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세상읽기]

[논객칼럼=이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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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검언유착 의혹사건을 검찰총장의 지휘 없이 독립적으로 수사하게 되었다. 한 주 이상을 끌었던 추미애 법무무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은 윤석열 총장이 추 장관의 지시를 따른다고 발표함으로써 일단 정리되었다.

당연한 귀결이다. 윤 총장은 그동안 언론의 절대적 ‘비호’를 받으면서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었지만,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동안 추미애 장관 멱살을 잡고 쥐어흔들면서 윤 총장을 뒷받침해온 언론이 머쓱하게 되었다. 경기장의 심판관이어야 할 기자들이 한쪽 편을 드는 플레이어로 뛰면서 경기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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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하지만 상식적으로 아는 유럽의 유력지 이야기부터 시작하겠다.

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유럽에서 중도 성향의 권위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중도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중도가 아니다. 공공연히 반미, 반패권, 반세계화를 표방하고 있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색깔있는 진보 매체로 보이는데 유럽 사회에서는 중도로 규정한다.

르 몽드는 국제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문제제기로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 민주주의, 평등, 박애, 환경보전 등에 천착한다. 그래서 진보지로 읽히는지 모르겠다.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 석학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 노암 촘스키, 하워드 진, 이냐시오 라모네, 프랑스의 미셀 푸코, 알랭 바디우, 알랭 투랜, 자크 사피르, 영국의 에릭 홉스봄, 인도의 반다나 시바, 슬로베니아의 슬라보예 지젝 등이 필진으로 참여해 세계문명사의 줄기를 잡아주고 있다. 우리 눈에는 진보적 학자들로 보이지만, 사실은 문명의 지성일 뿐이다. 학문과 예술은 기질적으로 비평적, 혹은 진보적 성향을 띤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손쉽게 편향된 진보학자로 규정해버린다.

영국의 ‘더 타임즈’와 ‘가디언’,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스위스의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 등도 유럽 대륙의 대표적인 권위지들이다. 이들 매체는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깊이있는 사상적 담론으로 세계 양심을 이끌고 있다. 월남전, 미국의 아프간 침공 등을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고,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의 민주화를 이끌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고발했다.

특히 영국의 ‘가디언’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 프로이센과 프랑스 양 진영을 모두 공정하게 취재해 명성을 얻었다. 영국의 이익과 배치되는 남아프리카 개입 전쟁에 반대했다. 수에즈 분쟁 때에도 군사행동에 반대하는 논전을 펴 국가적 이익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인류보편적 가치에 충실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래서 미국 중심의 국제 뉴스와는 구분된다. ‘세계의 창’으로서 미국과 유럽, 중국, 러시아 등 정치·경제적 역학관계는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아랍, 중남미 등 제3세계의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접근해 방향을 제시한다.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IMF, UN, NATO 등 국제기구에 대한 심층 진단과 분석도 내놓고 있다.

유럽 사회의 보수지라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보수와 성격이 다르다. 보수 진보 상관없이 세계의 진실과 양심에 귀를 기울인다. 세계화 이후 약육강식의 경제 생태계가 강화되어가는 추세에도 그 깃발은 빛나고 있다. 신문산업이 사양산업이라고 해도 선정적 기사가 아닌, 진실 추구의 논조로 건강성을 견지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없음@오피니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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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비하면 전통 보수지라는 조중동을 비롯한 우리 언론은 어떤가. 한마디로 쪼잔하고 가볍고 천박하다.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균형있는 논조이며, 일등신문이며, ‘세상을 바꾸는 창’이라고 말하는데 무슨 근거로?

눈 앞의 이해에 따라 국민을 갈라치고, 이간질하고, 분열시키고, 편파성과 왜곡까지 서슴지 않는다. 자기 편의에 따라 일면의 사실을 멋대로 뻥튀김하거나 축소하거나 왜곡하면서 특정 세력과 이익을 공유한다. 한결같이 냉전적이고, 대결적이며, 반평화적이다. 70여년 권위주의 정권시절 지배해온 분단 구조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이익을 나눈 결과일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보수언론, 혹은 언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근래는 더하다. 마치 뒷골목 패거리들이 편 갈라 싸우며 악담을 쏟아내는 수준이다.

어떻게 저렇게 이익 중심의 정파적 보도를 쏟아내면서 균형잡힌 시각과 전통있는 권위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신문이 특정 정파의 선봉이 되어서 전사로 나서는 모습은 보수의 가치나, 권위지라는 위치를 스스로 모독하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보수 대 진보의 이분법적 구도 아래 배제하고 수용하는 갈라치기의 보도 태도는 한마디로 신문을 보는 자체를 혐오스럽게 한다. 특정 정파의 전사로 나서면서 분열과 이간질의 보도 태도는 근원부터 신문을 불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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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조국 전 법무장관 임명 과정의 언론 보도와 지난 4.15총선 전, 채널 A 이 모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 사이의 보도 태도에서 한국 언론 수준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보도는 먼 훗날 한국 언론사의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되돌아보기도 지겹지만 먼저 '조국 사태' 보도부터 보자. 조국 전 장관의 자녀가 고교 재학 중 조 전 장관 지인의 도움으로 특혜, 혹은 불법으로 명문대에 들어갔다는 혐의를 받았다.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은 학부모 자녀들이 외고나 자사고에 진학하는 비율이 높고, 부모나 친구 부모 도움으로 스펙 쌓기가 쉽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불공정 논란이 불거졌다. 사모펀드를 통해 불법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는 혐의도 도마에 올랐다.

