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송의 어둠의 경로]

[청년칼럼=서은송]

사랑 :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사랑에 대하여 말하기에 앞서,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사랑’의 대상에 있어 사물과 사람 간의 경계가 없다. 사람이 사물을 사랑할 수도 있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이건 ‘아끼고 소중히 여기다’라는 감정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사랑의 산물인 인간이 고유하게 가지는 욕망 또한 사랑이라는 위대한 굴레 속에 이루어져 있다. 설사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폭군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얻고자 하는 욕망이 튀어나온다. 사랑은 이렇듯 행위와 정서를 아우르는 개념의 성격이 강하다. 단순히, 사람과 사람이 서로 좋아해 사랑하는 심리적 차원의 개념을 벗어나 적극적 행위 개념 또한 포괄하고 있다. 제아무리 의식 없는 사물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사랑에 대한 욕망이 진행되는 순간부터 그 사물의 존재는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결국 사랑이란, 근대적 개인에 의해 이뤄지는 정서 및 상황을 아우른다.

궁극적 그리움과 기다림에 기반을 둔 대상에 대한 긍정의 마음이 연애시의 특성이다. 이러한 특성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그리움’과 ‘기다림’을 존재하게 하는 이별적 근원이 필요하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한 쌍이다. 사랑과 죽음이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에로티즘은 타자에 의한 지향이며, 타자를 향한 배려로부터 싹튼다. 그것은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자기를 죽이는 태도이며, 관계의 복원을 통해 자신을 타자에게 편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여기서 시와 에로티즘의 상관관계가 분명해진다. 시적 발상은 오브제에 대한 갈망이나 대상 속으로의 편입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시는 시인과 대상이 한 몸을 이루는 형태로 쓰인다. 이러한 교감운동에는 사랑, 즉 에로티즘이 숨어있다. 그리하여 시는 우리를 영원한 기다림에 이르게 하고, 사랑에 이르게 한다. 에로티즘을 떠올리는 순간, 상식적으로 성적 자극이나 충동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로스란 언제나 타나토스의 다른 얼굴이다. 시인의 눈빛은 아름다움 속에 깃든 근원적 슬픔을 채굴하는 눈빛이다.

꽃의 모양새에서 사랑이 사람에게 주는 가슴의 통증을 읽거나, 나무의 나이테를 인간의 삶의 빗금으로 비유하는 ‘사랑을 통하여 슬픔이 채굴되어진 시’가 대표적인 연애시의 특징이다.

가슴 언저리가 화끈거려 짚어보니, 진달래 염통 부위가 아직도 따스하다 꽃도 무엇에 가슴이 데었는지 달뜬 얼굴이다 저 고칠 수 없는 질병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나무가 어둑어둑 제 몸 안에 나이테를 긋는다 내 관자놀이 욱신거릴 때마 다 내 안에도 빗금이 새겨진다 얇은 잎새 위에 노을이 묻어 벌겋다, 그걸 꽃인 줄 잘못 알았다

-「꽃노을」 전문

이 시는 상상과 연상의 힘이 대상에 투사되어 ‘사랑’의 감정으로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진달래’와 ‘나무’의 메타포어가 이 시에서 사랑의 대표적 예시로 굵직하게 드러난다. 시인으로 상징되어지는 누군가의 화끈거리는 가슴의 진동이 진달래 속으로 투사되어 달아오른다. 시 속에서도 화자는 직설적으로 “저 고칠 수 없는 질병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을 넘어 이별에 대하여도 생각할 수 있다. 사랑을 질병이라 말하는 것에 대해 질병과 사랑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질병이란 ‘몸의 온갖 병’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띄고 있다. 시인이 사랑을 질병이라 말하는데 있어서는 그 사랑이 결코 유지되지 못했음에 대하여 깨달을 수 있는데, 이는 현재로서 가슴이 아프지만 극복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슬픔과 그로 인하여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현되어진다.

시인은 꽃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나무에 자신을 투사한다. 나무에게 있어 나이테는 1년마다 하나씩 생기는 자신의 나이에 대한 기록이다. 시간의 흐름이 나무에 새겨지는 형태를 다시금 자신에게로 끌어오는데, 결코 쉽게 끌어오지 않는다. “내 관자놀이 욱신거릴 때마다”, 시인은 가슴을 넘어 머리까지 욱신거려온다. 한 번씩 머리가 아플 때마다 그의 안에도 빗금이 새겨짐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기억하는 것이다. 사랑을 통하여 누군가를 기다리고, 설사 그 기다림의 대상이 달라진다고 하여도 결국 사랑하는 자신은 몸 안에 나이테를 긋듯 사랑을 통한 통증의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굴레에 대한 시인의 자의식이 가장 많이 나타난 문장이 바로 마지막 문장이다. 꽃인 줄 잘못 알았다는 시인의 표현은 끊임없이 대상들에 대하여 사랑했지만, 결코 자신이 생각한 ‘진정한 사랑’이란 여전히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사랑시’라고 따로 정의되는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랑의 염원이 대자연적으로 나라일 수도, 잃어버리거나 빼앗긴 국가일 수도 있기에 대상에 국한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사랑을 내포하고 있는 시의 경우는 모든 독자들이 해석할 수는 없어도 공감할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닌다. 하물며 가장 원초적인 성에 관련하여 접근하였을 때도, 무성욕자 또한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를 사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완벽한 해석을 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모든 영역으로 ‘사랑’은 존재한다. 더욱이 재미있는 사실은 시인은 시를 통하여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지만, 이 또한 일차원적으로 ‘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사랑은 한 겹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시를 사랑하는 시인이 자신이 시 속에 들어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품는 과정을 통하여 ‘연애시’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 이러한 연애시를 읽은 독자들은 그 시속에서 파생된 각자마다의 관념적 해석으로 자신의 사랑을 다시금 그리워하고 되새김질한다.

누군가는 그 이름을 불러 자신에게로 와 꽃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꽃이 되기도 한다. 쓰이는 순서와 불리는 방식이 다를 뿐 이 세상에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은 존재함으로써 그 자체로 사랑이 되어진다.

 서은송

 제1대 서울시 청소년 명예시장

 2016 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인권위원회 위원,한양대  국어국문학 석사과정

 뭇별마냥 흩날리는 문자의 굶주림 속에서 말 한 방울 쉽 게 흘려내지 못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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