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 칼럼=석혜탁]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석혜탁 촬영

키타가와 에미의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를 다시 폈다. 아래 문장과 조우한다. “회사원에 대한 동경 따위 없었다. 하지만 열을 올릴 만큼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어느새 주위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구직 활동에 애썼다.”

요 근래 몇 년 사이에 발간된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식의 ‘유사성’을 느끼게 될 때마다 굉장히 곤혹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지원 동기’를 작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역이겠는가. 취준생 후배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한 군데라도 더 많이, 조금이라도 더 유망한 기업에 선택받는 것이 우리에게 최고의 지위에 오르는 일이었다”는 말은 또 어떠한가.

꿈, 적성, 가치관...다 영화 같은 소리가 됐다.

일단 옆에 있는 친구 녀석보다 더 좋은 기업에 ‘간택’받는 것, 이로써 우리의 인정욕구를 충족하는 것만이 지상 과제가 되었다.

책에 점점 빠져든다.

“몇십 년쯤 뒤에 나도 저런 모습일까. 후줄근한 양복을 입고 좀처럼 만족하기 어려운 액수의 돈을 벌기 위해 계속해서 편도 두 시간 가까운 거리를 만원 전철에 실려 가야 하는 것일까.”

음…솔직히 대부분은 ‘저런 모습’이 된다. 물론 요즘에는 ‘저런 모습’의 자리에 가는 것조차 이전보다 더 어려워졌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이 책에서 기억에 유달리 계속 남아 있는 대화가 있다. 

“옛날에 되고 싶었던 거? 뭐더라. 맨 처음에는 축구 선수였나. 너는?”
“나는 영화감독.”
“와, 어른이었네. 난 초등학생 땐 만화영화밖에 안 봤는데.”

소설 속 화자는 남의 꿈을 들을 기회가 좀처럼 없어졌다며, 옛날 이야기여도 작은 비밀을 공유한 것 같은 마음에 적이 두근거렸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는지 자문해본다. 남의 꿈은 물론이거니와 나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체크해본 적이 언제였더라...

언제부터 꿈을 이야기하며 ‘실현 가능성’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을까.

자꾸 정색하며 현실적 요소를 운운하면, 꿈을 꿈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지 않을는지.

실현이 되든 안 되든, 꿈은 꿈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꿈...

꿈?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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