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신재훈]

나이가 많을수록 현재 보다는 과거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얘기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살날 보다 살아온 날이 훨씬 더 많을 뿐만 아니라 겪어보지 못한 불확실하고 추상적인 미래 보다는 이미 겪은 확실하고 구체적인 과거가 훨씬 더 떠올리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다 보면 좋았던 일도 있고 나빴던 일도 있기 마련이다.

많은 경우 과거를 대함에 있어 지나친 향수나 후회라는 양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양극단은 그 뿌리가 같다.

사진;픽사베이

현재의 자신을 합리화 하려는 본질은 같지만 발현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현재에 대한 불만족을 해소하거나 현실을 도피하는 방법으로 과거를 미화하고 그 향수 속에 빠져 살기도 하고, 불만족스러운 현재의 원인이 과거에 있다고 생각하여 과거에 대한 비하나 후회를 통해 현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과거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감이 없고 현재(현재의 지위, 재력, 건강 등)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학창시절 즐겨 듣던 과거에 대한 전형적인 레파토리가 있다.

“자기네 집은 왕년엔 엄청난 논과 밭을 가진 만석꾼 부자였는데 할아버지가 노름으로 다 날려서 지금은 이렇게 가난하게 살고 있다.”

어렸을 때는 천재였는데 보약을 잘못 먹어서 혹은 머리를 다쳐서 지금처럼 바보가 되었다는 얘기와 맥을 같이 한다.

물론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이런 말을 통해 과거를 미화 시킴으로써 그렇지 못한 현재를 합리화 하거나 보상받으려 한다.

과거에 대한 생각을 하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100프로 정확할까?

이 문제에 관해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주장한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만일 우리가 경험한 과거의 모든 사건들과 순간순간 경험했던 감정을 저장해놓은 데이터가 있다면 다시보기로 확인할 수 있지만, 과거를 정확하게 담아놓은 파일은 우리 뇌에 없다.

따라서 과거회상은 다시보기 작업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라는 프레임으로 재해석 해낸 과거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과거에 대한 기억인 것이다.

정확한 고증 보다는 현재의 심리상태나 이해관계에 따라 과장, 변형, 심지어 왜곡 되기도 한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과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재구성 된 과거라는 이름의 창작일 뿐이다.

요즘 유행하는 “라떼 이즈 호스(젊은 사람들과 대화할 때 보통 “나 때[라떼]는 말이야[이즈 호스]”라는 말로 시작하는 꼰데들의 특징을 살려 희화한 표현임)”라는 표현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나이든 사람들은 젊은 시절을 회상할 때, 과거에도 자신들은 지금처럼 현재 가진 모든 경험과 지적 능력과 자제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착각한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젊은 시절에 비해 능력도, 의지력과 자제력도 부족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그가 젊은이였던 당시의 나이든 사람들 모두가 똑같이 느꼈던 생각이다.

오죽했으면 3만년 전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도 “요즘 젊은것들 싸가지 없다”는 문구가 발견되었겠는가?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조지 베일런트의 말은 이러한 생각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나면, 자신은 처음부터 작은 나비였다고 주장하게 된다”

우리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표현이 있다.

이를 조지 베일런트식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표현되지 않을까?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고 나면, 자신은 처음부터 작은 개구리였다고 착각한다.”

현재의 초라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과거를 회상하는 과정에서 과거는 실제보다 더 부풀려지고 화려한 모습으로 재구성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반복 될수록 본인 스스로도 실제 과거와 다른 왜곡된 과거를 사실로 믿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라는 프레임은 사람들의 의도나 이해관계에 따라 나비의 사례처럼 나는 과거에도 현재만큼 유능하고 자제력 있었다고 과거를 현재와 유사한 것으로 포장하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현재보다 훨씬 못한 과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자신을 더 나아진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해 과거의 자신을 쓰레기로 만드는 것이다.

어차피 과거를 사실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 것이, 또한 과거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인가?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 보려고 한다.

    신재훈

    BMA전략컨설팅 대표(중소기업 컨설팅 및 자문)

    전 벨컴(종근당계열 광고회사)본부장

    전 블랙야크 마케팅 총괄임원(C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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