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논객칼럼=이호준]

온천으로 유명한 P까지 간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인근의 사찰에 취재하러 갔다가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숙소를 구하려고 들른 차였습니다. P는 도시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지만 온천 덕에 한 때 불야성을 이뤘던 곳입니다. 전에 한 번 간 적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낯설었습니다. 한 번 갔기 때문에 더 낯설었습니다. 옛날 그 이름이되 옛날의 그곳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적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썰렁했습니다.

다른 계절만큼은 아니어도, 온천은 여름에도 사람들이 꽤 많이 찾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작전상 소개(疏開)라도 된 마을처럼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 흔하던 관광버스 한 대 없었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몇몇 음식점과 가게는 문을 열었지만 드나드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민으로 보이는 노인 몇 이 나무그늘에 앉아 있는 게 사람이 있는 풍경의 전부였습니다. 곳곳에 ‘임대’라는 쪽지가 붙어있었고 몇몇 빈집은 잡초에게 영토를 내주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온천 경기가 하락 길에 접어들었다는 걸 감안해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됐지? 스스로 물으며 까닭을 찾다가 얻은 결론은 역시 코로나19였습니다. 그 가깝고도 분명한 답이 왜 그리 늦게 생각났는지.

@오피니언타임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음식점에도 손님이 없었습니다. 밥을 먹다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계속 이렇게 손님이 없어요?”

“예, 말도 못해요. 코로나 터지고 나서 사람이 거의 안 와요.”

“원래 여름엔 온천 오는 사람이 많이 줄지 않아요?”

“아니에요. 온천욕 하러만 오나요. 각종 모임도 있고, 세미나도 열리고… 여름에도 손님이 꽤 많았어요.”

“그런데 올해는 유난하단 말이지요?”

“그렇다니까요. 늦겨울부터 그랬어요. 아예, 관광버스가 한 대도 안 들어와요.”

모래라도 씹고 있는 듯 입 안이 깔깔했습니다. 대체 이들은 어떻게 삶을 지탱해야 하나.

현장에 다녀오다 보니 코로나19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첫 번째 ‘사례’가 됐지만, 온천지역은 빙산의 일각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여행업을 하는 후배는 아예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코로나19가 언제 잠잠해질지 모르는데, 여행이 재개되기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폐업을 해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해온 게 여행업인데, 그걸 손에서 놓으면 대체 뭘 해서 먹고 살 건지.

마찬가지로 항공기 운항이 중지되거나 대폭 감소하면서 티켓 환불 등의 피해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스타 항공이 인수합병 무산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다는 소식도 같은 맥락입니다. 업종별 피해의 경중을 가리는 게 별 의미가 없지만 영화관이나 음식점 등 사람들이 밀집되는 곳은 아우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지급, 부가세 간이과세 개정 등 소상공인 구제를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지만 근본적 ‘비법’까지는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공인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코로나19는 각 가정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실직과 소득 감소 등은 물론 취업 문제도 시시각각 목을 조릅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제 둘째아이는 하반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입사지원서 한 장 제대로 내보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준비한 업종에 한 건의 모집공고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수치도 암담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2분기 경제성장률 22년 만에 최저치’ ‘2분기 GDP 전분기 대비 –3.3% 성장’ 같은 제목은 이제 위기의식조차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재난지원금 등을 통해 경제를 지탱해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 정도로 도도한 물길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 160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5년 안에 일자리 190만 개를 만든다는 ‘한국판 뉴딜’ 정책도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간단하게 현장 이야기나 전한다는 게, 남들이 모두 하는 이야기나 재탕하고 거시적 수치까지 동원하는 우(愚)를 범했지만, 이런 글은 결구를 쓰기가 무척 난감합니다. 정책 실패와 같은 문제라면 정부를 비난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거나 대책을 촉구하는 말로 마무리할 텐데, 현실은 그걸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고, 더구나 우리 정부는 비교적 감염 확산에 대처를 잘 했다는 평가가 있고 보면 더욱 막막해집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기업이 활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 경제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맞춤형 대책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죽을 만큼 힘들어도 스스로 견디고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게 우리 국민이 맞닥뜨린 현실입니다. 당연하지만 감염병이 전파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노력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겠지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다시 늘었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중대본’에서 보낸 메시지도 도착했습니다. ’슬기로운 휴가 보내기‘라는 제목입니다. “휴가 갈 때는 가족단위‧소규모로 이동하라” “밀폐‧밀집 장소와 혼잡지 피하라….”

이 악몽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기도합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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