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칼럼=신재훈]

올해 초 오래된 흑백영화 같은 한편의 광고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철도 길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이 다음에 성공하면 뭐할까?”라고 한 아이가 묻는다. 때마침 1993이라는 자막과 함께 철도 건널목으로 옛날 각 그랜저 한대가 지나간다. 그것을 보고 다른 아이가 답한다.

“그랜저 사야지”

더 뉴그랜저의 티저 광고다.

후속 광고는 '2020 성공에 관하여'라는 캠페인 테마 하에 4편의 멀티 스팟으로 제작되었다.각 편마다 독립된 주인공과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지만 주제는 동일하다. 2020년을 살아가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생각들이 그려진다.

이 광고캠페인에 대한 호 불호가 갈리는 주요한 지점은 “과연 그랜저를 성공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한 동의 여부와 '광고에서 말하는 성공'에 대한 공감 여부일 것이다. 1993년 각 그랜저였다면 충분히 성공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그랜저 한대 값이 개포주공아파트 한 채와 거의 같았고, 수입차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랜저를 타면 돈이 많은 부자라고 생각했다.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힘들었던 그 시절 가장 확실한 성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2020년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발에 차이는 게 고급 외제차고, 같은 회사에서 조차 그랜저보다 더 비싼 차들이 많이 나온다. 따라서 그랜저를 탄다고 자신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광고는 2020년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는 우리에게 성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특히 성공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광고의 메시지가 그 동안 TV 드라마에서 흔히 봐왔던 실장님 또는 본부장님으로 불리는 재벌 2세가 되거나, 마크 저커버그와 같이 젊은 나이에 IT 기업의 CEO가 되는 등의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도,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꿈꾸는 소박한 성취도 일종의 성공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광고에서 묘사되는 성공은 대충 이런 것이다.

임원이 되어 회사차를 받는 것

회사를 떠나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

자가용을 타고 폼 나게 고향집에 내려가는 것

열심히 운동해서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것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공이란 단어를 쓸 수 없는 하찮고 작은 성취에 불과하겠지만, 동시대를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고 꿈꾸는 각자의 소박한 성공을 이야기 하고 있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소박한 성공조차도 거의 물질적이고 외향적인 성공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개인화되고 다양화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점은 모두에게 통용되었던 획일화된 성공의 의미가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즉 개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마치 과거의 거창한 행복에서 '소확행'이라는 개인의 일상과 개성이 반영된 소박한 행복의 개념이 생겨난 것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우리 은퇴인들은 대부분 월급쟁이 시절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았을 것이다.

“내가 월급쟁이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은퇴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은퇴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첫 번째 질문은 과거에 대한 평가의 문제다. 평가가 좋거나 나쁘다고 해서 과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의 기분이 달라질 뿐이다. 따라서 과거에 대한 평가는 가급적 좋은 쪽으로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우리 은퇴인들은 대부분 광고에서 얘기하는 그런 정도의 성공 경험은 대부분 가지고 있을 것이며 거창하지는 않아도, 남들이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만족하고 인정할 수 있는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지금 만약 그랜저를 타고 있다면 성공한 것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과거에 대한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은퇴생활에서 성공이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평가는 죽는 순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하게 될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고자 했던 젊은 윤동주의 마음처럼, 죽음의 순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후회없는 삶을 사는 것이 정답이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잘못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원했지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훨씬 더 크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급적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자. 그것이 죽는 순간 해보지 않고 포기한 많은 것들에 대한 후회를 남기지 않는 방법이며, 또한 성공적인 은퇴생활을 하는 가장 슬기로운 방법이다.

    신재훈

    BMA전략컨설팅 대표(중소기업 컨설팅 및 자문)

    전 벨컴(종근당계열 광고회사)본부장

    전 블랙야크 마케팅 총괄임원(C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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