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송의 어둠의 경로]

[청년칼럼=서은송]

매미가 갓 울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편히 쉬고 있는데, 별안간 툭 하구 빗방울 하나가 이마에 내려앉았다. 비가 오나 싶어, 황급히 창문에 머리를 들이밀자, 이번에는 눈에 한 방울이 떨어졌다. 하늘은 몹시도 청량하고 뜨거운 햇살이 아스팔트 위를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도대체 이 빗방울은 무엇이란 말인가!

15층의 아파트,11층에 살고 있는 나에게 용의자는 4개의 세대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그런 소박한 재미의 화를 돋구다, 밥 먹으라는 소리에 금세 나의 화는 사그라들었다. 그러다 오늘이 왔다. 하염없이 게으른 나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새삼 슬펐다가 기뻐하고, 오지 않는 졸음을 어떻게든 성사시켜보려는 자기 위한 노력을 무던히 가하던 중이었다.

“툭… 툭… 툭… 툭… 툭…”

일정한 간격의 빗방울 소리가 우리 방 창문 밖에 설치된 실외기 위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작은 소음이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나니, 내게는 더 이상 작은 소음이 되지 못했다. 낮잠을 무던히 자보려 노력하는 나의 정성이 무너져내리고, 그 사소한 빗방울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혹시나 어디서 떨어지나 확인하다가, 11층이라는 높이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기에, 방충망 너머로 빼꼼 쳐다본 다음, 1층으로 내려가 우리 방을 올려다보았다.

픽사베이

우리 방 에어컨 실외기보다 두 층 위에 설치된 14층의 실외기. 그리고 바깥으로 삐죽 나와 있는 배수관. 범인은 바로 14층 실외기였던 것이다!! 부글부글 들끓는 속을 참고, 다시금 방으로 올라와 빗방울 소리를 들어본다. 적당한 깊이의 떨어짐 소리. 방울 하나가 낮을 울릴 정도라면 적어도 3층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짐에 마땅하다!

나는 이렇게 세대 간의 싸움을 홀로 시작했다. 우선 증거로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검색해보니, 나와 비슷한 사례가 수십 가지가 나왔고 이는 배수관을 베란다 내부에 두어야 하는데, 외부로 흘러내리게 함으로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댓글에는 ‘어떤 몰상식한 사람이 에어컨 실외기 배수관을 밖으로 빼냐고 그랬고’, 나는 이에 적극 동의하여 14층에 올라가 담판 짓기로 마음먹었다.

‘윗집에 올라가서 고쳐주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말할까.’, ‘요새 세대 간 싸움이 엄청 무섭던데, 나도 대비는 해야겠다.’ 등 홀로 말이 될 듯 되지 않는 상상을 하며, 엄지손가락만한 스위스 맥가이버 칼을 나의 멜빵바지에 넣어두고서 14층을 향해 현관문으로 나서려던 찰나!

“어디가?”

아, 맞다. 집에는 오빠가 있었다. 나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담판을 지으려 올라가려고 하니, 10분이 지나도 내가 내려오지 않으면 14층으로 올라오라는 말과 함께 멋있게 나가보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도 배수관 밖으로 빼놓아서 뭐라 못해.”

“아… 그래? 그럼 별수 없지 뭐. 물 떨어지면 창문 닫고 에어컨 켜야겠다.”

베란다를 터서 조금 더 넓은 방을 가진 나는, 방에 물을 흘려보낼 수 있는 수로가 없었고 배수관을 연장하려면 부엌까지 길게 선을 빼야 하는 터라 밖으로 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나름의 진정성 있는 우리 방 배수관의 변명이었다. 이틀간 혼자 화내고, 싸울 생각에 홀로 흥미로워한 내 모습이 너무나도 웃겼고, 무엇보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작은 빗방울 소리로 나의 상상 속에서는 이웃과의 전투가 시작되었고, 승리는 법적으로도 나의 것이었으며, 통쾌함에 홀로 웃는 결말까지 이어졌으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뭐라 한다고, 내가 딱 똥 묻은 개였던 것이다.

남의 일이 나의 일이 되었을 때, 아래층에서 소음으로 뭐라 하지 않은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우리 아래층에는 모두 거실에 에어컨이 있을 뿐, 방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아 세대 중 14층과 11층만 사용하고 있던 실외기 라인이었기에 우리집 물에서 떨어지는 소리에 나처럼 욕을 하는 똥 묻은 개가 없었던 것이다.

훗날, 누군가가 방 라인에 에어컨을 설치하여 자신의 실외기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그 사람은 똥 묻은 개가 되고 나는 비로소 겨 묻은 개가 되겠지만… 개들끼리 싸움에 백수인 오빠는 인간이 될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금목걸이 찬 강아지보다 손 하얀 인간이 나은 것을… 실외기 하나로 난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서은송

 제1대 서울시 청소년 명예시장

 2016 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인권위원회 위원,한양대  국어국문학 석사과정

 뭇별마냥 흩날리는 문자의 굶주림 속에서 말 한 방울 쉽 게 흘려내지 못해, 오늘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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