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진의 지구촌 뒤안길

[ 오피니언타임스=유세진]   스가 요시히데(管義偉) 전 일본 관방장관이 16일 아베 신조(安倍晉三)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일본의 새 총리로 취임했다. 지난 1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압도적 차이로 새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던 스가가 이날 일본 의회에서 새 총리로 뽑히는 것은 이미 확정된 수순이었다. 지난 2009년 이후 집권 자민당 내 많은 파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던 그가 자민당 소속 현역 의원들의 압도적 지지 속에 새 일본 총리로 취임하게 된 것은 그의 강점인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스가는 현 자민당 권력 체계를 유지하려는 각 파벌들의 이해타산으로 새 총리로 선출됐지만, 동시에 각 파벌들로터의 갖가지 압력에 사달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되기도 한다.

사진=네이버 캡쳐 (KBS 뉴스)

 스가 새 총리는 새 총리 선출 전부터 아베 전 총리의 정책들을 계승할 것임을 분명히 밝혀왔다. 아베 전 총리가 일본 최장수 총리를 역임했다면 스가는 아베 전 총리 밑에서 일본 최장수 관방장관을 지냈다. 사실상 아베 전 총리와 같은 배를 탄 것이다. 이제 와서 아베의 정책들을 계승하지 않겠다면 아베 전 총리는 물론 자신까지 포함해 8년 가까운(7년8개월) 동안의 모든 업적들을 부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스가로서도 아베의 정책들을 이어받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외에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베의 재임 기간 업적이 후임자가 본받아야만 하겠다고 밝힐 정도로 뛰어났던 것은 결코 아니다. 아베노믹스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있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은 가운데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20년에서 헤어나오게 하겠다던 아베의 약속은 일본 경제가 계속 곤경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공염불로 전락하고 말았다. 과거의 정책 답습이 아니라 새로운 일본의 앞날에 대한 비전을 보여줄 새로운 사고, 새로운 정책이 필요한 시점에 전임 아베 총리의 정책을 답습할 것이라고만 밝히는 것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에는 결코 충분하지 못하다. 아베 시대를 넘어 스가 자신의 시대로 나아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스가가 새 일본 총리로 선출된 것은 결국 자민당의 현 권력 구조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인물을 선택하기 위한 자민당 내 복잡한 파벌들 간 이해 관계에 따른 것일 뿐 일본이 앞으로 지향할 어떤 목표와 관련된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의 적기지 선제공격 능력 확보를 추진하는 등 평화헌법 개정 노력을 계속하며 강경 보수 노선을 고집해온 아베 전 일본 총리는 재임기간 중 80여개국을 방문하는 등 외교 정책 면에서는 비교적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을 뒤엎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얼마 안 돼 미국을 방문 트럼프와 함께 골프를 치면서 금으로 도금한 드라이버(골프채)를 선물하는 등 트럼프의 환심을 사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미일 동맹을 외교 정책을 핵심 축으로 내세웠다. 그럼에도 미국으로부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를 피하지 못했고 주일미군 주둔 비용의 대폭 증액 요구에 시달리는 등 미국으로부터의 공세를 피하지는 못했다.

이와 달리 스가 새 일본 총리에게 있어 외교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은 그에게는 최대의 물음표일 수밖에 없다. 스가 새 총리 역시 아베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최우선으로 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가 공을 들였던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친밀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줄곧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바이든이 승리하더라도 예측 불가능했던 트럼프 행정부 때와 비교하면 일본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덜 적대적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아베 전 총리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중국과 영유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센카쿠(尖閣)열도을 둘러싼 긴장이 계속 고조되는 등 중국과 해결해야만 하는 현안 문제도 스가로서는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사진=네이버 캡쳐 (KBS뉴스)= 중.일 영토분쟁의 열도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일 수밖에 없다. 스가는 최근 "한국은 우리의  중요한 이웃이고,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 항상 소통하고 전략적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외교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일 관계 개선은 양국 모두에 중요하다. 북핵 위협과 권위주의적 중국의 부상 등 양국은 비슷한 위협에 함께 직면해 있다. 트럼프의 미군 주둔 비용 대폭 증액 요구에도 함께 맞서야 한다.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조율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중국과 관련한 지역적 불확실성을 관리하는데 도움이 되며, 한국도 북한을 다루는데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아베 전 총리 재임 중 한·일 관계는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다.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에 따른 강제징용공 피해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싸고 양국 관계는 급전직하했다. 그러나 양국 관계 악화는 두 나라 모두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 일본 정권들은 한·일간 불행한 과거에 대한 반성을 근거로 한·일 관계에 접근했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공식사죄를 표명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일본의 전쟁범죄를 인정한 2005년 '고이즈미 담화' 등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는 2015년 담화에서 앞으로 일본은 과거 문제와 관련 한국에 사과를 계속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방적 관거 청산 요구로 한국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아베에서 스가로 일본 총리가 바뀌었다고 해도 정책이 달라지지 않으면 일본이 바뀌었다고는 결코 할 수 없다. 스가 새 일본 총리가 한·일 관계를 새 차원으로 이끌지 못한다면 그는 결국 아베 전 총리의 아류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난 1989년 다케시다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가 사임하면서 새 총리로 추대했던 이토 마사요시(伊東正義)는 "책 표지를 바꾸어도 내용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며 총리직을 고사했었다. 

 

 유세진

 뉴시스 국제뉴스 담당 전문위원

 전 세계일보 해외논단 객원편집위원    

 전 서울신문 독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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