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시대의 세태와 요구를 반영한다. 그래서 아무리 명작 드라마라도 시간이 꽤 지난 후 보면, 어딘가 지금의 문화와 맞지 않는 부분들이 영 어색해 때론 유치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건 그 시대에만 느낄 수 있는 정취가 드라마에 담겼기 때문이다.이런 가운데 시대를 불문하고 드라마 주인공의 직업으로 작가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은 법조계 종사자와 의료계 종사자다. 이는 한국 사회 단면에 이들이 최상위에 있는 '엘리트'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조 드라마나 의학 드라마는 아무래도 레퍼런스도 많고, 극적인 요소가 많기에 크
은퇴한 '배구 여제'의 새로운 도전, 우려 속의 출발 이미 최고의 자리에서 박수칠 때 떠난 이에게 또 어떤 도전이 남아 있을까. 한국 배구 일인자로 손꼽히는 김연경이 배구 예능 '신인감독 김연경'을 한다고 했을 때 들었던 의문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깎아내리길 좋아하는 게 인간의 마음이기에, 자극을 추구하는 한국 예능에 최적의 먹잇감이었다. 이미 환호 속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그가 예능 전선에 뛰어든다니,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떴다. 대체 왜. 한국 팀 스포츠의 한계를 넘어 '배구 붐'을 위해 김연경은 '신인감독 김연경'
12월이 약속으로 채워지고 있다. 바야흐로 연말모임의 계절이어서다. 생업에 치여 존재를 잊은 듯 살던 친구와 지인들이 한파에 발그레해진 두 볼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도심의 유흥가 어디쯤에서 재회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보다 젊었던 어느 나날들처럼.20대 때의 나는 연말모임을 싫어했다. 모임 참석 자체를 거부하진 않으면서도 ‘연말모임’이라는 단어가 갖고있는 맥락과 함의를 끝끝내 못마땅해 했다. 내 논리는 이랬다. 평소 꾸준히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 받았다면 단순한 식사 약속에 연말모임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갖다 붙일 이유가 없다. 따라서 연
외국 여행을 할 때 내가 한국 사람임을 드러내는 일은 극히 드물다. 국적을 밝혀야 하는 순간이나 자진해서 말하고 싶은 때가 아니면, 되려 한국인이라는 것이 티 나지 않길 바라는 심리가 있다. 특히 주변에 한국인들이 많거나 여기저기 한국말이 들려오면 이 증세가 유독 더 심해지는 편이다. 익숙함에 신물이 나서 떠난 여행지에서 굳이. 또. 내 나라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지 않달까.타이중 문화창의산업단지를 한참 둘러보고 나서 대낮에 위스키를 사러 걸어가던 길이었다.타이중 기차역에 다다를 때쯤 한 쇼핑몰에서 K-POP이 흘러나왔다. 새로움을
영포티, 이대남, 틀딱 등 세대를 지칭하거나 비하하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늘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김치녀, 된장남 등 사회 갈등을 조장하거나 특정인들을 비하하는 용어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소위 '갈리치기'와 '혐오'가 만연한 사회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혐오 문화를 양산해 내고 그 중심에 있는 세대가 바로 20대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이런 '갈라치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어쩌다 20대는 왜 이렇게 혐오 문화를 조장하고, 그 중심에 서게 된 것일까. 먼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지금 20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
'언컨퍼런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우리는 매일같이 회의를 열면서도 정작 회의(懷疑)는 하지 않았다. 왜 꼭 이 순서여야 하는지, 왜 발표자와 청중이 나뉘어야 하는지, 왜 시간표에 갇혀야 하는지. 언컨퍼런스(Unconference)라는 단어가 흥미로운 건, 그것이 부정의 접두사 'un-'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기존을 뒤집는다(un-conference)는 이 조어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당연시해온 것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를 고백한다. 그것을 전복하려면 아예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던 것이다. 언컨퍼런스의 원칙은 급진적이리만치
돈이란 상대적인 것이라 했다. 주식 투자자들의 프리미엄 친목회에 참석하는데만 수십만원을 냈다던 그가 몇 년전 술자리에서 불콰해진 얼굴로 했던 말로 기억한다. 내 돈을 은행에 차곡차곡 쌓아놔도,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벌면 나는 가만히 앉아서 상대적 거지가 되는 거라고.그때 떨어진 술맛의 뒤끝이 생각보다 오래갔던 걸까. 나는 그간 몇 차례 주식투자 광풍이 불 때조차 골드러시 행렬에 끼어들길 고집스레 거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청개구리 심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적은 돈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고, 누가 묻지도 않은 말을 여기저기
