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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그림자를 들어라![박정애의 에코토피아]
박정애 | 승인 2020.07.30 09:50

[논객칼럼=박정애]

너도 말하라,

가장 마지막 사람으로서 말하라,

너의 말을 하라

 

말하라

그러나 아니다를 그렇다와 가르지 마라.

너의 말에 의미를 부여하라

그것에 그림자를 드리우라.

 

그림자를 충분히 드리우라,

그것에 충분히

......

파울 첼란의 ‘너도 말하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구사일생한 그는 수용소의 비참한 실상을 말하라고 절규한다.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까지 그 말에 충분히 그림자를 드리우며 말하라고, 그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이들을 붙들어 세운다. 차마 들을 수가 없어서 돌아서는 독자를 멈춰 세운다.

아우슈비츠 @픽사베이

하지만 어떠한 비참한 경험도 그렇게 충분히 그림자를 드리우며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미투’ 열풍이 불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과 평등한 위치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가부장제적 잔재가 드넓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고 위계에 의한 서열이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서발턴’을 아는가? ‘서발턴’이란 계급, 연령, 젠더, 지위 등에서 종속된 존재를 의미한다. 이 서발턴 연구를 심도있게 해 왔던 ‘스피박’이라는 여성 학자는 오랜 연구 끝에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는 비극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발턴 여성은 언어의 이중구속으로 인해 더욱 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과부희생을 들고 있다. 이 관습은 힌두교 전통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던 것은 아니었다. 이 의식은 식민과 탈식민이라는 역사 안에서 영국 제국주의자들과 인도 민족주의자들 사이의 '이데올로기 전쟁'을 통해, '전통'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서구 휴머니즘 담론 vs 인도 민족주의’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과부희생 폐지의 정당성이나 여성의 선택권 옹호 양쪽 중 하나를 인정하거나 부인하는 담론 경합에서 그 당사자인 여성의 목소리는 배제되어 있었다.

이처럼 서발턴 여성은 자신의 언어를 타자들이 대신해 주는 상황에 처해 있었기에 어떤 언어로도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없게 된다. 말할 수도 없는데 제대로 들어주는 이들도 없는 것이 서발턴 여성들이 더욱 더 자신을 말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주체로 작동하는 것 같지만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 역사, 섹슈얼리티, 언어 흐름들의 거대한 불연속적 네트워크의 소산으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서발턴 여성의 말을 온전히 객관적인 입장으로 듣지 못한다. 그렇기에 더 충분히 날카로운 귀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녀의 그림자를 듣기 위해 오감을 열어야 한다.

서발턴 여성이 진정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꾸 말하라고 다그쳐서도, 왜 말 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해서도, 그녀의 말에 야유를 보내거나 혹은 그녀의 말을 왜곡해서도 안된다.

그녀가 4년을 참고 견뎌야 했던 그 지난한 시간, 그리고 드디어 말하기로 결정하고 자신이 당한 것들을 세상에 드러내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고통스런 과정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이렇게 용기를 내는 그녀들로 인해 미래의 여성 서발턴들이 좀 더 분명한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초석이 다져질 것이다. 4년이 아닌 단 한 번의 추행에도 가해 당사자에게 잘못을 지적해줄 수 있는, 그리고 그가 멈추지 않을 때 세상에 즉각적으로 알릴 수 있는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다져갈 수 있게 그녀들의 말을 경청해주어야 한다.

충분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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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희생:남편이 죽었을  때 남겨진 부인이 남편을 화장한 장작더미에 올라가 자신을 불태우는 제의.

 박정애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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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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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장마 2020-07-31 20:55:20

    너도 말하라, 너의 말을 하라, 말하라.
    표현의 자유가 있음에 우리 모두 너의 말 듣게 되리라!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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