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나의 달빛생각]

[청년칼럼=이루나]

얼마 전 컴퓨터를 교체했다. 전에 쓰던 노트북이 5년이 넘어가니 마음대로 꺼지며 말썽을 부린다. 노트북의 작은 화면에 지쳐 있던 터라 화면이 큼직한 올인원 형태의 PC로 교체했다. 부팅 속도도 매우 빨라졌고, 저장 공간도 몇 배는 늘어났다. 모든 게 맘에 들지만 아쉬운 게 하나 있다. CD 플레이어가 없다. 설계 기획 단계에서 이미 CD는 고려대상이 아닌 모양이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책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음반 CD들을 바라본다. 최근 꺼내 들어본 적이 없어 먼지만 가득 쌓여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학창 시절을 보낸 90년대 후반이 CD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MP3라는 신기한 도구가 나왔지만, 얼리어답터들의 전유물이었고, 음반은 CD로 사서 듣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밀리언셀러란 말처럼 인기가수의 음반이 백만 장이나 팔리던 시절이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서 밀봉된 비닐을 조심스레 뜯어내면 마치 즉석복권을 긁을 때처럼 긴장이 된다. CD 알판이 깨진 게 없는지 조심스레 살펴보고 북클릿도 열어본다. 공들여서 화려하게 찍은 가수의 사진과 가사가 빼곡한 북클릿을 넘기는 손맛이 짜릿하다. 이제는 음악을 들을 차례다. '기스'가 나지 않게 가운데 홈 부분을 조심스레 누르고 꺼내야 한다. ‘딸깍’하는 경쾌한 마찰음과 함께 반짝이는 CD가 손에 잡힌다.

픽사베이

부모님을 1년 가까이 졸라 생일선물로 산 일제 CD 플레이어에 CD를 조심스레 집어넣는다. ‘위잉’하는 기분 좋은 진동과 함께 CD가 세차게 돌아가고 투박한 이어폰으로 음악 소리가 퍼져 든다. 감수성 충만한 사춘기에 만들어진 음악 세계는 누구도 방해할 수가 없다. 각자의 취향에 맞춰 음악 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서로의 수집 반 리스트를 자랑하는 일도 잦았다. 20년 전에도 CD 가격이 만 원은 넘어갔고, 학생들에게는 비싼 취미였다. 군것질과 버스비를 아껴가며 용돈을 모았고, 음반 가게에 들르는 날은 세상을 다 가진 듯 Flex 하는 날이었다. 동네마다 단골 가게가 있었고, 사장님과 안면을 트면 비매품인 가수 포스터도 얻을 수 있었다. 학창 시절 음반 CD 구입은 가장 큰 소비였고, 기쁨이었다.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이제 음원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자유롭게 고르고, 블루투스로 연결된 무선 이어폰으로 듣는다. 오늘은 어떤 노래를 들을지 고민하면서 신중하게 CD를 갈아 끼우는 의식은 사라졌다. 인기 추천 리스트 터치 한 번이면 전 세계의 최신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난 아직 CD를 산다. 스트리밍 사이트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음원이지만 굳이 번거롭게 CD를 산다. 동네 음반 매장이 다 없어져 이제 인터넷으로 사야 한다. 좋아하는 해외 가수의 앨범은 통관번호를 넣고 번거롭게 직구를 해야 한다. 힘들게 구한 CD 음반이지만, MP3로 변환해서 휴대폰 메모리에 넣어둔다. 비효율의 극치다. 이제 난 음악을 사는 게 아니다. CD 포장을 뜯을 때의 그 짜릿한 손맛과 설레임, 옛 추억을 사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아직도 CD 음반은 꾸준히 발매된다. 물론 언젠간 CD 기술의 수명도 다하고 가수들도 모두 외면할 때가 올 것이다. 에디슨의 축음기 이후로 다양한 음향 매체와 기술들이 등장했고,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CD 이전에는 LP, 테이프 세대가 있었고, 이제는 MP3를 거쳐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이르렀다. 음악의 본질은 변함이 없으나, 어디에 담겨서 어떻게 전달되는가에 따라 사람이 느끼는 추억과 감동이 달라진다. 난 CD를 최고의 기술로 손꼽진 않는다. 분명 디지털 시대에 무겁고 불편한 옛 기술이다. 다만 CD가 좀 더 오래 버텨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PC에서도 CD 플레이어는 사라져 버렸지만, CD를 원하는 사람들이 어딘가 남아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얼른 책장 구석 CD 음반에 켜켜이 쌓인 먼지부터 털어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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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나

달거나 짜지 않은 담백한 글을 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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