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논객칼럼=이영환]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은 아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래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물리학자일 것이다. 2018년 3월 호킹이 작고한 후 유족과 지인들은 그가 남긴 원고들을 모아 『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우리말로는 『호킹의 빅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호킹은 생전에 과학자, 기업인, 정치가 및 일반대중들로부터 이 책에 수록된 빅퀘스천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질문을 받았으며 이에 대한 답변은 연설이나 인터뷰, 그리고 에세이의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 책은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10개의 빅퀘스천에 대한 호킹의 견해를 정리한 것이다.

이번 여름에는 예년과 다르게 지루한 장마가 지속되는 가운데 집중호우로 인해 전국적으로 벌써 7천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하고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주변의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더불어 일상생활을 우울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그런데 문득 이 모든 것이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변화의 일부가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호킹의 책에서 다룬 빅퀘스천들 가운데 하나가 떠올랐다. 사실 이것은 빅퀘스천이라기 보다는 ‘큰 경고’, 즉 ‘빅워닝(Big Warning)’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머지않은 장래, 이를테면 수백 년 이내 지구는 더 이상 인류가 살기 적합하지 않는 행성으로 급변할 가능성이 농후하니 더 늦기 전에 태양계 너머 우주로 진출해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고 인류를 그곳으로 이주시켜야 한다는 경고다. 얼핏 들으면 과대망상증 환자의 뜬금없는 말 같지만 그 사람이 호킹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가 이런 경고를 한 이유를 한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스티븐 호킹 박사 @픽사베이

호킹의 책에서 필자가 가장 공감한 대목은 인류의 오만과 탐욕으로 인해 다른 종(種)들은 물론이고 인류 스스로 멸망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다룬 7장과 8장, 그리고 인공지능의 위험을 경고한 9장이다.

7장에서 호킹은 인류가 과연 지구에서 생존할 수 있는지 묻는다. 이것이 오래전부터 호킹이 인류에게 경고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호킹은 태양이 수십 억 년 후 적색거성으로 변해 지구를 삼켜버리기 훨씬 전, 지금부터 불과 몇 백 년 후 인류가 멸망할 지도 모른다면서 핵폭탄과 기후변화의 위험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나는 핵폭탄이나 환경재앙이 앞으로 1,000년 이내 일정 시점에서 지구를 심하게 손상시킬 것이 거의 필연적이라고 간주하는데, 이는 지질학적 시간의 관점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하다. 그 때까지 나는 재간이 많은 우리 인류가 지구의 무정한 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발견할 것이고 그래서 재난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며, 그렇게 믿는다.”

그러면서 호킹은 8장에서 인류는 지구를 떠나 일단 태양계 안에서 새로운 거점을 발견해야 한다면서 달과 화성을 일차적인 후보지로 제안한다. 이후 태양계 너머 다른 행성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향후 수백 년 안에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친다. 호킹은 오래 전부터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것이 인류의 멸종을 피하는 방법이라고 제안해왔다. 호킹이 인류의 미래를 이 정도로 암울하게 전망한 이유가 무엇인지 한 마디로 끅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인류의 탐욕과 오만으로 인해 이런 종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호킹은 현재와 같은 경제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이미 여러 경제 전문가들이 지적한 내용이기에 새롭지는 않다. 예컨대 글로벌 경제가 매년 평균 3%씩 50년간 성장한다면 복리로 계산했을 때 글로벌 경제규모는 현재의 4.3배가 될 것이다. 이는 사실상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호킹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으로 인해 이런 성장지상주의에서 탈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있는 현실로 인해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에 실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은 기후변화로 인한 대재앙이다. 호킹이 기존의 성장지상주의를 언급한 것도 기후변화의 맥락에서 살펴볼 때 의미가 배가된다. 핵전쟁으로 인한 지구 종말 시나리오는 이제는 더 이상 심각하게 논의되지 않는다. 물론 북한을 비롯해 일부 테러집단이 핵을 전략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인류 전체의 공멸을 초래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국제 공조가 가능한 상황이지만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 미국은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는 등 국제공조를 무력화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비단 현 트럼프 정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조지 W. 부시를 비롯한 공화당 정부에 공통된 현상이다. 그 이유는 이들이 화석연료를 생산·가공·판매하는 대기업들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 정부가 셰일 가스의 생산을 장려하는 것은 기후변화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경고를 무시한 것이다. 또한 세계에서 둘째로 큰 비상장기업인 코크 인더스티리즈(Koch Industries, Inc.)는 환경오염물질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으로서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원해왔다. 그러니 공화당 정부에서는 이들의 이익을 대변해 기후변화는 없다는 식으로 마타도어(matador) 작전을 구사해왔던 것이다.

이것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파렴치한 행동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런 방해공작으로 인해 향후 지구의 생태계와 자연환경은 어떤 종도 살아남기 어려운 극단적인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양심적인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개인적으로 우려하는 바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과연 인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일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산업혁명 이전과 대비해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억제하자는 파리기후협약의 가이드라인은 물론,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48차 총회에서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경고를 무력화함으로써 기후변화로 인한 대재앙을 막으려는 모든 시도는 물거품이 될 것이다.

17세의 어린 나이로 일약 기후변화에 대항하는 여전사로 부상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2020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기후변화 대재앙을 피하려면(Averting a Climate Apocalypse)》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권력을 장악한 기성세대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포기하고 있다고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자신이 작년에 이 포럼에 참가해 “우리 집(지구)이 불타고 있다(Our house is on fire)”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툰베리는 이 강연에서 즉각 화석연료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는 등 실천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고 있지만 이는 그만큼 상황이 긴박하다는 의미를 전달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강연은 어린 소녀의 주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결기가 대단할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인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만든다.

기후변화로 인해 예상되는 재앙은 옥스퍼드대학의 《인류 미래 연구소(Future of Humanity Institute)》를 이끌고 있는 철학자 닉 보스트롬(Nick Bostrom) 교수가 저서 『슈퍼인텔리전스』를 비롯해 일련의 강연에서 강조했던 존재적 위험(existential risk)에 해당된다.

보스트롬 교수는 존재적 위험은 아무리 발생 가능성이 낮더라도 이를 피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발생 확률이 제로가 아니라면 언젠가는 발생할 수 있으며, 일단 발생한다면 인류 전체가 절멸할 수도 있는 위험이기 때문이다. 사실 보스트롬 교수는 초인공지능(ASI)이 출현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고 기계의 가치체계가 인간의 도덕적 가치체계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인류를 비롯한 지구상 모든 종의 멸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이런 그의 주장은 기후변화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초인공지능의 출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며, 일부는 초인공지능은 결코 개발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반면 기후변화는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우리 주변에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다. 그리고 이번 장마와 여전히 진행 중인 코로나19 사태는 기후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다는 전조(前兆)가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게 한다.

우리 모두 일상에서 개인적 또는 사회적 문제로 고민하고 분투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당장은 심각한 문제처럼 보이는 것이라도 잠시 여유를 갖고 다시 들여다보면 대부분 작은 문제 내지 작은 질문(small question)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작은 질문이라고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생을 작은 질문에만 매달린 채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좀 더 큰 질문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이것이 스티븐 호킹이 유작을 통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지식공유광장(www.iksa.kr) 운영

 <시장경제의 통합적 이해> 외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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