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논객칼럼=임종건]

‘나쁜 자식’이냐 ‘후레 자식’이냐?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를 나오다가 박 시장 사인에 관해 질문한 기자에게 했다는 욕설을 두고 언론사 별로 보도가 달랐다. ‘자식’이라는 부분은 명료하게 들렸으나 ‘나쁜’과 ‘후레’ 부분은 명확히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자가 이 대표에게 그 부분을 명확히 해달라고 다시 물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일이고, 이 대표 스스로 그 부분을 명확히 해주자니 '쪽팔리는 일'이다. 언론사마다 발언 부분이 담긴 동영상테이프를 듣고 또 듣고, 입모양까지 분석한 뒤 저마다 다르게 결론을 내렸다.

두 말에 대한 해석도 분분했다. ‘후레 자식’이면 욕설이고 ‘나쁜 자식’이면 욕설이 아니라는 쪽과, 둘 다 욕설이라는 쪽으로 갈렸다. 필자는 이 대표의 어투나 질문하는 기자를 노려보는 눈초리로 미루어 둘 다 증오에 찬 욕설이라 함이 맞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자식’이란 말도 상대와 장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지만 ‘후레 자식’은 애비 없이 자라 버릇이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칼부림이 날 수도 있는 매우 심각한 욕설이다. 적어도 공당의 대표가 입에 담을 말은 아니다.

픽사베이

그날 기자가 이 대표에게 물은 질문은 “박원순 시장의 사인에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무엇인가?”였다. 기자의 질문은 예의바르고 정확했다. 기자는 ‘성추문’을 직접 언급하지도 않았고, 박 시장 장례를 앞두고 이틀 사이에 50만 명이 넘었던 시민장 반대 청원에 대한 견해를 물은 것도 아니었다.

기자가 그 자리에서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기자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박 시장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인 여비서와의 성추문 의혹은 국민적인 관심사이므로,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당연히 물어야 하고, 이 대표는 국민의 물음으로 여겨 성실히 답변할 의무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기자에게 “이 자리에서 그것을 질문이라고 합니까? 그게 예의입니까?”라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혼잣말을 하듯 “XX 자식”이라고 내뱉은 것이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의혹은 의혹대로 조사하겠다”고 했으면 그만인 자리였다.

민주당은 이 대표 발언 다음 날 수석대변인을 통해 이 대표 발언에 유감을 표하고 언론에 사과했다. 13일의 당 고위전략회의에서는 이 대표가 직접 공식 사과를 했으나 이 자리에서도 성추행 피해 여성을 ‘피해 호소인’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말로 지칭해 구설을 탔다.

피해호소인이라 함은 피해자인지 아닌지를 따져봐야 안다는 말이다. 박 시장의 성추행 혐의에 대한 수사가 박 시장의 자살로 인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 마당에, 이 대표의 이런 발언은 이 사건에 대한 정부 여당의 진상규명 의지에 의문을 제기했고, 피해여성에 대한 2차 가해라는 비난을 샀다.

이 사건은 구설로 점철돼 있는 이 대표의 정치 역정에서 최신의 버전이다. 그 구설들은 모두 그가 구사하는 투쟁적이고 고압적인 언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옳은 말을, 가장 예의 없이 하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는 그가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과 총리를 지낼 때 야당과의 잦은 말싸움으로 이미 굳어져 있었다.

그는 ‘XX 자식'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최근 수도 이전문제와 관련해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말해 또 하나의 구설에 휘말려 있다. 그는 구설에 오른 이유를 성찰하기보다는 발언이 거두절미된 채로 전달됐다며 책임을 언론에 전가했다.

이 대표 발언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현상은 현 정권 사람들이 기자의 질문에 예의를 이유로 시비를 건다는 점이다. 작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때는 “현재의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는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나?”라는 질문에 대해 대통령 지지자들은 기자에게 예의가 없다고 아우성쳤다. 작년 5월 문 대통령과 KBS 기자와의 대담에서는 “야당에서 문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무례하다고 했다.

이 대표에게 던진 질문과 마찬가지로 그 시점에선 대통령에게 당연히 물어야 할 핵심적인 질문이었고, 기자의 묻는 태도에서 무례하다고 할 부분이 전혀 없었다. 두 번째 질문은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더 필요한 질문이었다.

기자의 당연한 질문에 시비를 거는 행태는 언론을 통제와 순치의 대상으로 여겼던 권위주의 정권에서 있었던 일이다. 민주화 투쟁을 자랑삼는 민주당 정부로선 자기부정이다. UPI통신의 고 헬렌 토머스 기자의 명언을 여기에 재소환하는 이유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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