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신문에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노구를 이끌고 글을 쓸 때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史馬遷)을 생각하며 마지막 남은 열정을 바쳤다고 생전에 술회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당신의 굴곡 많았던 인생을 가슴에 품고 강원도 땅에 홀로되어 한 줄 한 줄 원고지를 메워 나가는 쓸쓸함과 고됨을 사마천(史馬遷)의 절박함에 비교한 것을 보고, 선생의 한(恨)과 고독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느낀 적이 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처절한 좌절을, 목표를 향한 에너지로 승화한 가장 대표적인 예로 회자되는 사마천의 이야기는 그래서 들을 때 마다 감동적이다.
 
사마천(史馬遷:BC145?-BC86?)은 전한(前漢) 시대의 역사가이며 사기(史記)의 저자로 마흔 아홉의 나이에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받게 된다. 흉노의 포위 속에서 부하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투항했던 이릉(李陵) 장군을, 그는 객관적인 역사가의 입장에서 변호하게 된다. 이것이 황제였던 무제의 노여움을 사 그는 사형을 선고 받는다. 사마천이 죽음대신, 남자로서는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宮刑: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자청한 것은 결코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부친인 사마담에 이어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해 나가고 있던 ‘사기(史記)’의 끝을 보고자 함이었다.
 
당시 사마천의 피눈물 나는 정신적 방황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것이다. 그가 인간으로서는 넘기 힘든 이러한 고통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깨달은 모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절박하고 새로운 인식을 3000년 역사에 녹이고자 했고 그것을 후세에 남기고자 했던 처절한 목표의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역사서로 꼽히는 사기가 탄생했고 사마천 자신은 ‘역사학의 조물주’로서 청사(靑史)에 길이 남게 된 것이다.
 
사연과 동기는 달라도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처절한 의지의 결연한 모습을 2000년 세월이 흐른 근세,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인생 역정에서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은 중국 쓰촨성(四川省)에서 태어나 1978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 개방을 주도해 오늘날의 중국이 있게 한 혁명가이며 정치가다. 1918년 프랑스 유학 중 공산주의에 심취, 귀국 후 1927년 공산당 지하운동에 참여했다.
 
그의 험난한 정치 여정은 1933년, 초기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였던 천사오위(陳紹禹:1904-1974)가 당시 비주류였던 마오쩌둥을 비판할 때 연루돼 처음 실각하면서부터이다. 다행히 마오가 당권을 회복하면서 살아 날 수 있었는데 이것이 그의 첫번째 복직이다. 이 후 1960년대 초 마오쩌둥에 의해서 진행된 이른 바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평생을 섬기며 살아온 마오에 의해서 버림받게 된다. 당시 이념보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주장하던 덩샤오핑은 마오의 눈 밖에 나게 되고 그리하여 1966년 문화대혁명 때 ‘반마오쩌둥파(反毛澤東派)’의 수뇌로 지목되면서 다시 실각하게 된다.
 
이후 덩샤오핑은 연금과 노동으로 피눈물 나는 인고의 시절을 보내게 되는데 당시 그의 심경을 헤아리기란 어렵지 않다. 그는 1973년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추천과 마오쩌둥의 배려로 다시 복귀하는데 이것이 그의 두 번째 복직이다. 그러나 1976년 4월 저우언라이 총리가 사망하고 그를 애도하는 와중에 제1차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자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장칭(江靑)등 ‘4인방’은 덩샤오핑을 다시 축출하게 된다. 이것이 그의 세 번째 실각이다. 마오 사망 후 1977년 7월22일, 그는 다시 중국 공산당 주석으로 복권되는데 이것이 세 번째 복직이었다.
 
말은 쉬워도 실패한 후에 다시 재기(再起)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좌절을, 성공을 위한 에너지로 승화하라는 말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의연하게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여기에 평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게 된다.
 
역사와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 의식이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에너지가 됐다. 상고 시대로부터 한(漢)나라에 이르는 중국 3000년의 통사(通史) 속에 인간사의 장엄한 기록을 녹아들게 한 ‘사기(史記)’와, 바야흐로 30년 만에 세계 중심국가로 솟아오른 오늘날의 중국은 사마천(史馬遷)과 덩샤오핑(鄧小平)이라는 보통 사람과는 분명히 다른 사람들의 투철한 의지의 결정체이다.
 
실패와 좌절의 쓰라림 없이 성공한 사람들을 찾기란 어렵다. 그들은 그것을 노력과 의지로 이겨낸 영웅들이다. 우리 모두는 성공을 원하는데, 과연 나는 보통 사람과 다른 사람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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