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광해· 인조대의 중립외교 설계자-- 장만 장군

“후금국이 과연 그렇게 대물로 컸단 말이오?”

이이첨이 시비쪼로 물었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후금국의 줄기찬 기세를 모르는 이이첨이 아니다. 다만 그는 여전히 명의 시선으로 후금국을 보고 있었고, 장만이 후금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반발했을 뿐이다. 그런데 한 나라를 ‘대물’로 본다? 장만은 한심해서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누루하치는 벌써 여진 제 부족들을 통합하고 내부체제를 정비하여 흥경(오늘의 랴오닝성 푸순시)에서 후금(1616년)을 세웠다. 후금이라는 이름은 누루하치의 조상이 세웠던 금나라를 계승한다는 뜻이다. 

삽화=김혜선

장만이 이이첨을 향해 설명했다.

“누루하치는 여진족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군사조직으로 팔기군을 창설했소이다. 팔기군은 후금 건국 이전에는 6만 명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8만 명으로 늘어났소. 여진 제 부족과 몽골, 한족의 군사까지 흡수하여 군사력을 확장했소. 그래서 초기 4기군에서 8기군으로 편제를 확대했는데, 군사기능과 행정기능을 포함하는 유목민 특유의 군사조직체로서 상비군 외에 주민들이 평상시 유목생활을 하다가도 비상 군호가 떨어지면 재빨리 팔기군 대오를 갖춰 전사로 돌변하오이다. 조직력과 기동력이 어떤 군사도 따를 수 없지요. 주민은 평상시 유목생활을 하면서 병정놀이하듯 말을 타기 때문에 매일 기병 훈련을 한다고 봐야지요. 정규군 외에 이런 예비군 병력까지 가담하면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런 수만의 기병대가 평원을 몰아치면 흙바람이 백리를 휩쓸고, 그때 쥐새끼 한 마리 온전하지 못하오이다. 약탈을 일삼던 야만족 시절의 군세(軍勢)가 아닙니다. 이들이 지금 명나라를 삼키려 하고 있소이다. 우리가 정세를 잘 살펴야 하는 이유올시다.”

묵묵히 듣고 있던 광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동안 북방 변경 수호 책임자로 장만을 복무시켰던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장만은 선왕 시절부터 북방 변경에서 주로 군사를 지휘했다. 정탐부대, 삼수병부대(포수·살수·사수로 구성된 군사조직), 조총부대를 편성해 변경을 수호했다.

삼수병부대는 일찍이 함경도병마절도사로 있던 이일이 편성한 것을, 장만이 실전에 맞게 재편해 오랑캐의 발을 묶었다. 장만이 함경감사(1607넌), 평안도절도사(1611년)로 있을 때, 이 전법으로 국경을 끊임없이 넘나드는 북방 오랑캐를 다구리했던 것이다.

광해는 폐모살제로 궁중이 시끄러울 때 그를 잠시 쉬게 하였으나 갑자기 명나라로부터 조선군의 파병 요청을 받자 그를 부랴부랴 체찰부사(體察副使)로 임명해 불러들였다.

장만은 왕의 궁궐 중수에 반대 의견을 내고, 폐모살제에 대해서도 극력 반대했다. 그래서 배척받고 있었다. 인목대비를 서인 강등하고, 그 어린 아들 영창대군을 죽인 폐모살제는 이이첨 주류 세력이 주도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와는 사사건건 부딪쳤다.

이런 상황에서 명나라로부터 파병 요청을 받은 것이다. 광해는 북방 변경의 국방전문가 장만의 얘기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미운 털이 박혀있긴 하지만 요즘들어 일견 왕권을 무시하는 이이첨을 견제하고, 실질적으로 파병의 실효성을 파악하기 위해 그를 불러들인 것이다. 내치 문제에 폭삭 빠져있을만큼 파병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내치를 뛰어넘는 나라의 국운과도 결부되는 중차대한 문제다.

“낙서 공의 발언은 후금의 실체를 정확히 살피고 대처하자는 뜻이군?”

광해가 말하자 이이첨이 대뜸 나섰다.

“마마, 신은 낙서 공과 다투고 싶지 않습니다. 마마가 수행하시는 궁궐 중수를 한사코 방해하는 사람과 논쟁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심히 불쾌하옵니다.”

엉뚱한 발언이었다. 이이첨의 역공은 사세가 불리하다는 자기방어논리의 반박일 것이다. 군사 전문지식이 빈약한데다 북방 정보마저 없으니 이론에서 꿇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더라도 실권자로서 밀릴 수 없고, 그래서 양보할 수 없다. 명에 대한 재조지은은 나라 경영의 중심이다. 그것은 그를 지탱하는 힘이고, 가장 듬직한 권력 유지 자산이다.

“예판대감, 지금 궁궐 공사를 따지는 자리가 아니지 않소? 상감마마께옵서 우리 군사를 명나라에 파병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의론하자는 자리 아닌가요?”

장만이 반발하자 이이첨도 지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고따구로 하고 있는 것이오? 도대체 부모국의 은혜를 잊었단 말이오? 낙서는 선조대왕께옵서 명나라 군사를 평가하신 것을 그새 잊었단 말이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선왕의 평가마저 짓밟으려 하고 있소이까?”

이이첨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도전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투다. (수요일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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