자녀 교육에 관한 한 대한민국 학부모 치고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 강남 3구에 살지 못한 것만도 억울한데, 대입 과정에서 사회적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불공정한 세상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대상이 조국으로 상징화되었다. 모든 언론이 그렇게 몰아갔다.

그러나 한꺼풀 벗기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특혜 입학이라는 것도 그 당시의 교육 제도를 적극 활용했을 뿐, 구조비리나 부정에 가담한 것과 거리가 있다. 거기다 더많은 부정과 비리, 특혜와 불법을 저질러온 세력들이 비판하니 국민들이 점차 이게 아닌데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저의가 있다고 본 것이다.

표창장 하나로 그처럼 먼지털기식 수사를 하면 안털릴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데 역설적으로 몇 달을 두고 검찰과 언론이 합작해 파헤치고 들쑤시고 조지는 수사와 기사를 보고, 국민은 비로소 검언유착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조국이 법무장관으로 와서 공수처 신설 등 검찰개혁을 단행하는 것을 저지하고자 무차별 수사를 벌였다고 본 것이다. 검찰과 언론이 이익을 공유하는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는 실체도 알게 되었다. 기존의 검찰제도가 그들에게는 특권을 향유하는 좋은 자산이 되고, 보수야당에게도 큰 이익이 된다. 국민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안중에 없다. 구세력이 총집결해 궐기했으니 그것은 일견 성공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시민정신이 깨버렸다. 문재인 정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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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A기자가 수감 중인 경제사범에게 “유시민을 칠 비리를 달라,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달라”고 윤석열 검찰총장 핵심 실세와 꾸몄다는 이른바 ‘정치공작’ 의혹은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 ‘정치공작’은 4.15총선을 어떻게든 파탄내 문재인 정부를 쓰러뜨리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검찰개혁을 막고,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동기 부여가 작동한 것이다.

그런데 휴대폰과 녹음 파일이 나오고, 여러 혐의가 포착되었다. 혐의를 입증할 증거들이 쏟아져나와 수사가 복잡할 것이 없는데 검찰총장이 여러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것은 수사 ‘방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이 소환조사에 불응한 '피의자(혹은 혐의자)‘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적극적인 수사의지를 보이자 윤석열 총장이 대검 감찰부, 인권부 등에 진상조사를 지시하고, 채널A 기자의 진정을 받아들여 기소여부를 논의할 전문수사자문단을 구성토록 조치했다. 이 사건 지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검찰총장 본인 스스로 약속을 뒤집은 이런 행태를 보고 누구나 의아해할 것은 당연했다. 이를 지켜보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본래대로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하라고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그런데 세칭 유력 언론이 검찰총장 편에 서서 일제히 추미애 장관을 공격했다. 수사를 방해하는 태도가 여실히 보였다. 간단명료한 것을 복잡하게 만들어 본질을 흩뜨려놓았다. 복잡한 허구는 진실을 가두는 가면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꼼수들이 무위로 돌아가고, 검찰총장은 법무부의 지시를 따르겠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전폭적으로 윤석열 총장을 지원해준 한국의 언론은 뭐지? 긴 얘기 할 것이 없다. 싸움의 당사자로 뛰어들면 특정 세력의 패거리로 전락할 뿐, 언론이라고 말할 수 없다. 유력지이며, 권위지이며, 전통 언론이라는 매체가 특히 그렇다. 그렇다면 그동안 쌓아온 명예를 어디서 찾지?

일방적으로 추미애 장관 멱살을 잡는 보도 태도는 어떻게든 검찰 개혁을 막겠다는 전략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검찰이 개혁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그 폐해가 막대하고 심각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언론 스스로 잘 알 것이다.

문제는 사회적 공기이며 정의를 외치는 기자들이 진실 추구를 위한 감시를 포기하고, 스스로 권력의 한 파당(派黨)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과거의 기자와 현재의 기자가 너무 다르다. 언론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기에는 그 문제가 심각하다. 쓰레기 같은 기자라는 이름의 ‘기레기’, 구더기 같은 기자라는 이름의 ‘기더기’라는 조롱과 야유는 그들 스스로 저지른 행태의 반영이다.

필자는 우리의 유력 언론이 제 자리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소한 서구의 권위지 한두 개 쯤은 우리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진영에 상관없이 진실을 보도할 수는 없을까. 비틀고 배배꼬고 왜곡하고, 때로는 조작하는 따위의 일에 침을 뱉을 수는 없을까.

언론 선배 이영희 교수는 “언론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정부도 아니고, 나라도 아니며, 다만 진실”이라고 했다. 르 몽드도 신문 제작의 가치를 진실에 두었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이계홍

   현 세종포스트 주필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서울신문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

   용인대 겸임교수,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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