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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의 부질없음에 대하여[하정훈의 아재는 울고 싶다]
하정훈 | 승인 2020.08.30 15:21

[청년칼럼=하정훈]

계약직이 마무리 돼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 실업급여는 그냥 주지 않는다. 적극적 구직활동을 증명해야 지급된다.

그러나 그것을 떠나 나도 안정적으로 직장에 귀속되고 싶다. 10년 넘게 무명 예술활동과 프리랜서로 일하다 30대 중반이 넘어 처음으로 계약직 일을 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첫 직장같은 개념인데, 프리랜서 때와 비교해보면 좀 답답한 측면이 많았다.

일단 자리에 박혀 9시부터 6시까지 일이 있든, 없든 앉아 있어야 하니 말이다. 시간을 때워야 하는 지루함이 있어 조금은 '때우는 태도', 즉 소극적 태도로 일하기 마련이었다. 반면 좀 놀아도 돈이 지급된다는 건 참 좋았다(?). 프리랜서 때는 명절날 선물도 안나온다. 쉬는 날은 가차없이 수입 제로다. 사무실에 박혀있는 계약직이었지만 명절날에도 급여가 책정되고, 일이 있건 없건 돈이 계산되니 이래서 사람들이 정규직~정규직~하는구나 알게 되었다.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이런 거 알아버린 나는 도대체 뭔가?

늦은 나이지만,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싶다. 그래. 그럼 어찌 들어가야 하는 건가?

어쩌긴 어째 구직활동을 해야지...

픽사베이

자~ 그럼 구직활동의 첫번째. 자소서를 써보자.

자소서는 참 쓸 때마다 곤혹스럽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으되, 난 내 어린시절의 과거 이야기를 들추는 게 싫다. 솔직히 과거에 어쩌고~저쩌고랑 지금 나의 모습이랑 상관 없다. 많이 상관없다. 완전히 다른 나인데 과거를 떠올리며 회사에 맞게끔 나의 성장과정을 써가는 것이 받아들이기 좀 힘들다. 그런데, 그것보다 문제인 건 그 어떤 회사를 위해 자소서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썼는데, 무수한 경쟁 속에서 탈락하게 되면 그 자소서는 지구에서 공중분해된다는 것이다.

요근래 몇 군데에 자소서 정말 치열하게, 없는 진심 다 끌어서 열심히 써넣었다. 내 딴에는 진심의 스토리이기에 다 썼을 때 뿌듯함도 있고, 충만감도 들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구나~ 자아도취도 해봤다. 그런데 떨어지고 나니 이 자소서는 그냥 아무 쓸모 없는 유물일 뿐이었다. 이렇게나 많이 썼는데... 지금 집에 남아도는 자소서만해도 몇십장이다.

이거 문제 아닌가? 분명 나보다 더 많이 자소서를 쓴 청년들도 있을 것이다. 자서전으로 만들어도 될 분량이다. 이 나라는 우리 청년들에게 왜 이리 가혹한 처사를 내리는 건가? 그 자소서들 다 어찌할텐가? 그 노력들 다 어찌 보상해줄 것인가?

물론 기업으로선 아무나 채용할 수도 없고, 기본적으로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 이 사람이 우리 조직에 과연 어느 정도 맞을까? 등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제도의 필요함을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러나 지원자가 만약 거짓말을 잘 하는 인간이라면? 그런 사람 있다. 자기소개 어눌하게 하고 소극적이면서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일 잘하는 사람. 반면에 또 이런 사람도 있다. 말만 현란하게 하면서 일은 늘어지게 안하는 스타일. 분명 공감할 것이다.

자소서 양식을 보자. 성장배경, 이 회사에 대한 포부. 10년 후 이 회사에서 내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뭐 그런 사항들. 이거 기업 입장에서도 너무 게으른 거 아닌가? 쓰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그냥 거짓말들을 늘어놓을텐데...거짓말 경쟁일 것이다. 다 나 잘났고, 나 열심히 하고, 10년 후 든 백년 후든 이 회사에 뿌리 박을 것이고, 절대 이직할 생각 없고, 이 회사에 헌신하다 그냥 죽겠다고 써댈 것이다.

한국사회의 이직률만 보더라도 분명 청년들 자소서에 쓴 포부대로 회사생활 하는 청년들 많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뭐 자기소개서 절차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조금은 정성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다.

갑을 관계에서 오로지 '갑적인 위치'에서 아무나 봉사할 친구,무조건 예스할 친구 뽑는다 생각하지 말고, 그대들도 우리에게 정성을 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 자기소개서 같은 거를 채용공고문에 딱 기재하고 우린 어떤 인재를 정말 간절히 필요하니, 기업 자소서를 한번 읽어주십쇼~하는 정성 같은 것 말이다. 공상과학 영화같은가? 아니면 최소한 자기소개서 탈락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라도 건네주던가?  

국가에서 자소서 백장 쓴 사람에게 후원금 같은 걸 주면 좋겠다. 실업급여를 받고 있어서 그런가, '자소서 급여'라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국가예산 이럴 때 안쓰고 어디에 쓰나? 자소서 급여, 어서 빨리 도입하자. 이 나라야!

 하정훈

 그냥 아재는 거부합니다.

 낭만을 떠올리는 아재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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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홍 2020-09-01 09:56:11

    칼럼의 역발상과 호소하려는 글에 깊이 공감합니다.
    자소서만 보고서 기계적으로 뽑는 인사담당자가 있을 거 같아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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