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에 삼성 문 열어줄 가능성 배제 못해

삼성그룹 불법 경영권 승계 사건을 둘러싼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삼성 깃발ⓒ출처=더팩트

[오피니언타임스=이상우기자] 삼십육계 줄행랑으로 유명한 병법서 삼십육계를 보면 차도살인(借刀殺人)이라는 계략이 나옵니다.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죠. 자기 피는 안 흘리고 적을 섬멸할 수 있으니 정말 음험하면서도 훌륭한 계략입니다.

요즘 차도살인이 자꾸 떠오르는 이슈가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연루된 삼성그룹 불법 경영권 승계 사건(이하 삼성 사건) 말입니다. 삼성 사건과 차도살인이 무슨 관계냐고요.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을 거칠게 몰아세우는 일부 진보 언론, 시민단체, 노조 등 반(反)삼성 진영의 태도가 결과적으로 삼성을 노리는 투기자본을 도와준다는 생각이 든다는 얘깁니다. 

삼성 사건의 핵심인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떠올려 봅시다. 합병은 우리 사회 최대 기업인 삼성도 투기자본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2015년 5월 26일 합병 발표부터 7월 17일 임시 주주총회 승인까지 삼성은 그야말로 전쟁을 치렀습니다. 상대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었고요.

엘리엇은 합병이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며 적극적인 여론전을 펼쳤습니다. 만약 엘리엇 의도대로 합병이 무산됐다면 삼성물산은 경영권 분쟁에 휩쓸렸을 수 있습니다. 삼성물산과 지분으로 엮인 삼성전자 등 다른 삼성 계열사도 무탈하진 못했겠죠.

주총에서 진 엘리엇은 2016년 삼성물산 지분을 정리했습니다. 이제 삼성과 투기자본의 대결은 끝난 걸까요. 아닙니다. 삼성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보유 지분 8.81%) 정리 등 풀어야 할 지배구조 현안을 안고 있습니다. 투기자본은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공개 원칙인 공소장을 공개하고 분석 자료까지 배포해가며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을 압박하는 반 삼성 진영의 행동은 투기자본으로선 고마울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이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을 저절로 알게 되니까요. 반 삼성 진영이 의도치 않게 투기자본의 칼로 작용하는 셈입니다.  

삼성 사건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앞으로 수많은 공방이 오갈 것입니다. 반 삼성 진영도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목소리를 낼 테고요. 그건 문제없습니다. 다만 언행은 신중히 해주길 기대합니다.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을 때리다가 국가 경제보다 단기 시세 차익을 우선하는 투기자본에 기회를 주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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