생각에 어제부터 설렜다. 식장에 도착하고 역시나 정신없다. 이렇게 사람 많고 아는 사람은 누가 올지 모르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뻘쭘하다. 신부가 아는 동생이어서 어서 가서 사진찍고 "축하해~" 인사를 건네야 하는데 혼자 아는 척 하긴 좀 그렇다.

올 것 같은 지인 S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너 어디니? 언제쯤 오니? "

" 저 도착했어요. 오빠 "

일 할 때 같이 일한 동생여자앤데 이런 분위기 속엔 무척이나 기대된다.

신부와 간단히 사진을 찍고 " 축하한다"는 말을 드디어 건넸다.

S한테 오늘 누구누구 오니? 물어봤더니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구랑 누구누구 온다고 했다. 무척 오랫만에 보는 친구들이었다. 식이 진행되고 신부의 동생이 울면서 축사를 하고, 신부가 노래를 부르고, 뻔하게 진행되지 않는 씩씩한 결혼식이었다. 내가 아는 신부의 모습이 잘 기획된 결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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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을 마치고 지인 여럿이 모였다.지방에서 올라온 '만나고 싶은' 친구와 '만나기 싫은' 동생도 있었다. 예전에 잠깐 동업식으로 일을 같이했다가 틀어진 동생이었다. 친하지도 않았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동료들과 같이 동업했다가 일을 하는 방식, 인성, 성격 모두 맘에 들지 않았던 동생이었다. 결국 오래 못가고 중도붕괴(?)됐고, 내 결혼식 때도 당연히 초대 안했다. 평생 만날 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만났다. 너무 민망했다. 일단은 이야기 소재가 내 결혼식으로 넘어갈 때 무척이나 민망했다. '아... 이런 거구나~'. 결혼식 '초대', '안초대'가 이리 사람을 민망하게 하는구나. 근데 그 녀석한테 더욱 놀란 건 이 녀석이 무척 잘생겨진 거다. 살도 좀 빠진것 같고, 헤어는 저거 드라마 무슨 남자주인공 헤어 느낌이고...나보다 한참 나이도 어린 풋내기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양복 말쑥하게 입어 조금은 젊은 사업가 느낌도 난다. 재수없고 감탄하고 그랬던 것같다.

그런데 다른 남자 동료들 보니 다 양복입고 왔다. 나만 캐주얼 복장의 학생차림에 쿠팡에서 2만원 주고 산 샤오미 백팩 가방을...(결코 안들고 오려고 했는데, 지하철에서 책도 좀 보려고 메고 왔다가 지하철 무인보관함이 꽉차서 결국 가져오고 말았다.) 아내가 무척 싫어하는, 가성비 높은 샤오미 2만원짜리 가방. 2만원 가방 메고 학생 차림으로 30대 중반 아저씨가 식장에 결국 온 것이다. 별로 그런 거에 신경 안쓰는 나 인줄 알았는데 그 순간 화장실로 도망가고 싶었다. 내가 지금 어떤 꼬라지로 있는 건지, 괜찮은건지 재차 확인하고 싶었다.

먹는 자리로 이동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미웠던 동생에겐 내가 결혼식 초대도 못하고 했으니, 내가 더 잘 챙겨주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그 남자 동생은 자그만한 사업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28살정도 밖에 안된 동생인데 벌써 사업가라고? 속으로 '엄청 무시한 놈'(?)이었는데, 그놈의 비전마저도 무시했었는데 사업의 대표자라고? 많이 놀랬다. 나는 지금 실업급여 받고 있는 노땅 아저씨인데...허허 참...

이런 저런 무슨 일해? 그런 안부들이 오가고 내 딴엔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속으로 좀 고민했다.

" 형은 요즘 뭐해요? "

" 어...형 진로탐색! 나이 먹어도 꾸준히 진로탐색이란다 "

나름 재치있고, 우스갯소리로 넘길 키워드를 생각한 게 '진로탐색'이었다. 같이 온 여자 동료애중엔 만삭인 동료도 있었다.

" 오빤 아직 계획없어요? "

" 형은 아직 없어요? "

" 딩크야~! 형 "

나름 쿨하게 이야기한 척했지만, 나중에 여유되면 날 거라고,일단 안 낳을 수도 있으니 딩크라고 못박했다.

점점 기분이 안좋아졌다. 그래도 예전에 같이 일했던 추억꺼리를 이야기하며 조금은 분위기가 업이 되었고, 나도 자연스러워졌다. 동료들은 밑에 내려가서 커피를 먹자고 했는데, 다행히 와이프랑 약속이 잡혀있었다.

휴 이제 끝났구나~ 싶을 때 쯤 아는 남동생이 그랬다.

" 형! 차 가져오셨어요? 주차권은...받으셨어요? "

" 아니... 형 지하철...타고가면 돼 "

나를 챙겨주기 위한 별의미없는 말이었을텐데, 다들 차를 가지고 왔고 나만 대중교통으로 온 것 같았다. 아니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인데 '왜캐' 이런 자리에선 그렇게 소외감을 만드나 모르겠다. 젠장할~.

빨리 그 자리를 떠났다.아내를 만나고 솔직하게 오늘의 '더러운 기분'을 이야기했다.

" 아놔... 정장을 입고 갔어야 했어, 에라이! "

아내가 그랬다. 자기도 결혼식 가면 기분 안좋아진다고. 그래서 명품가방을 몇 달 전에 산거라고. 아내가 명품 가방사고 지금까지 빚으로 매달 카드값 갚을 때 솔직히 이해가 안갔다. 여자들의 로망이라는 명품가방의 가치도 솔직히 이해 안가고 잠깐잠깐 외출용으로 보여주기식으로 드는 것 같은데 내 입장에선 할부 값 여전히 갚는 그런 상황이 이해가 안됐다. 그런데 오늘 내가 그런 상황을 겪어보니 내 자신 속좁은 무지 속에 갇혀있었다고 잘못을 인정해야 했다. 나라도 결혼식 가면 명품가방 들어야겠다고 생각됐다. 그런 거였구나. 결혼식은 최대한 잘난 모습으로 가야하는구나, 생각됐다. 와이프랑 소주를 마시면서 하루를 돌아보았다. 이거 뭘까? 낭패감, 공허함 이거 다 뭐지?

오늘 나를 기분 안좋게 한 키워드들을 적어보았다. 직업, 자동차, 캐주얼, 샤오미가방, 2세...생각을 좀더 곰곰히 해보니, 사실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다 공허하고 의미없는 짓이었다. 아는 동생이 멋진 사업을 하던, 자동차를 끌던, 명품가방을 들던 그냥 그 친구의 삶이고 난 내 삶이 있는 거였다.

사실 그 친구들하곤 몇년에 한번 볼까말까하다. 아니 솔직히 평생 안만날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지금 만족하며 살고 있고 진지하게 내 진로를 탐색중이었는데, 이런 자리 가서 내 자신을 싫어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 친구들은 멋진 양복을 입었지만, 힘들게 하기 싫은 노동을 이어가는 그런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니다. 그런 생각과 상상을 통해서 내 자신의 우위적 삶을 생각하는 것 자체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비교는 정말 의미없는 것이었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잘 안되는 ' 비교하지 않는 삶'. 나이를 먹으니 점점 그런 모임에 안가고 싶단 생각이 든다. 축의금도 앞으로 그냥 계좌이체를 할까나? 그렇게 살면 더 혼자 고립되어지겠지? 비교 안하고 안당하고 살고 싶은데... 나이먹으니 점점 외로워지는 시간들이다.

 하정훈

 그냥 아재는 거부합니다.

 낭만을 떠올리는 아재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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