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의 워싱턴 행간읽기 4



5년 전인 2007년 7월30일  미국 연방하원은 제2차세계대전 때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인 ‘일본군강제종군위안부’ 에 대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일본은, 일본정부가  20만 이상의 아시안 여성들을 일본군대의 위안부로 강제 납치했음을 인정, 사과하고 보상  배상해야 하며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후대들에게 교육시켜야 한다”라는 미연방하원의 결의안(House Resolution 121)이다.

 한국의 정대협을 비롯한 인권관련 시민단체들이 생존해 있는 강제종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10여년 이상 워싱턴 의회에 결의안을 상정시키려는 노력을 해 왔었고, 같은 내용의 결의안이 2006년엔 외교위원회까지 통과되었다가 전체회의엔 상정되지도 못한 채 폐기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일본 자민당의 고이즈미 총리와 미국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 사이의 지나친 밀착관계에 염증을 느끼던 민주당이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대승을 거두고 다수당이 되었다. 외교위원회의 탐 랜토스 위원장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콤비가 결의안 통과의 가능성을 한껏 높였다.

한인의 풀뿌리(grassroot)조직도 이러한 기회를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연방의회 내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늘 언급되어 왔지만 일본계 로비스트들의 막강한 힘에 눌려서 상정과 폐기를 반복했다. 10여 년 동안, 외교위원장이 괜찮으면 전체 의장이 벽이었고, 의장 통과가 가능해 보일 때엔  외교위원장이 벽창호였다. 

90% 이상의 노력은 시민들 스스로가 해야 하지만 결의안 통과의 핵심역할은 외교위원장과 하원의장이다. 하원의 임기(Term)는 2년인데 임기 1년차인 2007년이 아니면 그 이듬해엔 대선이 겹치기 때문에, 의회 일정상 상정조차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2007년은 마치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회기 같았다.

미국 전역의 한인들이 합심해서 총력전을 펼친 결과 역사적인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워싱턴의 K스트릿(로비계)에선 ‘일본계 로비스트들이 한인들의 실력을 무시했다가 큰 코를 다친 것 ’이란 이야기가 나돌았다.

결의안 통과 직후 일본의 산케이 신문은 “한국은 코리언어메리칸이 있는데 일본은 그것이 없다” 고 논평했다. 연방의회 전문지인 더 힐(The Hill)은 “유태계, 대만계와 큐반계에 이어서 한국계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의회로 밀려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인들을 과소평가하는 워싱턴 전문가들은 “중국이 한국계 미국인들을 사주했을 가능성이 있다”란 터무니없는 입질을 해대기도 했다. 심지어 서울의 어느 유명언론인도 마치 일본이 제대로 대응을 못했기 때문에 결의안이 통과되었다고 논평했다가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한인들로부터 혼쭐이 나기도 했다.

미국 하원에서 결의안이 통과된 후에 네덜란드, 캐나다, 유렵연합, 그리고 필리핀에서 같은 내용의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일본에게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는 미국 정치권의 최초의 결의안은 인권과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전세계의 인권 평화 NGO들에게 강력한 멧세지로 파급됐다.

이러한 평화.인권 도미노 현상을 예견이나 한 것처럼 당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한인풀뿌리단체 대표들을 의장실로 초청해서 “한인풀뿌리 운동이 워싱턴을 변화(교육)시켰다. 1960년대 민권운동 때를 연상케 한다”며 “결국엔 진실이 드러난다”고 격려했다.

미주 한인들과 워싱턴의 거대 일본로비가 한바탕 맞붙었던 이 일을 혹자는 ‘워싱턴의 임진왜란’이라고 하기도 했다. 한국계 미국시민(한인동포)들이 스스로를 정치조직화해서 자력으로 워싱턴 연방의회를 움직인 최초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일본은 거의 1천만 달러를 퍼 부으면서 워싱턴의 로비스트를 활용했지만 끝내 이를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 일본 정부가 납세자이면서 유권자인 미국 시민의 풀뿌리의 위력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미주한인들이 풀뿌리정치 참 운동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정부의 거대한 저지로비를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조건은 워싱턴 작동방식에 맞춘 풀뿌리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가 아니고 보편적인 인권문제로만 제기해서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동안 미국이 이 문제를 비공식적으로 일본에게 제기할 때 마다 일본은 한-일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답변하곤 했었다. 바로 이 점에 착안해서 미국의원들을 설득할 논리를 개발한 것이 ‘보편적인 인권문제’였다. 이슈를 그 이상 또는 그 이하로 확대시키지 않았다.

 미국시민사회의 이슈로만 캠페인을 끌고 갔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일본의 고위관료, 정치인들의 발길이 워싱턴에 줄을 이었다. 한국의 정치인들을 워싱턴으로 끌어 들이기위한 일본의 유인전략이었다.

