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쳐&마케팅]

국가,지자체, 시민,종교단체는 '지수'를 발표해야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은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 여성대회에서 사용된 후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시사상식사전).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정책 입안과 공공예산 편성에 활용되기 시작했고 법조계에서는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 피해자가 처한 상황의 맥락과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개념의 도입 이후 한국은 공적 사적 영역에서 조직 행동과 문화차원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대체로 40대 이후 차/부장급 남자라면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너 요즘 살찐 것 같은데. 조심해” 정도로 흔하게 들을 것이다. 기업과 공공부문은 성 관련 정기 교육을 하고 직장 회식을 피하며 심지어는 여직원들과 자리를 떨어져 앉기도 한다. 이 현상과 관련하여 과도하다, 모호하다 등의 비판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개념이 엄청난 사회변화를 일으킨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하나의 개념은 때로 매우 파워풀하다. 이에 착안해 또 하나 새로운 개념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왜? 지구가 급(急&級) 이상해졌기 때문이다.

                  

사진=픽사베이

지구가 급 이상하다

9월인 지금 미국 서부는 캘리포니아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무려 50개 지역에서 현재만 서울의 20배 면적이 원인 모를 산불로 불타고 있다. 고온에 가뭄 끝의 산불이다. 호주에서도 작년 말 시작해 무려 5개월간 서울의 100배 면적이 타는 역대급 산불이 발생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도 지금 전례 없는 오랜 장마로 코로나 팬데믹에 더해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거기에다 일주일 간격으로 태풍이 덮치고 있다. 작년까지는 매년 폭염 경보였다. 내가 살면서 이런 일이 있었나 싶다. 다시 말한다. 우리가 BTS 성과에 환호하고 모장관 아들 병가문제에 관심이 쏠린 동안에 지구 생명체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 따르면 이 피해는 결국 이 사회 80% 수준에 달하는 아래칸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받게 되어 있다. 2018년 평균기온 16도인 유럽 스웨덴에서는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가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자 이에 충격을 받은 16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등교를 거부하고 기성세대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환경운동가로 나섰다. 이제 18세인 그녀를 따르는 청소년과 기성세대, 명사들도 늘고 있다. 그들은 비행기 타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제 사고를 바꾸고 행동해야 한다.

지속 감수성 개념이란?

그래서 나는 ‘지속 감수성(sustainable sensibility)’이란 개념을 제안하고 싶다. 이는 지속 가능한 지구사회를 위한 인지, 실천 감수성을 뜻한다. 원래는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인지와 실천 감수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나 너무 길어 줄인 개념이다. 쓰레기 제로, 건강한 대안 에너지, 화석연료 사용 절감, 업사이클링 같은 것부터 공동체와 로컬 이코노미를 통한 자급자족 도시로의 전환 운동(자전거 타기, 도시 농업, 지역형 중고시장 등) 등이 지속 감수성이 높은 사회다. 개인으로 보면 탄소 마일리지를 줄이는 중고품/무포장 활용, 지역시장 애용, 육식 감축, 비 미니멀(be minimal) & 버리스타(잘 버리고 덜 버리는)와 화상 라이프스타일 등이 지속 감수성이 높은 것이다. 생소하고 고통스럽고 너무 먼 이야기일 것 같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지자체등 지속감수성 지수를 발표해야!

서울혁신파크가 좋은 사례일듯...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글로벌 혁신 생산기지’를 미션으로 하는 서울혁신파크도 지속 감수성을 높이는데 가일층 힘쓸 것이다. 지자체도 지속 감수성이 높은 도시를 차별화된 목표로 추진하고, 학교도 지속 감수성 교육을 해 야 한다. 구원을 원한다면 종교단체도 해야 한다. 숫자와 평가를 좋아하는 인간들이니 지속 가능성 지수(index)를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다. 청와대도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만 말하지 말고 내부부터 실천해서 매년 지속 감수성 지수를 발표해야 한다. 그래야 인류와 지구가 같이 지속 가능해진다. 해묵은 성장과 분배, 진보와 보수의 딜레마도 이제는 지속 감수성 내에서 풀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코로나19는 그 경고의 시작이다. 한국은 지속 감수성 경제를 선점해야 한다. 

 황인선

현 서울혁신센터장. 경희 사이버대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겸임교수.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KT&G 미래팀장, 제일기획 AE 등 역임. 컨셉추얼리스트로서 마케팅, 스토리텔링, 도시 브랜딩 수행. 저서 <꿈꾸는 독종>, <동심경영>,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 <컬처 파워>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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