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이 바라보는 노동과 사회



민주노총에서 정파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부 산별노조들이 중심이 되어 민주노총 내 정파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노동운동에서의 소위 정파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간 다양한 의견과 해결책이 제시되어왔다. 민주노총에서 정파 문제를 다시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통합진보당에서의 일련의 사태가 미친 사회적 파장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하는 추측을 하게 한다.

정파의 폐해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정파에 긍정적이지 않다. 민주노총 조합원을 대상으로 2004년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3.7%가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파가 노선이나 정치적 입장에 의해 나누어졌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이 많고 다분히 친소관계나 권력관계에 기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정파가 아니라 ‘패거리’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현재 의견그룹은 지나치게 권력지향적입니다. 이러다 보니 모든 것들을 표로 보고 움직이고 있어요”라는 노조 간부의 지적이 바로 정파에 대한 부정적인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민주노총 내의 정파는 과도한 대립과 갈등으로 공조직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고 있다”, “정파가 정치적 이념과 노선을 따르기보다 집권을 위한 이합집산에 매몰돼 있다” 이런 비판이 최근 민주노총의 토론회에서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를 확인하자. 민주노총의 역사에서 정파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가? 그간의 대부분의 선거는 정파적 성향의 대결과 조정의 과정으로 이루어져왔다. 정치적 상황에서 파당은 불가피하다.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작은 모임의 선거에 이르기까지 파당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거나 대표하는 그룹이 등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민주노총의 선거에서도 정파의 영향력은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특정 정파가 집권을 하면 조합원이 선택한 노선의 사업을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민주노총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이는 분명하다. 사회개혁의 기치를 걸고 활동하던 1기 집행부는 사회개혁을 위해서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게 된다.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의 1기 집행부는 노사정 합의에 대한 반발로 물러나게 되면서 계급성을 강조하고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회의적인 노선이 민주노총의 집행권을 장악하게 된다. 민주노총 2기와 3기의 전반적인 정책방향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 거부와 투쟁적인 노선이었다. 1기 집행부를 국민파가 주도하였다면 2기와 3기 집행부는 강경 성향의 정파들이 주도하였다.

 투쟁중심의 노동운동 전략에 한계를 직시한 세력이 사회적 대화 필요성을 제기하여 4기 집행부에 당선되면서 노동운동의 방향이 크게 변화하게 된다. 소위 국민파 성향이다. 민주노총 제1기에서 제4기에 걸친 과정을 볼 때 집행부의 성격이 노동운동의 방향을 좌우하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집행부의 탄생에는 정파의 영향력이 결정적이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정파의 운동방향이 민주노총의 노선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변수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개혁적 노동운동도 이에 동의하는 세력의 지원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노사정 참여를 거부하고 대중투쟁으로, 현장의 동력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는 노선도 이를 지지하는 세력의 조직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리고 노사정 대화 참여에 대한 반대 기류를 극복하고 적극적인 대화에 참여하려고 하였던 동력도 세력화된 조직에 의해서 가능하지 않았는가?

 민주노총의 역사는 노동운동을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민주노총의 조직적 의견으로 만들어 나가려 하였던 각 정파의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다. 이러한 의견을 만들고 조직하여 노동운동의 사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노동운동에 대한 열정이 그 기반에 놓여 있었다. 정파들이 가지고 있었던 열정과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 방향에 대한 찬반을 떠나 이러한 노력은 제대로 평가되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서 정파가 드러내는 비정상적인 폐해에 눈을 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파조직이 자기의 의견을 대중조직을 통해 실현하고...... 이것은 우리 노동운동이 건강하게 가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치에서 정당이 중요한 것처럼 노동운동에서 정파는 중요하다. 그런데 정파는 터부시 된다. 민주노총의 혁신을 이야기할 때면 정파문제는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그리고 정파=부정적인 것으로 정리된다.
 
현실 노동운동에서 정파가 가지는 문제는 이루 다 말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정파는 노동운동의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세력으로서 그 존재의 의미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파의 존재는 불가피하고, 아니 필요하다. 하지만 정파의 폐해는 심각하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노동운동에서 정파의 폐해로 보이는 대부분의 문제는 정파로 인하여 도드라져 보일 뿐 사실은 노동운동의 퇴행성에서 나타나는 문제이다. 게임의 법칙을 지키고, 상대를 인정하고, 합의 가능한 상식이 지켜지는 것이 더 우선이다. 우리가 목격한 통합진보당의 내부 갈등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바로 이러한 상식적인 지점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정한 이념에 연원하는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공정하지 않은 방법을 동원하거나, 이러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하고, 상대의 주장을 경청하기 보다는 물리력에 의존하려는 것 등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주장한다. 지금 노동운동이 지혜를 모아야 할 지점은 노동운동을 둘러싼 그릇된 관행, 그리고 잘못된 상식과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정파는 도리어 양성화하고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폐해로 가득찬 그런 정파는 필요 없다.
 
노동운동이 침체된 현 시점에서 노선에 대한 토론과 현장 조합원의 동력을 조직하는 사업을 위해서는 진정한 정파, 노동운동 발전의 토양이 될 수 있는 노력하는 의견그룹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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