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 “종교는 종교인이다”

[논객칼럼=안희진]

20여년 전쯤 됐으려나? 학생 때 KSCF(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라는 각 대학 기독학생회의 연합체에서 만났던 선후배, 동료 10명과 그들이 추천한 1명씩, 도합 20명이 <교회걱정연구회>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목사도 있고, 가톨릭 신부, 성공회 신부 등 네명의 교역자(敎役者)와 열여섯명의 평신도로 구성된 스터디그룹이자 실천모임이었다.

1년이면 6월과 12월에 두 번 만난다. 매번 첫 번째 ‘의제’인 <다음 모임 날짜 정하기>가 끝나면, 회원들이 준비한 <교회개혁과 발전>에 관련된 발제를 듣고, 케이스 스터디와 실천방안을 토론한다. 회비는 당일 총 소요경비를 ‘무조건’ 참석자 숫자로 나누는 이른바 1/N방식이고, 혹시라도 잔액이 있는 경우, 그날로 지출하여 모임의 잔액은 늘 '0'이다. 물론 기금도 없고, 정기회비도 없다. 회계문제에서 조그마한 실수도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연락을 위해 간사가 한명 있을 뿐이다. 목사든 평신도든 모두 동등한 회원일 뿐, 누구에게도 어떠한 배려나 특혜도 없었고 그것을 회칙에 명기했다. 모두 <한국교회가 거듭나기를 바라는 사람>일 뿐이다. 격월로 가졌던 정기세미나와 초청 강연은, 특히 당시로는 꽤나 센세이셔널한 주제와 내용들이어서 일부 교회나 목사들 사이에서 조금은 괜찮은 모임으로 알려졌었지만, 10년 전쯤 만장일치로 해체를 결의해서 현재는 없는 모임이다.

해체 될 무렵 이런 일이 있었다. 그것이 해체 이유는 아니다.

연세대학교 루스채플에서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대중집회로 갖던 날, 강사로 초청된 모교회의 목사이자 전임 신학대학 교수의 <교회개혁과 평신도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강연은 그날 모인 200여명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강연회가 끝나고 연세대 앞 식당에서 강사와 함께 40여명이 함께 식사를 하면서 약간의 소동이 벌어졌다.

픽사베이

조금 늦은 시간에 40여명이 갑자기 들이닥친 때문인지 배식이 늦어지고 종업원들이 다소나마 불친절하자 그 교수 목사가 순식간에 열을 받더니 여종업원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한번으로 끝난 게 아니다. 식당업의 자세와 종업원의 태도 등 식당개혁을 부르짖으며 급기야는 주인과 종업원을 모두 세워 놓고 훈계를 하는데 그 말조차도 거의 욕설이었다. 그토록 좋은 말을 한, 같은 입에서 저런 욕설이 터져 나올까 싶었다. 모인 사람 모두가 기독교인이고, 교수고 목사들인 걸 모두 다 알 텐데...라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흐르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단골식당이었던 까닭에 더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 교수 목사의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강연의 진정성이 의심됐고, 인품과 인격까지도 의심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다못해 2대째 목사집안이란 말도 거짓으로 들렸고, 그가 나왔다는 뉴욕의 U신학대학 졸업장마저도 가짜라고 여겨졌다. 처음의 긍정적인 평가가 모조리 부정적인 것들로 바뀌었다.

우리들은 생활주변에서 이따금 그 소중한 미덕을 왕창 깨버리는 유명인사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된다. 대통령에서 국회의원, 장관에 이르기까지...비단 고위인사, 유명인사 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언제나 그럴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분노할 때 조심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웃는 얼굴이 있고 화난 얼굴이 있다. 정직한 얼굴이 있고 비겁한 얼굴이 있다. 고상한 얼굴도 있고, 야비한 얼굴이 있다. 까만 얼굴이 있고, 하얀 얼굴이 있다. 예쁜 얼굴이 있고 미운 얼굴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얼굴이 있는데 그 잘 생기고 못생긴 것이야 어떻게 하겠는가? 물론 이 시대는 성형기술로 완벽하게 딴 사람이 된 인조인간이 있는가 하면, 유명 연예인과도 같이 예쁘게 변해버린 복제인간도 있다. 흔히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얼굴이 마음의 거울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된 듯하다.

어쨋거나 그 삶의 모습이 그 사람의 얼굴을 대변한다. 인간의 얼굴, 나의 모습, 나의 얼굴, 우리의 얼굴은 과연 어떤가? 어떤 목사의 열받아 욕설하는 얼굴이 목사같지 않은 목사, 인정머리 없는 목사, 전도길 막는 목사가 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네 평신도들 삶의 모습이 교인답지 않은 교인, 인정머리 없는 교인, 전도길 막는 교인은 아닐런지 반성하게 된다. 반성해야 한다.

교인다운 교인, 인정 있는 교인, 전도의 문, 선교의 문을 활짝 여는 교인을 세상은 바라고 기다린다. 모두 아름다운 삶의 얼굴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날의 감상이었는데, <교회걱정연구회>가 오만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어떤 목사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기로 하고 그로부터 두달 후 우리는 만장일치로 <교회걱정연구회>를 해산했다.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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