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칼럼=신재훈]

내가 즐겨보던 '슈가맨'이란 TV프로가 있었다.

'슈가맨'이라는 말은 제 85회 아카데미에서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받았던 한 영화에서 유래하였다.

슈가맨은 70년대 남아공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었던 가수 로드리게스(Rodriguez)를 지칭한다.

미국에서는 거의 팔리지 않았던 앨범이 우연히 남아공으로 흘러 들어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것은 물론, 남아공에서는 당대 최고의 가수인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더 큰 인기를 얻는다.

요즘 대중문화에서 쓰이는 슈가맨은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지금은 잊혀진 가수 또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가수'를 의미한다. 슈가맨이라는 프로그램 또한 이러한 취지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슈가맨을 통해 재조명된 많은 출연자들이 있지만 누가 뭐래도 슈가맨이 낳은 최고의 스타는 양준일이 아닐까 한다.

JTBC의 간판 뉴스 프로인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할 만큼, 2회에 걸친 연말 특집 방송이 제작될 만큼 양준일은 신드롬이 되었다. 1990년대 리베카, '댄스 위드 미' 라는 노래로 잠시 주목을 받았다가 사라졌던 양준일이 출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스토리에 가슴 찡한 감동과 함께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을 것이다.

유튜브 관련 영상

물론 세대마다 양준일에 열광한 이유는 각각 다를 것이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경우 그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고 냉대했던 과거 행동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그에 대한 원죄로부터 자유로운 젊은 세대들, 심지어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어린 학생들까지도 그에게 열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성세대와는 달리 편견 없이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를 알아보고 인정할 수 있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그들의 개방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사회전반에 걸친 레트로(Retro/복고)라는 문화적 트렌드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경리단길, 을지로 등 이미 한물 간 옛것들이 새롭게 조명되는 현상에서부터 영화와 방송 등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레트로는 사회전반에 걸친 하나의 커다란 트렌드로서 그 영향력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레트로의 양상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의 레트로는 단지 그것을 경험한 과거세대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수단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의 레트로는 과거세대의 향수를 자극할 뿐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도 또 다른 하나의 문화로서 새로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레트로는 과거세대에게는 향수로,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움으로 다가간다.

레트로가 젊은 세대에게 새로움으로 해석되고, 의미가 확장되면서 뉴트로(New + Retro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하게 된다.

레트로의 한 형태인 리메이크는 모든 예술 장르에서 사용되는 전형적인 방법 중 하나다.

팝계에서는 과거의 히트곡을 새로운 가수가 시대에 맞는 스타일과 감각으로 재해석한 리메이크(Re-make)가 하나의 장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일반적이다. 리메이크는 음악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에서도 이미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광고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TV에서 귀에 익은 옛날 광고가 흘러 나왔다. 벌써 20년도 넘은 '랄라라'로 시작해서 '랄라라'도 끝나는 오비라거 광고였다. 과거 박중훈이 나와서 어눌한 라거 춤을 추며 '랄라라'를 외쳤던 바로 그 광고다.

나름 과거 광고의 맛을 살리면서 지금 시대에 맞는 감각도 담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중훈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일까?

'랄라라' 광고는 오비라거 광고이기도 하지만 박중훈의 오비라거 광고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광고에서 박중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닫힌 엘리베이터에 머리를 박았던 덕화형님처럼, “니들이 게맛을 알아?” 라고 외친 신구선생님처럼 말이다. 그들은 단순한 광고 모델이 아니라 광고 그 자체다.

영화건, 드라마건, 광고건 리메이크를 통해 성공한 경우도 많지만 실패한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경우 실패 사례의 공통점은 전작을 성공시킨 핵심 요인을 잊어서다. 마케팅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Forgetting what makes their success (그 브랜드를 성공으로 이끈 핵심 요소를 잊는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는 변화를 위한 특별한 노력 없이 날로 먹겠다는 생각 때문에 실패하지만, 짧은 15초 동안 소비자의 주목을 끌어야 하는 광고의 경우 변화에 대한 욕심이 오히려 독이 될 경우가 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지나친 것이 모자란 것만 못할 때가 있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리메이크 광고에 있어서도 지킬 것과 바꿀 것의 밸런스를 잘 잡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은퇴생활도 마찬가지다. 과거와 현재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과거 방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 보다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은퇴를 했다고 해서 과거를 사는 것이 아니라 이세상 모든 이들처럼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과 똑같아 지려고 애써 노력할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현재의 표준이 되는 보편적 정서와 트렌드를 습득하기 위한 노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신재훈

    BMA전략컨설팅 대표(중소기업 컨설팅 및 자문)

    전 벨컴(종근당계열 광고회사)본부장

    전 블랙야크 마케팅 총괄임원(CMO)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