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규의 하좀하]

[청년칼럼=한성규]

잠잠해질만하면 여기서 터지고 잠잠해질만하니까 또 저기서 터진다. 이제 갈 때도 되었건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 곁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름이 되면 잠잠해질 것 같았지만 그것도 아니고, 나만 조심하면 될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코로나에 붙은 숫자를 한글로 적어놓으니 욕 같다. '코로나씹구'가 유행함에 따라 대한민국에 전격적으로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이 전격적인 재택근무가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까발려 주었다. 우리 회사에 할 일 없고 쓸데없는 인간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하는 깨달음이다. 이건 뭐, 군대나 공무원뿐 아니라 실적이 최고로 중요하다는 사기업, 효율이 최고라는 외국계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오로지 실적으로 하루하루 진검승부를 하게 되었고, 그동안 책상에 앉아서 작은 창을 열어 주식을 하거나 마우스를 딸깍 거리며 시간이나 보내는 놈들은 불안해졌다. 그동안 목소리만 높여서 자기가 얼마나 바쁘고 많은 일을 하는지 떠들어대던 녀석들이었다. 목소리가 커서 위협이 되고, 또 특유의 정치적인 능력으로 실적이 없어도 사장부터 비서들에게까지 널리 인정을 받던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재택근무로 하루 아침에 속된 말로 ㅈ이 되고 말았다.

픽사베이

녀석들도 정치꾼이 되기 전까지는 맡은 일이 적지 않았다. 일거리 줄여서 얼렁뚱땅 넘어가기, 해야 할 일 안하고 말로 때우기, 다른 팀원에게 미루고 말로 무마하기 등등 온갖 기술을 시전 해 지금의 편안한 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그랬던 녀석들의 가장 큰 장기였던 사내정치 기술을 재택근무로는 쓸 수 없게 되자 녀석들은 정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졌다.

보고를 받고 덤으로 아부도 받던 관리직들은 부하직원들이 뭐하는지 감시할 수가 없으니 일일 업무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매일 아침 부하직원이 오늘은 뭘 할 건지, 그리고 퇴근할 때 그 일을 완수했는지 알려고 들었다.

이제 이 사내정치꾼들은 일일 업무보고로 정치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 많은 시간을 소요해서 자기가 무엇을 할 건지, 또 무엇을 했는지 작성한다. 왜냐? 아무리 머리를 짜내 봐도 하루 종일 한 일이 없으니까.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뭘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기가 언젠가 남들에게 은근슬쩍 미루었던 일들을 다시 가져오자니 민망하고, 새로운 일을 만들자니 귀찮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거의 하루를 소비해서 일일 업무보고를 만든다고 한다.

여기서 여러 가지 테크닉이 등장한다. 벌써 끝난 일 다시 소환하기,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넘어가는 일을 말로 때어 붙이기, 남의 일에 숟가락 얹기 등등... 이 놈들은 또 이런 방법으로 살아남는다고 한다. 근데 하루하루는 거짓말로 넘어갈 수 있지만 다른 동료들과 일일보고서를 비교해 보고 주간보고서, 연간 보고서를 비교분석 해보면 이 거짓말들이 서서히 뽀록이 난다.

재택근무에 있어서 나는 '선배'다. 내가 일하던 뉴질랜드에서 2010년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했다. 비상사태가 발령되었다. 2011년에도 6.3의 지진, 우리 집 앞에서도 2016년에 진도 7.8의 강진이 발생했다. 말이 진도 7.8이지 어이쿠, 그릇이고 뭐고 다 깨지고 책장이고 TV고 다 쓰러졌다. 그 와중에도 출근하려고 집밖에 나갔더니 경찰과 군인들이 비상사태라고 들어가라고 했다. 내가 근무하던 빌딩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검사결과가 나와 1년 가까이 재택근무를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중간관리자와 일은 안 하고 목소리만 큰놈들은 사라진다

내 경험상 재택근무가 오래 가면 그동안 놀았던 놈들, 중간관리자들이 자리를 지키기 쉽지 않다. 팀장들은 상위 매니지먼트와 일하는 직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중간통로 역할만 하고 있었으니 온라인 직접 소통이 일반화 되면 필요가 없어진다. 재택근무로 내 직장의 팀장급들 거의 반의 책상이 날아갔다. 이제 재택근무가 막 시작된 한국에서도 서서히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이건 현실이고 피해갈 수가 없다.

위기는 항상 기회와 같이 온다. 큰 위기를 거치면서 사회가 앞으로 갈 수도, 뒤로 갈 수도 있다. 나는 '코로나씹구'가 그동안 조직을 망치고 있던 사람들을 좀 데려갔으면 좋겠다. 일은 안하고 남들 욕만 하는 인간들, 신입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뺏어 먹고 보고서 글자크기나 줄 간격 같은 것에 집착하는 중간관리자들, 국회의원도 아니면서 편 갈라서 사내정치하려고 드는 회사 내 정치인들.

코로나19가 열심히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힘 빠지게 했던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켰으면 좋겠다.

     한성규

  현 뉴질랜드 국세청 Community Compliance Officer 휴직 후  세계여행 중. 전 뉴질랜드 국세청 Training Analyst 근무. 2012년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수상 후 작가가 된 줄 착각했으나 작가로서의 수입이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음. 글 쓰는 삶을 위해서 계속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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