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현대인의 고전읽기]-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오렌지>(A Clockwork Orange)

[논객칼럼=김호경]

'시계태엽오렌지' 책 표지

자칭 ‘불량배’들은 다르다

여기 남자 4명과 여자 3명이 있다. 만약 이들이 짝을 맺는다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남자 3명은 여자 3명과 1:1로 짝을 맺고, 남자 1명은 어쩔 수 없이 혼자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는 시시껄렁하고 평범한 남자들의 하찮은 방식이다. 불량배(혹은 양아치 아니면 깡패) 기질을 지녔다면 남자 1명이 여자 3명을 독차지하거나, 남자 4명이 여자 1명을 농락하는 것이다. 그래야 어둠의 세계에서 보스가 될 수 있으며, 여자를 잔인하게 다루는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렉스(Alex DeLarge)는 그렇게 주장한다. 이 기괴한 주장을 피트, 죠지, 딤은 얌전히 받아들인다. 감히 알렉스에게 저항할 수 없다. 15살의 알렉스는 11살 때부터 청소년 교정원에서 굴러먹은 전력을 지니고 있다. 지금도 교정원 담당 지도교사 멜토이드의 감시를 받지만 경찰, 공권력, 학교, 부모, 교사, 법률, 보편적 시민의식, 교육, 도덕을 쓰레기로 취급한다.

그러나 아직은 나이가 어리기에 낮에는 제도의 거대한 힘에 억눌려 마지못해 학교엘 간다. 하지만 밤이 되면 사내로서의 야욕을 여지없이 발휘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며 ‘밤일’을 한다. 그 일은 아주 쉽다. 선량한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 들어가 강도짓을 하고, 그 돈으로 밀크바에서 호기를 부린다. 불쌍한 할머니들에게 선심을 쓰고, 차를 훔쳐 질주하다가 강물에 처박고, 호의를 베푸는 여자를 남편이 보는 앞에서 강간한다. 다른 패거리들을 만나면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감히 내 영역을 침범하는 '의짓잖은 양아치들'을 곱게 놔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네 명은 밤의 황제가 되어간다. 즐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만 황제에게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남에게 빼앗으면 그만이고, 혹여 돈이 남는다면 허공에 뿌려버린다. 그들에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정한 터프가이를 만나기는 어렵다

현대는 불안한 사회라고 다들 말한다. 범죄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그 요인 중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2020년과 1970~80년대를 비교하면 어느 시대가 더 범죄가 많았을까? 정확한 통계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체감적으로 따지자면 70~80년대에 범죄율이 더 높았다. 그 시절에 학교에서 왕따라는 것은 없었으나 ‘주먹’이 지배했던 것은 분명했다. 고교입시가 있던 시대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재수(再修)해서 들어온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또래보다 겨우 1살 더 많은 것이 대단한 위세를 발휘해 교실 내 서열을 엄격하게 만들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그 시절의 표상이다.

속칭 ‘논두렁 깡패’들이 가을 추수가 끝나면 인근 소도시로 몰려가 사거리 양아치들과 패싸움을 벌이고, 대학 진학을 포기한 고3 깡패들이 밤마다 몰려다니며 소란을 피우고, 휴가 나온 장병들이 당구장과 선술집에서 행패를 부리고, 스포츠머리(혹은 장발) 똘마니들이 다방과 나이트클럽에서 영역 다툼을 벌였다. 공단의 남공들과 여공들은 일요일이면 한껏 멋을 부리고 튀김집, 극장, 맥주집에서 활개를 쳤다. 필연적으로 옆 좌석의 청년들과 시비가 붙어 싸움으로 번졌다. 그러한 곳에 진정한 터프가이나 의리남은 없었다.

중소도시 기차역 뒤편에는 반드시 사창가가 있어서 창녀들과 음흉한 포주들, 얍삽한 삐끼, 기도들이 넘실거렸다.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가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도 시골은 도시에 비해 평화로웠지 않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시골 청소년들의 세계는 도시보다 더 은밀하게 문란했다(물론 증거는 없다). 도시의 기차역에는 역전파출소가 있는데 그곳 경찰들은 봄이 되면 가출한 시골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업무의 태반이었다. 여공과 고3 남학생이 동거하는 일도 많았다. 이러한 모든 세태들의 희생자를 뽑으라면 ‘여성’이 첫 번째이다.

