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제일의 제일처럼]

[청년칼럼=방제일]

흔히 야구는 인생과 닮았다고 한다. 그 말에는 어폐가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은 인간과, 인생과 닮아 있다. 야구뿐만 아니라, 농구, 축구, 바둑 등 갖다 붙이면 다 인생과 닮아 있다. 어쨌든 간에 야구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부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야구는 시간제한이 없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아다치 미츠루의 ‘H2’에서 히로가 말한 바와 같이 시간제한이 없는 시합의 묘미가 바로 야구다.

야구는 플레이볼을 외친 순간부터 9이닝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물론 사회인 야구는 그 특성상 시간을 정해놓고 하고, 우천과 같이 특수한 상황에서는 부득이하게 경기가 취소되기도 한다. 이는 인생도 마찬가지다. 부득한 사고나 병마로 인생이 조기에 마감되기도 한다. 또한 원하지 않게 시간을 정해놓고 살아보기도 한다. 시간제한은 없지만, 독특하게 이닝은 정해져 있다. 이는 청년, 중년, 노년과 같이 시간의 굴레 속에 속박돼 있는 점과 비슷하다. 아무리 3이닝까지 10대 0으로 이기고 있다 할지라도 9이닝이 끝난 후 누가 미소 짓고 있을 지 그 누구도 모른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 포수 요기 베라의 말과 같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뜻이다.

둘째로 야구는 나 혼자만 잘한다고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니다. 수비수들이 도와줘야 하고 공격에서도 일정 부분 득점을 해야 한다. 누군가 살리기 위해서 번트를 하면서 희생해야 할 때도 있다. 기본적으로 희생이 밑바탕이 되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 인생에서 성공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내가 잘 나서 성공한 것 같지만, 누군가의 성공은 누군가의 희생과 도움을 통해 만들어지고 완성된 것이다.

'퍼펙트게임'을 한 투수들의 경기는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냄에 있어 모두 삼진으로 타자를 돌려세우지 않는 이상 수비들의 도움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호수비와 타선의 도움은 투수에게 안정감을 불어 넣고, 역사에 남을 위대한 기록을 만든다.

셋째, 야구는 순서를 기다리는 경기다. 삶에는 순서가 있듯, 야구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조용히 자신의 타석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9이닝이란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나에게 몇 번의 타석이 돌아올 지 예상하기 어렵다. 또 언제 어떤 상황에서 내가 기회를 맞이할지도 말이다. 그래서 조용히 타순대로, 번호표를 기다려야 한다. 내가 아무리 잘하는 타자라고 해도, 나에게 주어진 기회란 지극히 한정적이다. 그 한정된 기회를 잘 살려야만 승리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

넷째, 복잡한 규칙과 불문율이 많다. 야구, 특히 오랜 전통을 가진 메이저리그는 불문율이 많다. 불문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얼마나 많은 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 불문율도 있다. 그뿐인가? 세세한 규칙이 얼마나 많은 지 프로야구 선수나 심판조차 그 규칙을 다 숙지하고 있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야구란 경기는 야구를 하는 당사자조차 모든 규칙을 알지 못한 채 경기에 임한다. 이는 인생과 사회를 모두 이해하고 삶을 사는 인간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이 사는 이 그라운드의 모든 법칙과 불문율을 이해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도 죽을 때까지 규명하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째, 야구나 인간의 삶이나 결국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쿠퍼(매튜 맥커너히)는 머피와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장면이 나온다. 단 한 장면이 아니라 여러 장면이 말이다. 영화는 단 한 씬도, 프레임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야구를 하는 장면은 왜 삽입된 것일까? 그리고 왜 하필 농구도, 축구도 아닌 야구일까? 미국인이 즐기는 스포츠라서? 아니면, 놀란 감독이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미국 얘기를 할 것이고, 우주를 향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하고자 할 것이면, 오히려 야구보다는 미식축구가 적합할 것이다. 가장 미국적이고, '인터스텔라'가 다른 행성을 개척하려는 맥락에서 보면 말이다. 그런데 미식축구가 아닌 야구다. 왜일까?

그 이유는 인터스텔라가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돌아다닌다. 쿠퍼는 우주에 있지만 늘 지구에 남아있는 머피를 걱정한다. 그리고 하루빨리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바로 자신의 딸, 머피에게로 말이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1루, 2루, 3루를 돌아서 결국 '홈'으로 돌아와야 하는 경기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떠나간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이란 말과 같이 살기 위해 집을 떠나고,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는 경기가 야구다. 나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누군가는 희생번트도 되고, 화끈한 홈런도 치고, 아니면 스스로 루를 훔쳐서라도 기를 쓰고 '홈'으로 들어오려고 노력하는 스포츠다.

늘 홈을 향해 달려가는 야구를 보며 묻는다. 나는 지금 몇 루에 위치해 있는가? '홈'으로 돌아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나도 언젠가 2루를 찍고, 3루를 돌아 '홈'으로 돌아와 환호받고 싶다. 그때까지 폼 나게 이 야구란 경기를, 인생이라는 스포츠를 맘껏 즐길 생각이다.

 방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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