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정주의 좌충우돌]

[논객칼럼=맹정주]

2009년 6월 24일 강남구가 개최한 교양 강좌에서 백선엽 장군님은 강연을 하셨다.

"우리나라는 한 치의 땅도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국군과 유엔군이 피를 흘린 댓가였다. 피를 흘리지 않았으면 얻을 수 없었다"고 강조하셨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 우리는 동맹국을 잘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세계 최강의 미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적을 이룬 것"이라고 힘 주어 말씀하셨다.

코엑스 대강당을 빈 틈 없이 메운 1500명에 가까운 청중들은 노(老) 장군의 강연을 경청했다.

필자(오른쪽)가 강남구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백선엽 장군과 차담하는 모습 @맹정주

그 분의 일생에서 후인들에게 귀감이 안 되는 게 없지만, 특히 6.25 한국전쟁 전후 그분의 활약은 역사에 남을 일이었다.그 중에서 다음 세가지는 우리 현대사의 방향을 바로 잡은 대 사건이었다.

1950년 8월, 국군과 유엔군은 전 국토의 약 8%만 남겨 놓은 상태에서 경북 칠곡 다부동 전선에서 인민군과 절체절명의 일전을 벌여야 했다. 만약 여기서 패배하면 대구가 함락되고, 부산까지 밀리게 돼 있었다. 미군은 국군에게 계속 후퇴하면 자기들도 전선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알려왔다. 다급한 상황이었다. 백 사단장은 후퇴해 내려오는 부대원들을 앉혀 놓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밀린다면 우리는 바다에 빠져야 한다. 저 아래에 미군들이 있다. 우리가 밀리면 저들도 철수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끝이다. 내가 앞장 서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 그는 권총을 빼 들고 적군을 향해 뛰어나갔다. 부대원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백선엽, 중앙일보 간).

이것이 세계 전사상 유례가 없는 ‘최후의 사단장 돌격’이었다. 그는 약 8000명의 국군으로 인민군 3개 사단 2만 여명의 총공세를 한달 이상 막아내고 승리했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이 전투로 전세가 역전됐다. 백 장군의 다부동 전투 승리가 나라를 구한 것이었다.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은 북으로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그의 부대는 평양에도 1착으로 입성했다.

비상시엔 비상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지금 위기의 대한민국에도 이런 리더십이 탄생하기를 고대한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 '군과 나' 표지

두 번째는 1948년 여순반란사건에 연루돼 걸려든 전 대통령 박정희 소령을 살려낸 것이다. 백 장군님이 당시 상황을 직접 들려주셨다. 백선엽은 육군 정보국장이었다. 명동에 있던 옛날 증권거래소 건물 3층에 그의 사무실이 있었다. 박정희 소령은 그 건물 지하 감방에 수감돼 있었다. 박 소령은 사형 선고를 받고 10 여일 후면 사형이 집행될 처지였다. 어느 날 퇴근 무렵 박 소령의 면담 신청을 받았다. 백선엽 국장은 박정희 소령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만나 본 적은 없었다. 그는 면담 신청을 받아들였다. 박 소령은 두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백선엽 국장의 방에 들어왔다. 가무잡잡하고 헬쓱한 얼굴에 계급장을 뗀 군복 차림이었다. 박 소령은 한번 살려달라고 했다. 그의 눈에 눈물이 보였다. 백선엽 국장은 그렇게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필요한 절차를 밟은 후 박정희 소령은 형집행정지처분을 받고 살아 났다. 백선엽 국장은 그를 문관으로 채용해 생계를 이을 수 있게 했고, 후에 군에 복귀한 박정희가 준장, 소장으로 진급할 때 그의 전력이 문제 되자 보증을 서서 진급을 도와줬다. 백선엽 장군은 박정희 대통령의 은인이었다. 만일 그때 백선엽 국장이 박정희 소령를 살려내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1953년 5월 백선엽 육군참모총장은 콜린스 미 육군 참모총장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워싱턴에서 과거의 전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휴전 회담 대표를 같이 했던 버크 해군 제독은 휴전이 되면 한국의 장래가 매우 위험하다면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 한국의 장래에 대한 보장을 받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백 장군은 콜린스 참모총장에게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면담을 주선할 것을 요청했다. 콜린스 총장은 처음엔 난색을 표했으나 백 장군의 강한 설득으로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면담을 주선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난 백 장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아이젠하워는 아시아 국가와 방위조약 체결은 매우 드문 케이스라고 하면서 결국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그 후 한미간의 협의를 거쳐서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됐다. 1953년 10월이었다. 그야말로 ‘고래와 새우’의 동맹이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이 조약의 체결로 한국민은 누대(累代)에 걸쳐 큰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랬다. 지난 70년간 한반도에서 전쟁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적은 국방비로 나라를 지킬 수 있었고, 경제 발전에 매진해 오늘날의 번영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정부들어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사사건건 김정은이 눈치를 보고, 대북 제재를 완화하지 못해 안달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우리나라의 통일을 막은 중국과 지나치게 친하게 지내려 하고, 한일 관계도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전략에 참여를 요청해도 미적거리고, 한미연합훈련도 축소, 연기하고 있다. 아직까지 한미방위비 협상도 타결이 안되고 있다.

