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날아라 고라니]

[청년칼럼=고라니]

결혼 직후 우리 부부는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을 추진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정부는 수도권에 남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보낼 거라 선언했고, 우리가 계획했던 것들은 백지가 되었다.

아내는 서울에, 나는 충북혁신도시에 있는 공공기관에 다닌다. 서로 직장이 멀어 결혼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오랜 고민 끝에 신혼집은 수도권에 구하기로 했다. 아내는 지옥철로 나는 통근버스로 출퇴근을 시작했다. 아내는 무더위에도 KF94 마스크를 꽁꽁 싸매고 지하철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허리디스크, 비문증, 교통사고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통근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다.

픽사베이

어느 한 명도 편한 상황은 아니지만 우린 지금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얼마의 돈을 모으고, 언제쯤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육아휴직은 얼마나 가능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어려운 여건일수록 서로에게 더 힘이 되어 주자고 다짐했다. 회사가 멀어도 몸을 조금만 고생시키면 꿈꾸던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소식과 함께 우리가 그리던 미래는 임시보관함에 들어갔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주요 기관을 자신의 지역으로 이전시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사자들의 의사는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하나도 걸러 들을 수 없었다.

언제는 전라도로 간다고 했다가, 언제는 경상도로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같이 살긴 어려우니 주말부부도 생각해 봤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혁신도시의 월세는 서울 못지않게 비쌌다. 게다가 계약기간이 끝나도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받는 사례가 수두룩했다. 우리에겐 그 정도 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할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출산과 육아를 생각하면 주말부부는 바로 선택지에서 제외됐다. 출산이라는 길고 힘겨운 과정을 아내 혼자 겪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가족이 떨어져 사는 삶은 절대 피하고 싶었다. 아이에게 일주일에 한 번만 볼 수 있는 반쪽짜리 부모를 선물하고 싶지도 않았다.

주변에선 외벌이를 하라는 얘기를 쉽게도 했다. 돈을 많이 주는 회사로 옮기거나, 주말에 투잡을 뛰어서라도 가족을 건사할 각오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방이전으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면, 그건 국가에 의한 부당해고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일은 돈벌이를 넘어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쉽게 결정을 내릴 수도, 함부로 생각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었다.

지역불균형이 국가 발전과 통합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건 잘 안다. 정책의 효용성을 떠나서 공공기관을 대거 이전시키는 것이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는 가장 '티 나고', '반발이 적은' 방식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한 순간에 이산가족 신세가 된 직원들에게 "국가의 미래를 위한 거니까 니가 이해해"라는 식의 제스처만 취하는 의사결정자들의 태도는 너무 폭력적이었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개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든 욕망을 내려놓거나, 계획을 수정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우린 후자를 선택했다. 어떤 결정이 나든 그에 대응할 준비를 하기로 한 것이다. 변화를 거스를 수 없다면 가정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대응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할 뿐이다. 그래서 난 4년 만에 해커스 토익 1000제를 꺼내들었다.

 

        고라니

    칼이나 총 말고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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