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논객칼럼=임종건]

2017년 뉴질랜드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발생했다는 한국 외교관 김 모 영사와 현지인 남성 직원 간의 성추행 의혹은 이성 간이 아니라 동성(남성) 간의 성추행 의혹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발생지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동성애가 보편적인 나라라는 점도 특기할 일이다.

사건의 전개과정도 특이하다. 피해자가 김 씨를 범행 즉시 고발한 것도 아니고, 김 씨가 뉴질랜드 대사관을 떠나 필리핀 대사관으로 임지를 옮긴 여러 달 뒤, 피해자가 뉴질랜드의 한 언론에 제보해 알려지게 됐다.

이 사건이 국내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뉴질랜드 총리가 지난 7월 28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사전에 우리 정부와 의견조율도 없이 이 사건을 불쑥 제기해 사건 해결을 위한 한국정부의 협조를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부터였다.

국내 언론과 야당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는 접근보다는, 조기 수습이 안 돼 외교분쟁으로 비화한 점을 이유로 정부의 외교적 실패라고 공격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8월 26일 국회발언을 통해 이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국민과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죄송하지만, 뉴질랜드 정부나 피해자에 대해서는 사과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강 장관의 이 발언은 뉴질랜드 총리의 문제제기 방식에 대한 불쾌감과 함께, 한국 외교관에 대한 면책특권의 포기, 뉴질랜드 법정이 발부한 김 씨 체포영장의 집행 협조 등 뉴질랜드 정부의 외교관례에 어긋나는 일방적인 요구에 대한 강한 불쾌감의 표시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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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관계가 명확하지도 않은 사안에 관해 뉴질랜드가 우리 외교관의 면책특권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나, 그를 체포해서 뉴질랜드 법정에 서게 해달라는 것은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무례한 요구다. 강 장관의 발언은 정부의 자국민 보호 원칙으로도 당연하다.

이 사건의 원인과 해결방법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먼저 규명돼야 할 것이 두 사람의 성정체성이다. 김 씨는 자신은 동성연애자도 변태성욕자도 아니라고 밝혔으나, 피해 남성의 성정체성에 대해선 밝혀진 것이 없다.

피해자는 김 씨가 자신의 가슴과 배, 허벅지를 세 차례 만졌다고 주장한다. 여성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남성이 이런 접촉행위를 시도했다면 어느 나라에서나 이론의 여지가 없는 성추행이다. 성추행의 개념이 ‘이성’ 간이 아니라 ‘사람’ 간으로 바뀜에 따라 동성 간의 성추행도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추세다.

그러나 이성 간의 성추행 개념에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과는 달리, 동성 간, 특히 남성 간의 접촉에 대한 성추행 개념은 문화적 차이나 사회통념의 차이로 인해 이론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상관이나 연장자인 남성이 연하의 남성의 어깨나 엉덩이를 치는 것은 격려의 제스처나 친밀감의 표시로 용인되는 경우가 많다. 김 씨가 피해자의 배를 만진 행위는 친밀감의 표시였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이유다. 김 씨는 ‘운동을 해서 뱃살을 빼라’는 뜻으로 피해자의 배를 건드렸다고 밝히고 있다.

그 점에서 피해자가 동성애자가 아닐 경우 이 사건은 성추행보다는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볼 수도 있다. 재판에서 두 사람의 친밀도나, 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도를 감안해 가해자에 대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피해자가 동성애자라면 가해자에 대한 정상참작의 여지는 축소되거나 아예 부인될 수 있다. 김 씨가 피해자가 동성애자인지를 사전에 알았건, 몰랐건 간에 그렇다고 하겠다. 몰랐다면 주의태만이고, 알았다면 고의성이 인정될 것이다.

피해자가 동성애자 가운데 특히 여성역할의 동성애자라면 김 씨의 행위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남성이 여성에 가한 성추행 혐의가 된다. 성추행이 동성애와 연관되면 이처럼 사건은 매우 복잡해진다. 두 사람의 성정체성 규명이 필요한 이유다.

뉴질랜드는 7년 전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다. 여성 역할의 남성 동성애자인 필립 터너 현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남편을 대동하고 부임했다.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이들을 합법적 부부로 인정해 청와대 부부동반 만찬에 초청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사건 피해자가 동성애자가 아니라 해도 성추행을 당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한, 김 씨는 뉴질랜드가 아닌 한국에서도 유죄의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국내 법원은 성인지감수성 논리를 원용해, 남성에 의한 여성의 성추행 주장을 폭넓게 용인해왔다. 성추행범에겐 10년 이하 징역,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가해진다.

뉴질랜드 정부는 한국에 대해 국권침해적인 방법으로 이 사건의 해결을 요구하며, 외교적 무례를 저지를 것이 아니라, 피해자로 하여금 한국을 재판관할지로 제소하게 하는 합법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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