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칼럼=신재훈]

“사랑해요 LG”와 하회탈을 닮은 기업로고로 대표되는 온화한 이미지의 LG가 독해졌다. 물론 금성사 시절부터 삼성과는 영원한 라이벌이었지만 요즘처럼 직접적으로 서로를 독하게 공격한 사례는 드물다.

2020년 초 LG전자는 신제품 노트북 “그램 17”의 동영상광고를 유튜브에 내보냈다. 그 중 한편인 “그램으로 따라오세요”편에는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독한 멘트가 등장한다.

“이정도 안되면 노트든 북이든 접어야죠?”

갤럭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노트와 북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갤랙시노트와 갤럭시북을 겨냥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경쟁사를 공격 한다는 측면에서, 신의 한 수는 단연 “접다”라는 단어의 사용이 아닌가 한다.

“접다”가 가진 상징적, 중의적 의미를 경쟁사가 아파할 만큼 날카롭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접다 라는 단어는 “종이를 접다”와 같이 실제로 뭔가를 접는 것을 의미하지만, “사업을 접다”와 같이 일상어로서 그만두다, 때려치우다 의 의미로도 자주 쓰인다. 뿐만 아니라 접다 는 영어의 fold의 의미로, 출시 당시 낭패를 보았던 갤럭시 폴더의 악몽까지도 연상시킨다.

@유튜브 관련영상

라이벌 간의 광고전쟁은 싸움 구경만큼이나 재미있다.광고 분야는 학문적 차원의 연구보다는 실용적 측면과 실무적 차원의 방법론이 중시 되어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련 있는 인근 영역의 이론들이 차용되었다.

과거 메이커 중심의 사고에서 소비자에 좀 더 주목하게 되면서, 소비자 행동에 관한 이론이 활용되었고, 소비자 이전에 한 생명체로서의 보편적 인간에 대한 연구인 인문학 그리고 다양한 사회 현상과 상호작용을 하는 사회적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인 사회과학에도 주목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 인간의 인식, 태도, 행동을 연구하는 심리학, 특히 인지심리학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기업간, 브랜드간 경쟁이 전쟁만큼 치열해 지면서 손자병법 등의 동서양 전쟁이론들도 활용되고 심지어는 선거에 활용되는 정치학의 선전, 선동 이론까지도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광고전문가들이 선거 때만 되면 선거 홍보를 총괄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메이커간, 브랜드간 경쟁이 치열해 지는 만큼 광고의 양상도 경쟁사와 경쟁 브랜드를 겨냥한 경쟁광고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흔히 포지셔닝 광고라고도 부르는 경쟁광고는 경쟁의 강도와 차별적 우위의 유무에 따라 다양화 되고 정교화 되였다. 그 시작은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인 잭 트라우트(Jack Trout)와 알 리스(Al Ries)가 함께 쓴 “Positioning” 이라는 저서를 통해 소개된 포지셔닝 개념의 등장부터이다.

포지셔닝은 위치라는 의미를 가진 position이라는 명사에 위치를 점하는 행위와 방법을 의미하는 ing를 붙인 형태이다. 이는 시장을 의미하는 market이라는 명사에 ing를 붙여 시장을 분석하고 변화 시키기 위한 모든 활동들을 의미하는 용어로까지 확장된 Marketing이라는 단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포지셔닝은 간단히 정리하면 소비자의 인식상 경쟁 브랜드에 비해 특정 브랜드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강화 하거나 변화 시키는 전략이다. 마케팅에서 도입된 포지셔닝은 광고업계에도 커다란 전략적 변화를 가져온다.

초기의 광고전략인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 그리고 그 후 데이비드 오길비에 의해 처음 사용되며 그 위력을 떨치게 된 브랜드 이미지(Brand Imagery)전략에 의존했던 대부분의 광고들이 포지셔닝 전략에 기반한 경쟁광고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사상을 반영하는 도식으로서, 일명 변증법으로도 알려져 있는 정반합의 논리로 설명될 수 있다.

제품의 물질적 속성인 기능과 효능에 기반한 U.S.P. 전략을 “정(正), Thesis”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그것에 반하는 제품의 비물질적 속성인 이미지를 활용한 브랜드 이미지 전략은 “반(反), Anti-thesis”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전략의 편협함을 극복하고 각각의 장점과 변화된 경쟁 환경을 반영한 보다 종합적인 “합(合), Synthesis)"으로서의 포지셔닝 전략이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전의 광고전략들과 포지셔닝 전략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경쟁사, 경쟁 브랜드 등의 경쟁관계까지도 고려한다는 점이다.

경쟁광고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즐겁고 행복한 은퇴생활을 위해서도 여전히 남들과의 경쟁이 필요할까?”  젊은 시절 경쟁은 분명 자신의 발전을 위해, 더 큰 성과를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은퇴 후 남과의 경쟁, 특히 나보다 잘 난 남과의 경쟁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의기소침하게 만들 뿐 도움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언제 어디서건, 어떤 분야에서건,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유홍준 선생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편에서 “인생도처 유상수”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동네 당구장에도, 스크린 골프장에도, 하다못해 노래방에 가도 나보다 상수들이 넘쳐난다. 나보다 잘난 남들과의 비교나 경쟁은 스트레스의 원천으로서 하면 할수록 나만 피곤해 진다. 그렇다고 나보다 못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위안 삼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뿐이다.

경쟁을 초월하여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그래도 굳이 경쟁을 해야만 한다면 자기 자신과 경쟁하라.

더 어리석었던, 더 옹졸했던, 더 불행했던 과거의 나와.

그래서 오늘은 어제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내가 되자.

    신재훈

    BMA전략컨설팅 대표(중소기업 컨설팅 및 자문)

    전 벨컴(종근당계열 광고회사)본부장

    전 블랙야크 마케팅 총괄임원(C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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