“당연히 학원 안 가는 거지요. 이 거지 같은 학원!”순둥순둥한 녀석 입에서 나온 ‘거지 같은’은 강한 감정 표현이었다. 유럽 여행 가서 좋은 게 아니라, 학원 안 가서 좋다는 것이다. 녀석은 개운하게 웃었다.다른 학생들에게도 물었다. ‘1n박으로 가는 가족 유럽 여행 vs 학교, 학원 안 가고 집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1n일’. 후자의 승률이 높았다. 예상 못한 답은 아니었다. 너희에겐 시간 낭비할 권력이 없다.나는 유럽 여행의 가치를 모른다. 비행기를 타 본 적도 없다. 그래서 시야를 넓히고 경험을 쌓는다는 여행의 가치
명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늘 삐딱했다. 어느 정도는 악의적이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다. 한때 전국 서점가 매대를 점령했던 이른바 ‘끌어당김의 법칙’에 매료됐다가 피를 본 피해자 호소인(?)의 치졸한 뒤끝이다.모든 게 불확실했던 수험생 시절. 오프라 윈프리도 극찬했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매일 원하는 걸 생생히 꿈꾸기만 하면 문자 그대로 온 우주가 움직여 눈앞에 대령해 준다고 했다. 나는 혈류가 막혀 저릿한 다리를 참아가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원하는 걸 상상했다. 당연히 원하던 대학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어떤 일이든 꾸준히 이어가면 그 자체로서 큰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진로가 훤히 보이는 알려진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말이다.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아프리카TV(현 SOOP)에서 스타 프로게이머들의 방송을 즐겨 보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는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던 터라 국내에서 라이브 방송은 아프리카TV가 대세였다. 나는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었고, (물론 이때는 삼촌들 곁에서 구경만 해도 아주 좋았다. 7살의 고사리 손으로 하기에는 스타는 너무 어려운 게임이었다)20
요즘 부쩍 챗GPT가 나의 일상을 침투하고 있다고 느낀다. 바로 민원인과 대화를 할 때다. 우리 기관에 방문한 민원인이 담당자인 나보다 챗GPT를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A를 신청하려면 B를 제출하셔야 해요."라고 설명하면 "챗GPT는 C만 있으면 된다고 하던데요?"라고 답하는 식이다.예전에는 5분이면 끝날 일이 10분, 20분이나 걸리는 이유다. 챗GPT로부터 잘못 안내받은 내용을 하나하나 정정해주느라 불필요한 시간소모가 늘었다. 나를 못 믿겠다며 눈앞에서 챗GPT에게 다시 질문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오픈AI CEO를 찾아가
부모들은 다 자란 자식들을 향해 서태지와 아이들의 를 부른다. - 너에게 뺏겨 버렸던 마음이 다시 내게 돌아오는 걸 느꼈지. 너는 언제까지나 나만의 나의 연인이라 믿어왔던 내 생각이 틀리고 말었어.자식들은 부모들을 향해 사자 보이스의 을 부른다. 정몽주보다 꼬장꼬장하게. - You gave me your heart, now I'm here for your soul. I'm thе only one who'll love your sins. Feel the way my voicе gets underneath
김언수의 소설 에는 마법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소설 속 주인공은 고양이로 변하고 싶다는 의뢰인과 함께 유명한 마법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마법사는 마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이들을 데리고 술집으로 가 소주만 주야장천 마신다. 결국 주인공은 마법사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 자신의 능력이 의심받자 마법사는 소주를 물로 바꾸는 마법을 그들에게 몸소 보여준다. 그러면서 자신은 소주를 물로 바꿀 수 있지만, 물을 소주로 바꾸지는 못한다며 안타까워한다.이 모습을 본 주인공이 의뢰인을 고양이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자, 마법사는 삼
숙제에 치여 사는 10대가 별로 불쌍하지 않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 어렸을 때도, 지금도, 공부하지 않는 10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망가뜨려서 어쩌자는 건가.그런데 상위권 학생들만큼은 ‘나 때’보다 더 치열하다. 나는 초등학생 때 자정을 넘겨가며 공부한 적이 없었다. 대학을 향한 레일이 이미 깔려 있었고, 학생은 닥치고 달리기만 하면 됐다. 정답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성적이 정했다. 살아왔던 날과 살아갈 날을 맞대보니, ‘정답’은 거대한 폭력이다. 앞으로의 삶은 정답을 향한 투쟁이 될 것 같아, 조금
