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훈의 아재는 울고 싶다]

[청년칼럼=하정훈]

실.업.급.여!  실업을 당한 자들에게 국가적 차원에서 위로의 급여를 제공한다...?

아마 저 정의는 맞지 않을 것이다. 실업급여는 실직자들에게 실직상태의 어려움을 겪지않게 생활급여를 제공하고, 빨리 재구직할 수 있도록 구직활동을 증명해야 나오는 급여라고...고용센터갔더니 설명하는 아저씨가 그랬다. 그렇군. 그런거였군. 근데 문제는 실업급여 한달 받아보니 구직하기 싫단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작용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냥 놀고 싶은 것이다.

구직의 의욕을 꺾게 하는, 놀고 싶단 욕망은 인간에게 당연한 것인가?

어제, 고향친구 놈 명욱이랑 통화를 했다.

" 나 요즘 실업급여 받어 "

" 그래. 거참 실업급여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참 기가막힌 거여 "

" 맞어. 기가 맥힌거여. "

실업급여를 받으며 양면적인 감정이 들었다. 일단 쉬어서 너무너무 좋다. 늘어지게 자보기도 하고, 보기 싫은 놈들 안봐도 되고, 조금은 죄책감이 들 정도로 잉여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안보던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좀 몰아보고, 그리고 실업급여의 취지에 맞게 정말 순수하게, 그냥 대충 조건 맞춰서 알아보는 게 아닌, 원하는 직장, 막 대기업 같은 데에 지원도 해보고, 서류탈락도 해보고...그런데 돈까지 지원된다.

참 좋은제도다. 마치 중학생 꿈 찾기 진로시간이 된 듯하다.

살면서 이처럼 순수하게 나를 모색한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반면에 실업급여를 받으며 조금은 나태해지고, 그냥 일 안하고 더 쉬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취직해야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일단 생활급여가 지급되니, 그냥 드라마 보며 더 쉬고 싶다는 뭐 그런 생각 말이다.

픽사베이

집에서 마냥 컴퓨터나 보며 한량처럼 쉬고 있자니, 아내에게 눈치가 보이긴 한다. 나 와이프 눈치 엄청 본다. 겉으로는 몇달 쉬어~ 이야기는 그렇게 하지만, 내심 엄청 걱정하고 있는 게 맞다. 내가 아는 우리 와이프는 그렇게 통 큰 여자 아니다. 남편 무조건 한량적으로 쉬는 모습에 내가 돈은 벌테니, 자기는 좀 쉬어~ 하는 드라마에 나올법한 여자는 아니다. 그냥 보통 여자다. 조금은 속물적인데 어쩜 그런 부분이 있기에 내가 그나마 고삐를 놓치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살게 된 면도 있는 것 같다.

여튼 당장 취직하고 싶진 않다.

실업급여의 취지는 분명 그런 게 아닐텐데, 난 왜 그냥 놀고 싶은걸까?

생각컨대, 어쩌면 이렇게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3~5달 가까이 자신만의 휴식기를 보내는 시간을 과연 한국사회에서 갖기가 쉬울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엊그저께 기사를 보니 어느 가방 CEO 남자 사장님이 35년간 근무를 했는데 정작 한달 이상 쉬워 본 적이 단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건 일을 부지런히 한 것이 행복한 모습인 걸까? 불행한 모습인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는 게 정답인지, 내 자신을 돌보며 적당히 쉬어가며 사는 게 정답인건지. 하긴 세상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사는 데 정답이 있을 리가 없지. 다만, 내가 지금 이 순간을 무척 즐기고 있는 건 분명하다. 마음이 평화롭다. 순간순간을 그 자체로 즐기고 있다. 어쩌면 아무 것도 안하는 자유, 무용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마음은 충만감으로 가득하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정말 이런 자기 모색의 시간, 잉여를 허락하고, 스스로에게 무용을 허락하는 시간을 진정으로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오로지 경쟁, 치열, 노력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 그러면 도태되는 형국이니.

요즘 몇몇 좀 좋아보이는 기업에 내가 직접 지원해보니, 경쟁률이 일단 1명 모집에 70명 이상 지원한다. 2명 모집하는 어떤 곳에는 400명 넘게 지원했다. 그냥 보더라도 경쟁률이 70대 1, 200대 1이다. 너무 경쟁 사회 아닌가? 나를 포함 청년들 뭐 어찌 먹고 살란 이야기인가? 이거 사회가 어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직장생활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젊어서는 배우활동을 했고, 서른 넘어서는 프리랜서 강사일을 해서인지 이렇게 회사 들어가는 게 어려운 지 몰랐다. 나이 좀 먹어서 이제 정착 좀 해보려고 회사라는 문턱을 좀 비비고 있는데, 그냥 경쟁률이 저딴 식으로 나오니 무척 암울하다. 경쟁에서 뒤쳐진 많은 청년들은 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디 외딴섬에 들어가야 하나? 아무리 세상이 경쟁사회이고 약육강식의 사회라 하더라도 이렇게 대책 없이 흘러가다간, 경쟁에 패배한 청년낭인들이 많아질까 우려스럽다.

일단 내가 제일 걱정이다.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차별화된 스펙을 하나씩 얹고, 또 얹고, 나는 분명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사람이고 남들보다 더 나음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 애처롭다.

그래서 내가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는 결론이 들었다. 지금 이 시간은 정말 귀한 시간이다. 잠시 든 생각인데, 이런 라이프 패턴 뭐 괜찮은 것 같다. 정규직 취직도 어렵다는데 계약직만 6개월 하고 잘렸으니, 실업급여로 좀 놀고, 또 계약직하고 실업급여로 또 놀고...요런 패턴으로 살면 아내한테 정당한 이유로 두들겨 맞겠지? 상상만 해보았다.

 하정훈

 그냥 아재는 거부합니다.

 낭만을 떠올리는 아재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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