당시에 시도 때도 없이 이 결의안을 지지하고 돕겠다고 워싱턴을 방문하려고 하는 한국정치인들을 말리는 일이 가장 힘들었었다. 미국의 다른 두 우방국이 미국 내에서 분쟁한다면 미국은 절대로 끼어들지 않는 것이 미국정부의 오래된 원칙이고 관행이다.

거의 막판(2007년5월)에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의 마지막 카드는 워싱턴서의 한-일 간 분쟁을 만드는 전략이었다. 심지어는 총리(신조 아베)까지 워싱턴을 방문했다. 그는 “부분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결의안이 지금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표했다. 그들은 정말로 다급했었다.

한인들의 풀뿌리는 435명의 전체 하원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오히려 일본을 위하는 결의안’임을 역설했다. 워싱턴의 결의안은 한국과는 절대 무관하다. 미국시민의 입장에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일임을 분명하게 확고히 했다.

일본의 저지로비가 얼마나 집요하고 막강했는지 낸시 펠로시 의장은 일본의 눈을 따돌리려고 기습상정을 시켜서 의사봉을 대리의장에게 맡기기까지 했다. 스폰지에 물 스며들 듯 로비하는 일본의 방식을 구구절절 경험하기도 했다.

주효한 전략은 ‘미국시민의 이슈’라는 기조를 끝까지 유지한 것이다. 워싱턴의 방식을 잘 모르는 몇몇 한인(지도자들)들이 서울로 드나들면서 지지와 지원에 목소리를 냈지만 우리는 그러한 것을 철저하게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나중에 ‘한국은 한인들을 갖고 있지만 일본에겐 그것이 없다’라는 산케이 신문의 사설을 볼 때에 그들도 우리의 전략을 눈치 채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워싱턴에 일본 끌어들이기를 했던 것이다. 미국 전역의 시민들이 거의 반년동안 워싱턴 의사당을 휩쓸고 다니면서 인권, 평화, 여성의 이슈를 외치면서 자기를 대표하는 자기지역구 하원의원을 계몽. 설득했다.

시민들의 진정이 받아들여져서 5개월 만에 186명의 하원의원으로부터 동의를 받았다.  2007년 7월30일, 110회기 연방하원은 ‘일본군위안부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진실의 승리이고 인권의 승리, 그리고 한인 풀뿌리시민운동의 승리라고 미국내 주류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 연방하원에서의 역사적인 일본군위안부결의안, 통과 된지, 꼭 5년이 흘렀다. 결의안이통과되던 당시, 의회의 지도자들은 필자에게 인권, 평화, 환경 등에 관련한 이슈는 애초 이 결의안을 주도한 시민들이 끝까지 관심을 갖고 챙겨나가지 않으면 한 장 종이쪽지에 불과함을 가르쳐 주었다.

그 이후 뉴욕의 한인들이 끊임없이 평화와 인권 문제로 시민사회에서 활동 해 왔다. 2009년 7월엔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일본정부에게 ‘일본은 하원 결의안대로 인정. 사과하고 교육시키라’는 성명서를 내도록 했다.

뉴욕의 한인들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후세를 교육시키자는  취지에서 뉴저지 작은 동네에 “기림비”를 세웠다. 지방정부의 선출직 정치인들을 일일이 접촉해서 설득하고 서명운동을 통해서 시민들이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노력했다.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지도자들과 펠팍의 선출직 정치인들은 어린 한인학생들의 노력에 감동을 받았다.

카운티에서는 화강암을, 타운에서는 도서관 옆의 부지를 기부해 주었다. 타운정부의 재산으로 2010년 10월23일 전세계 최초의 “일본군위안부기림비”가 세워졌다. 이것 역시 인권의 승리이고 역사발전의 한 측면임이 분명하다고 미디어가 논평을 하기도 했다.

같은 시대에 아시아에서는 이와 같은 참혹한 인권침해 사례가 있음을 히틀러에게 당한 유태인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뉴욕시 홀로코스트센타와 함께 뉴욕의 한인들은 이를 세상에 더 크게 알리기 위해서 궁리했다.

2011년 12월 뉴욕의 홀로코스트 생존자 (유태계) 할머니들이 한국내 위안부피해자 생존 할머니들을 초청했다.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과 홀로코스트 생존자 할머니들이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통해서 미국내 시민사회에 역사의 진실을 증언했다.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국제질서 틈새를 활용해서 일본은 다시금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확보하려는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태평양 전쟁당시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한 주변국들이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진정어린 사과와 충분한 배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의 이러한 분위기 속에 미국의 시민사회에서 확산되는 일본군위안부문제는 일본에게 발톱의 가시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발전을 저지하고 뒤엎으려는 일본의 수구정치세력들이 직접 미국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2007년 때와 꼭 같은 수법이다.