야구팬들에게 10월은 잔인한 계절이다.한국에서 부동의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야구는 이제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프로야구 모든 팬의 바람은 자신의 응원팀이 약 한 달간 진행하는 포스트시즌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10개 팀 가운데 매년 한 개 팀의 팬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다. 그래도 가을에 야구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는 팬들이 있기에 한국 야구의 인기는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이런 야구 인기에 또 한몫하는 것은 한국프로야구협회(KBO)의 혁신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다.사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걸까. 가끔은 답도 없는, 그러나 하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피할 수도 없는 질문에 골몰하곤 합니다.일단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납니다. 벌써 4년째인 재택근무를 오늘도 시작하기 위함입니다. 오후 6시쯤 근무가 끝나면 아주 늦은 점심을 차려 먹고요. 평일 점심 메뉴는 그릭 요거트 200g과 새송이버섯을 썰어넣은 왕란 후라이 2개, 단백질 파우더 30g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쉽게 살이 찌는 체질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정한 식단이지만, 반복을 싫증내기보단 편안해하는 성정 덕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습니다.퇴근 후엔
사회면 법조 기사들의 헤드라인에서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인용 문구가 하나 있다. “영구적으로 사회로부터 격리해야”라는 표현이다. 흔히 흉악범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공판 검사의 언어이거나, 이를 받아들인 재판부의 언어로서 기사에 등장한다.사회로부터의 영구적인 격리. 특정 흉악범의 죗값에 무기징역이 충분한지 여부를 판별할 만큼의 법조 지식이 내겐 전연 없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그 유명한 명제에 비춰보면 사회로부터의 영구적인 격리를 ‘엄벌’로 규정하는 데에는 그리 반론이 많지 않으리라 추론한다.진짜 이상한 건 따로 있다
결혼을 하고 새 둥지를 텄던 이 동네에서, 우리 아이가 신나게 뛰어놀며 건강하게 성장하게 될 이 지역에서 미력하게나마 이곳의 지속가능성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동네 공원에서 아이가 또래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노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곳이 단순히 내가 사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 아이와 그 친구들이 함께 성장할 공동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꾼다. 예전엔 출퇴근 편의성과 생활 인프라를 주로 봤다면, 지금은 놀이터의 안전성, 미세먼지 농도, 교육 환경, 그리고 이 지역이
직장은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수차례 되새김질을 해도 회사만 가면 늘 감정 상하는 일이 벌어진다. 직장인이 감히 직장에서 사사로운 감정 운운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일까. 안 그래도 타인은 지옥인데, 이해관계가 얽힌 곳에서의 타인은 지옥 중에서도 그 레벨이 높다. 착한 사람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마는 회사에서만큼은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그나마 지옥에서 멀어진다. 사실 난 일이 완벽하면 그 사람의 인성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데까지 관심이 뻗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 자주 드는 의문이 있다.
최근 몇 개월 간 손목시계에 빠져있다. 밥 먹을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시계 리뷰 전문 유튜버들의 영상을 시청한다. 스마트폰으로 한치의 오차도 없는 시간을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월(月) 단위, 심하면 일(日) 단위로 수초씩 시간이 늦거나 빨라지는 손목시계를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추앙한다니.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했나. 실용성만으로 사는 것 또한 아님이 분명하다.예쁜 것들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다이버 시계는 터프한 외관에 가미된 한 스푼의 도시적 세련미가, 필드워치들은 샌드 블라스트로 무광 처리된 시계 외관과 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