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효의 공동체 시평



실리콘 미인’은 물론 성형 미인을 말한다. 그럼 왜 굳이 성형이 아니라 실리콘이란 표현을 썼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 이유는 성형수술 자체를 반대하거나 비난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외모지상주의가 점점 더 거세지고 용모에 따른 차별이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에 살면서 약간의 손질을 통해 놀림감을 면하는 것은 물론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다면 꼭 나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또 성형수술을 받았다고 곧 성형미인이 되는 것은 아니고, 성형수술을 많이 받아 미인이 됐다고 여겨지는 경우라야 성형미인이라고 불릴 수 있을 듯하다. 한편 실리콘(Silicon)은 규소라는 화학원소의 영어 이름이지만 ‘e’가 덧붙은 실리콘(Silicone)은 실리콘 젤을 포함한 실리콘중합체 또는 규소 수지를 뜻한다. 실리콘은 코를 높이는 융비술이나 유방확대술의 보형재로 주로 쓰인다.

실리콘 미인이라 할 때는 성형수술과 성형 미인의 단계를 넘어 거의 인조인간 직전의 상태를 이른 사람을 지목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예인 가운데도 어느 정도까지 얼굴 부분을 고칠 때는 보기 좋았는데 욕심이 지나쳐 얼굴과 몸매를 온통 뜯어고치는 바람에 오히려 개성이 없어지고 보기도 싫은 경우가 더러 있다.
 
다른 연예인이 성형 중독 때문에 얼굴의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하소연하는 말도 들어봤고, 한번은 나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성형 때문에 거의 괴물이 됐다고 보여서 도대체 누군가 궁금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래도 실리콘 미인들이 드문 편이고 외국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실리콘 미인들을 내 개인적으로 목도했던 곳은 우크라이나의 키예프나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같은 동유럽의 대도시였다.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조폭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열심히 공부하거나 사업을 해서 차근차근 돈을 벌고 성공하겠다는 사람들보다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야심이 넘치는 남자들은 줄을 잡아서 이권을 얻어 볼까 헤매지만 욕심 많은 여자들은 권력과 돈을 가진 남자를 만나서 팔자를 바꿔보겠다고 쏘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러시아에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을 전수하는 학원도 있다니까 너무 놀랄 일도 아니다. 동유럽 국가들만이 아니라 기대욕구가 현실조건에 비해 너무 높거나 정치경제체제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과도기를 거치고 있는 나라들은 예외 없이 실리콘 미인들이 많은 듯이 보였다.

실리콘 미인들은 서로 비슷하게 생긴 경우가 많고 왕왕 성형외과 전문의를 아버지로 둔 자매지간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수술비를 대준 것도 아니고, 미모를 보는 눈은 생각과 취향에 따라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니 가타부타 시비를 걸 일은 없을 듯하다. 문제는 실리콘 미인이 늘어날수록 인간이 상품화돼가고 이에 따라 개인의 존엄이 훼손된다는 데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일찌감치 대중사회가 이뤄진 나라에서는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이 왕족 노릇을 해온지 오래인데, 한국에서도 최근 연예인 돌풍이 불어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하나에 2백만 명이 응모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사실 연예인도 하나의 직업이고, 지나간 시절 ‘딴따라’라고 폄하하고 홀대하던 것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남자 화장품이 여자 화장품보다 더 많이 팔리고, 국민의 다수가 연예인이 되겠다고 덤비는 사회가 되면 아무래도 좀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실리콘 미인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어떤 미인이 바람직할까. 사람마다 타고난 것이 다르고, 시대마다 미인관과 유행이 다르기 때문에 설사 보편적 미인형이 있다 하더라도 유일한 것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괴테의 자서전 ‘시와 진실’에는 자기 여동생의 얼굴이 아름다운데 당시유행이 이마를 완전히 드러내는 것이어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다면서 안타까워하는 대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부턴가 어린 얼굴과 작은 얼굴이 미인이라는 유행이 퍼져서 ‘시바의 여왕’이나 만월부인처럼 훤한 달덩어리 얼굴의 여성들은 졸지에 미인에서 제외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눈·코·입과 얼굴이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굴과 전체 모습이 얼마나 조화롭게 정리가 잘 돼있고 자기만의 개성이 있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실리콘 미인 대신에 우리 사회가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커리어를 키워가는 당당한 여성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선진 경제로 확실히 발돋움하려면 여성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1990년 31.9%에서 2010년 80.5%로 세계 최고수준으로 뛰어올랐지만 경제활동 참가율은 같은 기간 49.9%에서 54.5%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OECD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취업률이 높아지면 저개발국에서는 출산율이 떨어지지만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출산율이 올라간다고 한다. 출산 육아의 짐을 덜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발전의 역사를 보면 여성인력의 활용 없이 획기적 경제성장을 이룬 경우는 없다. 1960년대 경제개발의 초기 단계에서 우리나라는 구로공단 여공들의 피땀으로 원시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 이전 일본이나 지난 20년 동안 중국도 모두 마찬가지인데 이슬람 국가들은 이런 면에서 전망이 밝지 않은 셈이다.

우리 경제는 지금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면에서, 북한과의 통일에 따른 수요 창출, 노령인구의 취업 증가에 따른 경제 활성화에 앞서 고학력 여성을 최대한 노동력에 합류시키는 것이 가장 긴요하다. /언론인
 

ⓒ 오피니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