일본측은 자신들이 직접 미국으로 들어오면 한국내 정치권도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다. 저들의 전략이 먹히고 있기도 하다. 지난 5월초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뉴저지 펠팍을 찾아왔다. 기림비를 들여다보고 시장과 시의원들에게 철거를 요청했다. 노골적으로 돈을 줄 테니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뉴욕주재 일본총영사도 기림비를 찾아와서 같은 요청을 하고 기림비에 새겨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생트집을 잡기도 했다.

한인들로부터 역사의 진실, 인권문제로 교육을 철저히 받은 펠팍의 시장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일본의 요구에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다른나라 정치인이 외교경로를 통할 것을 엄하게 요청했고 돈으로 역사작인 진실을 덮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오히려 일본의 총영사와 정치인들을 훈계하는 단호함을 보여주었다.

만 3년에 걸쳐서 자료를 제시하고 만장일치로 통과 된 연방결의안을 설명하고 서명운동을 통해서 주민들의 전격적인 동의도 받아낸 효과와 보람을 갖게 되었다. 시장과의 친분으로 쉽게 어느 구석에 기림비를 만들 것을 제안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한인들은 쉽고 빨리 가는 길이 아니고 좀 더디 가도 주민들과 함께 그리고 지역정치인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림비 자체의 의미가 ‘교육가치‘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직접 찾아왔는데 기림비를 세운 한인들보다 더 강하게 옳고 그른 것을 주장한 것이 선출직 지역정치인들이 있었으니 얼마나 단단한 기초이겠는가? 결의안을 통과시킬 때처럼 ’미국 시민사회‘의 이슈임을 강조하고 절대로 한국과 일본을 끌어 들이지 않은 전략이 주효했다.

뉴저지 한인들이 세운 일본군위안부기림비가 한국과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전세계의 뉴스거리가 되었다. 별 관심을 안 보이던 한인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관심이 폭주했다. 심지어 어느 롱아일랜드 한인지도자는 한국내 어느 지방정부의 이름을 새긴 기림비를 한국에서 제작해서 들여왔다. 그리고는 지역정치인과 지역 주민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생략하고 하루아침에 어느 공원에 뚝딱 기림비를 세웠다.

두 번째의 기림비라고 미디어가 크게 보도했다. 어느 곳의 한인지도자는 그렇게 어렵게 하지 말고 자기집 정원이나 한인교회에 많이 세우면 더 빨리 하지 않겠느냐고 문의하기도 했다.  미디어의 뉴스거리 보도가 이렇게 한인들의 관심을 증폭시킬 줄은 몰랐다. 정작 우리는 우리 동네 지도자들께 무엇이 풀뿌리이고 풀뿌리가 어떻게 미국 주류정치권을 작동시키는가에 대해서 교육시키지 못했음을 절감했다. 풀뿌리 운동에 의한 것이 기림비나 결의안 활동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필자는 지난 6월19일 미 하원에서 일본군위안부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일본계3세인 마이크 혼다 의원을 만났다. 그가 자신의 71번째 생일잔치에 초대해 주었다. 최근의 일에 관해서 우려를 하면서 진정한 풀뿌리운동이 되도록 다시 힘을 합하기로 했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이번 7월24일 결의안 통과 5주년 행사다. 5주년을 기념해서 풀뿌리 활동가들이 모이면 철저하게 미국시민의, 그리고 철저하게 인권문제로 활동해야 함을 보여주겠다는 ‘마이크 혼다’의원의 의지다.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는 인류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이지 한국과 일본 간의 분쟁문제가 아님을 명확하게 해야만 한다는 메시지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인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리고 한국인들만 이를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님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 시민사회에서 가장 활동적인 다른 인종 풀뿌리 단체들과 함께 5주년 행사를 치룬다. 정치적인 영향력이 가장 막강하다고 소문난 유색인종협의회(NAACP), 유태계인 홀로코스트단체, 세계적인 단체인 미국의 앰네스티인터내셔널, 그리고 인도계, 중국계 등 각종 다양한 풀뿌리단체들이 함께 행사를 치룬다.

미국시민의 입장을 갖는 것이 가장 바른 길 임을, 그리고 미국에서 투표를 하는 유권자의 입장과 미국에 세금을 내는 납세자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가장 영향력이 큰 것임을 동포사회가 다 알아 차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문제가 생기면 쪼르르 서울로 달려가는 것을 반복해서는 올바른 길을 갈수가 없다. 쉽고 빠른 길을 가는 것이 아니고 힘들고 더디 간다 해도 바른 길을 가는 것이 튼튼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일본군위안부결의안 5주년을 맞이해서 가장 시급하고 큰 과제는 우리 모두가 미국에서 풀뿌리 운동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옳게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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