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논객칼럼=임종건]

21대 국회가 여당인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 모두를 차지한 일당 국회로 시작됐다. 이같은 파행적인 국회 원구성은 13대 국회 이후 33년 넘게 지켜져 온 법사위원장의 야당 배정 관행을 민주당이 배척한 데 원인이 있다.

국회의 입법 활동은 법사위의 체계심사와 자구심사를 거쳐야 성립된다. 법사위의 이런 기능은 악법을 막는 효과도 있다.그러나 정파적 목적으로 법안에 대한 논의를 지연 또는 폐기시키는 악용 사례가 많기는 했다.

그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이 관행은 여당이 가급적 야당의 합의를 얻어 법을 만들겠다는 아량의 표시였고, 여당의 그런 아량은 국민들에게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효과도 있다는 점에서 여당에게도 득이 되는 관행이다.

국회의사당 전경 @오피니언타임스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다 해서 여당이 만들려는 법의 제정을 저지하지도 못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대 국회에서 야당 소속 위원장의 법사위가 어떻게 운용됐는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20대 국회의 최대 쟁점이었던 이른바 개혁 입법을 다룬 법사위에서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과정에 여야 간에 실랑이는 있었으나 여당이 2+4 체제를 만들어 패스트트랙에 올리고 나자 야당은 속수무책이었다.

야당이 법사위를 이용해 여당의 발목을 잡은 것도 민주당이 야당이었을 때 지금의 미래통합당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 않았다는 것이 필자의 기억이다. 그 점에서 민주당의 21대 원구성 협상 자세는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는 개구리'의 모습이었다.

21대 총선에서 177석을 얻은 민주당은 20대 국회처럼 범여권 정당에 지원을 요청할 필요도 없이 자당 및 위성정당 의석으로 무슨 법이든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다. 거기에 범여권 정당이 가세한다면 법사위원장에 야당의 할아버지가 와도 막을 수 없다.

그렇다고 야당이 장외투쟁을 할 형편도 아니다. 국민들이 신물을 느끼기 때문이다. 단상점거 등 물리적 저지를 하려 해도 20대 국회에서 무더기 기소의 빌미가 된 국회선진화법에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법사위원장을 차지하며 민주당이 내세운 명분은 ‘일하는 국회’이다. 코로나19로 나라가 위기상황이므로 올 들어 세 번째인 35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이달 중에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미 두 차례 추경을 통해 국민들에게 공돈의 맛을 들인 터에, 갈수록 더 큰 돈을 풀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그 결과 나라 빚이 올해 중 전년보다 100조원 이상 늘어 840조원에 이르고, 가계와 민간기업의 빚도 이미 3월 중에 국내총생산(GDP)의 배가 넘는 3,866조원에 이르렀다는 통계도 있다.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여야를 막론하고 나라살림 걱정보다는 돈 풀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선거에서 표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년 국회의 예산 심의가 쥐꼬리 삭감으로 끝나는 것은 야당의 삭감요구에 대한 체면치레용이다.

이번의 국회 추경 심의는 그나마 야당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추경심의를 위해 6월 29~30일 이틀 동안 일제히 열린 상임위는 1~2시간 사이에 건성으로 심의를 끝내고 오히려 원안보다 3조원을 늘려 통과시켰다.

민주당의 돈 풀기 정치가 경기활성화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추경의 편성과 집행이 필수적인데, 야당의 견제와 비판이라는 최소요건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라 그마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21대 국회의 첫 법안 심의인 추경심의는 여당 일당의 국회가 무엇을 결과할 것인지에 대한 불길한 전조처럼 보인다. 20대 국회에서 여당이 밀어붙인 개혁법안의 결과에서도 이미 나타난 징조다.

정치개혁의 명분이었던 연동형비례제는 21대 총선을 통해 코미디로 판명되었고, 검찰개혁도 권력의 눈엣가시인 검찰총장 찍어내기와 내편 구하기의 방편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이왕 이런 식으로 국회를 운영하려면 미국에서처럼 1석이라도 의석이 많은 정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차지해 입법의 결과에 책임을 지게 제도를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주장은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 할 때 더 당당할 듯한데, 미래통합당에 그런 배포가 있을까?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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