당연히 이 모든 것들은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다들 귀하게 자라고, 교육을 잘 받고...사회 감시망이 곳곳에 있다. 어울려서 양아치 짓을 하는 것보다는 나 홀로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앤서니 버지스는 30여 편의 소설을 썼으며 그중 <시계태엽오렌지>가 대표작이다@김호경

감시와 처벌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위에 열거한 행동들을 한 사람은 지위, 재산, 학력, 종교, 성별과 관계없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다시피 벌은 공평하게 부과되지 않는다. 또 같은 죄에 대한 벌의 종류도 다양하다.

온갖 나쁜 짓(폭행, 강도, 절도, 주거침입, 강간, 범죄단체 구성, 거짓 진술 등등)을 일삼은 알렉스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법제도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친구의 배신으로 경찰에 붙잡힌다. 그리고 처벌을 받는다. 징역 14년. 그러나 교정 당국은 새로운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은 단순하다. 죄수번호 6655321의 알렉스는 주사 한 대를 맞고, ‘필름’을 보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그 주사는 무엇이고, 필름은 과연 무엇일까?

흉측한 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인터넷에서는 범인(피의자)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막상 범인이 붙잡히면 인권이 등장한다. 범죄자도 인간이므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인터넷은 더욱 시끄러워진다. 현재 우리나라 법 조항은 5,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법 조항은 계속 만들어진다. 고조선 시대에는 팔조법금(八條法禁)이 전부였다. 8개의 법만 있으면 인간 세상을 충분히 다스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팔조법금의 첫 번째인 ‘살인자사’(殺人者死;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인다)를 오늘날 관용없이 시행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평화로워질까? 아니면 인권이 짓밟히는 시대로 후퇴할까? 궁극적으로, 제도의 힘으로 인간의 악한 본성을 교정할 수 있을까?

더 알아두기

1. <시계태엽오렌지>(1963)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86년 지학사(志學社)에서 간행된 <조직과 인간>(홍기창 옮김)으로 추정된다. 부제는 ‘86 노벨문학상 후보작품’이다. 이후 1995년에 도서출판 벽호에서 <조직과 인간>(오늘의 세계문학 12)으로 재간행되었으며,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민음사 판 <시계태엽오렌지>(박시영 옮김)는 2005년 출판되었다.

2. <조직과 인간>은 헌책방을 샅샅이 뒤지면 어렵사리 구할 수 있다. 후속작으로 평가할 수 있는 <The Wanting Seed>(직역하면 ‘부족한 씨앗’)는 <조직과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묶어져 있다.

3. 앤서니 버지스(Anthony Burgess 1917~1993)는 맨체스터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다고 소개되어 있는데, 어학이나 문학보다는 음악에 더 열중했었던 듯싶다. 다양한 음악을 작곡하고, 발표회도 가졌다. 실제 이 소설에는 일반인의 수준을 한참 넘어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한 청년의 파멸을 그린 작품이다 @김호경

4. 청소년(청년)의 일탈행위와 파멸을 그린 작품은 동양에서는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인간실격>, 유럽에서는 <시계태엽오렌지>, 북미에서는 제롬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대표적이다. 앞의 두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샐린저의 삶을 보여주는 다큐 영화는 ‘호밀밭의 반항아’(Rebel in the Rye)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었다.

제롬 D. 샐린저는 불멸의 명작 <호밀밭의 파수꾼>을 남겼다 @김호경
<시계태엽오렌지>는 1973년 스탠리 큐브릭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김호경

5. 법을 위반한 행동에 대한 처벌은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을 권한다.

 김호경

1997년 장편 <낯선 천국>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여러 편의 여행기를 비롯해 스크린 소설 <국제시장>, <명량>을 썼고, 2017년 장편 <삼남극장>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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