2년 쯤 전에 “앞으로 주한 미군이 철수할 것 같습니까?”라고 여쭤본 적이 있다. “정부가 계속 귀찮게 하고, 성가시게 하면 그럴지도 모르지” 라고 하셨다. 장군님은 찾아뵐 때마다 나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미군이 떠날까봐 한 걱정이었다. 주한 미군은 ‘맥아더 원수와 작전을 같이 했던 지휘관 중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장군님을 극진히 모셨다. 명예 8군사령관으로 추대했고, 때 마다 장군님을 따뜻하고 깍듯이 모시는 것 같았다. 한국에 부임하는 미 고급 장교들은 그가 쓴 책, From Pusan To Panmunjom(‘군과 나‘의 영문판)을 읽고 부임 인사를 와서는 책에 싸인을 받는 게 관례였다. 행사 때 백 장군님이 계시면 연설은 ’존경하는 백 장군님‘으로 시작하는 게 또 하나의 관례라고 했다. 실제로 미군 행사에 참석해 보니 한미연합사령관이 그렇게 연설을 시작하고 있었다. 미군에게 그는 ’살아 있는 영웅‘이었으나 그가 구한 나라 한국은 크게 달랐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군 고위 간부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해 왔는 지 되돌아 보면 알 것이다. 이명박 정권 때 정부는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그를 명예 원수로 추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흐지브지 되었다.

고 백선엽 장군 분향소 @맹정주

백 장군님은 쓸쓸히 가셨다. 그가 구한 이 나라의 시스템이 무너져 내리고 국가의 정체성이 심각히 훼손돼 나라가 망가져 가는 것을 보면서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으랴. 코로나바이러스19 때문에 면회가 금지되었다. 설사 코로나19가 아니었더라도 지금의 이 나라 현실을 볼 때 방문객이 있다고 해도 얼마나 됐을까. 이 나라의 좌파들은 장군님의 간도특설대(間島特設隊) 근무경력을 문제 삼아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택도 없는 이야기다.

그는 1943년부터 1945년까지 간도특설대에 근무했다. 김일성의 소위 독립운동가들은 이미 1940년 이전에 소련 연해주로 빠져나갔다. 백 장군님이 이들과 맞부닥칠 일이 없었다. 김일성 집단은 주로 주민들을 상대로 식량을 약탈하고 노략질하던 마적단 같은 자들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다수 언론은 조사해보지도 않고 좌파들의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하여 여론을 증폭시키고 있다. 언론이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

백 장군님이 돌아가시자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백선엽 장군과 같은 영웅 덕분에 한국은 번영한 민주공화국이 됐다“며 애도하는 성명을 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백 장군 유족에게 직접 조전을 보냈다고 한다. 미 국무부도 성명을 내고 “한국 최초의 4성 장군으로서, 6.25전쟁에서 조국에 대한 그의 봉사는 한 미 양국이 오늘날까지 간직해온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한 싸움의 상징이었다”고 했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도 애도 성명을 냈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백 장군은 미국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과 같은 한국의 아버지”라고 했다. 제임스 셔먼 전 한미연합군사령관, 빈센트 브룩스 전 사령관, 존 틸럴리 전 한미연합사령관, 로버트 에이브럼스 현 주한미군사령관 등 모든 미군 사령관들이 한결같이 고인을 추모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백 장군은 그의 조국을 위해 봉사했고, 한미동맹을 위해 크게 이바지했다“며 “백 장군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했다.

그런데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그리고 대통령은 한마디 공식 입장이나 애도 성명이 없었다. 이 나라의 정부와 집권당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거기다가 국가보훈처는 장례식 다음 날 공식 홈페이지에 백선엽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명시했다. 이 나라가 왜 이러나? 정말로 절망이다.

고 백선엽 장군 조문 행렬 @맹정주

보도에 의하면, 백 장군님 별세 후 광화문 이승만광장에 청년 단체들이 차린 시민분향소에 1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 사실이 조그마하나 위안이 되고 있다. 시민들의 애국심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이제 이 희망의 불씨를 계속 살려 나가야 할 것이다.

백선엽 장군님! 사정이 이러했습니다. 하지만 편히 가십시오. 국민이 깨어나면 나라가 다시 잘 될 것이요, 깨어나지 못하면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얼마 되지 않아서 국민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일어나 싸우지 않겠습니까!

 맹정주

  전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장

  전 국무총리실 경제행정조정관 

  전 강남구청장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ews34567@opiniontimes.co.kr)도 보장합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