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일 군사보호협정을 몰래 체결하려다 들통난 ‘사건’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가서명과 문안조정을 마치고, 국무회의에서도 ‘즉석호떡’처럼 처리한 다음 정식 서명까지 정부는 그야말로 ‘군사작전’ 하듯 일을 치르려고 했다. 그러던 것이 일부 언론을 통해 사전에 보도됨으로써 정부의 ‘작전’은 좌초하고 말았다.

이 ‘사건’에 대해 정부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국민들이 납득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청산도 잘 안된 일본과 함부로 군사정보협정을 체결하려고 추진했던 것부터가 국민감정을 거스르는 일이다. 게다가 비밀리에 체결하려고 했으니, 너무나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정부가 너무 조급하게 서둘렀다는 사실이다. 백번 양보해서 정부가 주장하듯이 한-일 군사정보 협정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협성체결의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당연히 거쳐야 했다.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왜 필요한지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했다. 부작용과 문제점이 예상되고 제기된다면 그 대책에 대해서도 국민을 납득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아울러 국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면 논의가 길어질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논의만 길어지고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논의가 길어지면 길어지는 대로 참고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 나가는 것이 기본상식이다. 하물며 일본을 상대로 한 협정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현정부에서 마무리 되지 않고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감수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군사협정은 이 정권에서 하고 싶더라도 무리하게 서둘러서는 안될 문제임이 분명한 것이다, 이 정권에서 시작했다고 해서 이 정권에서 반드시 마무리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몰래 추진하려 했으니 국민들의 공분이 하늘을 찌를 수 밖에 없다. 옳지 않은 길을 서둘러 가려다 헛발을 디딘 것이다.
 
조급하게 ‘군사작전’하듯이 서둘러서는 안되는 것은 이 밖에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현재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4대강 사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미 알려진 대로 찬반 논란을 떠나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비롯한 사전조사와 여론수렴을 거의 생략하고 이 사업은 시작됐다.

갖가지 부작용이나 비용대비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했어야 했는데, 모조리 빠진 것이다. 사전에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밀어부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차피 이 정권 끝날 무렵이 되면 이 사업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벌어질 터이니, 지금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정부가 최근 들고 나온 몇 가지 현안을 보자. 인천공항 민영화, 고속철도 민영화, 차세대 전투기 사업 등을 충분한 논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양상이다. 이들 사안은 자산규모나 자금조달, 향후의 효율적인 운영방향 등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론지어야 할 대상들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나 국회에서도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필요할 경우 국정조사나 국회 청문회도 해야 된다. 그런 다음에 결론을 내려야 탈이 없고 무난히 추진될 수 있다.

고속철도나 인천공항 민영화의 경우 반대론이 꽤 많지만 찬성의견도 적지 않다. 어느 쪽이든 나름대로 타당성을 갖고 있다. 나 역시 어느 한쪽 편에 서고 싶지 않다. 그 어떤 결론이든 존중해 주고 싶은 것이다. 다만 그 이전에 필요한 논의 과정을 충분히 그리고 제대로 거치기만 한다면.

그러므로 이런 중요사안을 정부가 군사작전하듯이 밀어붙일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지금은 그 어떤 사안이든 '군사작전' 하듯이 밀어붙일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더욱이 정권말기에 이런 것을 모두 다 마치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 심한 과욕이 아닌가 싶다. 과욕 부리지 말고 순리대로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검토중인 서울대 폐지론도 다를 바 없다. 민주당이 왜 이런 검토를 하게 됐는지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과거 서울대에 관한 장기시리즈 기사를 기획하고 써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역시 교육계나 학계 등의 의견 널리 수렴하고 결론지어야 한다고 본다. 민주당이 정권을 다시 잡더라도 이런 과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일찍이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 천천히 걷되 곧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뛰어가되 곧은 길에서 벗어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먼저 갈 수 있다”고 했다. 데카르트가 이 말을 남긴 것은 바로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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