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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디의 꿈처럼, 나이테의 질문처럼 세상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변해갔다. 사람들은 기억을 무서워했지만, 자신에 대한 신비스러운 태몽을 꾸고 자신을 품어준 엄마를 기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빠가 무동 태워주고 귀를 잡아 서울 구경시켜준 기억도 부정할 수 있을까?다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페르푸메가 피었다. 지식인들은 ‘좋은 습관’이라는 캠페인 테마로 책 읽기와 노트하기를 권장하기 시작했다. 페르푸메가 더 세졌다. 문지는 기뻤다. 우디가 다시 노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림도 그렸다. 눈도 맑아졌다. 드디어 사막의 샘물이
노트의 요정
써니
2018.05.1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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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거대한 나무가 뿌리에 별을 감싸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노트는 지금은 인도네시아에 있는 성식이 보낸 것이다. 문지는 한참동안 노트를 매만지다가 말없이 우디에게 건넸다. 우디는 흐린 눈을 비비더니 노트를 받아 표지를 넘겼다. 한 장, 두 장 넘기는 속도가 점점 늦어졌다. 눈을 또 비볐다. 노타모레가 노트에 페르푸메를 짙게 뿌렸던 것일까. 우디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우디는 문지를 쳐다보지 않은 채 중얼거리듯이 말했다.“엄마, 이상해. 내가 어젯밤 꾼 꿈에 나온 나무가 바로 이 나무 같아. 근데 여기 내 이야기가 있어.
노트의 요정
써니
2018.05.0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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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상은 5년 간 더 지움의 시간으로 흘러갔다. 역사는 그 시기를 ‘악몽의 델레테 5년’이라고 불렀다. 노타모레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지 그래도 가끔 밝은 표정을 지었고 핀란드 자작나무 숲을 향해 미소를 지었지만 대부분의 요정들은 공포에 떨었다. 문지는 우디를 바라보면서 아들의 기억을 지켜주지 못하여 미안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사막이 아름다운 건 깊은 어딘가에 샘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고, 신성한 힘을 가진 샘물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었다. 노트의 요정에게서 위대한 기억의 나무 이야기도 들었다. 그 분은
노트의 요정
써니
2018.05.0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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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리몬이 극성을 떨수록 새하얀 도화지처럼 진실만 남고 모든 게 평등해질 줄 알았던 세상은 반대로 오만해지고 편협해졌다. 사람들은 이젠 판단 능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신기술이 좋은지 나쁜지도 몰랐다. 그것은 노타모레와 부키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페르푸메의 에너지도 최고로 약해졌던 시점과 거의 일치했다. 그 무렵부터 핀란드의 자작나무 숲도 말라가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나무를 자르지 않았지만 오히려 나무들이 고사했다. 노타모레와 부키가 애타게 기다리는 신목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려오지 않았다. 이제는 7백년이 된
노트의 요정
써니
2018.05.0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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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키와 노타모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이 속도와 기운이라면 곧 책과 노트 아날로그의 세상에도 침투해 들어올 게 분명했다. 아날로그와 사이베르는 쉽게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연결되어 있다. 만일 유모리몬이 인간 세계로 온다면 그들의 침투대상은 책과 노트가 체계적으로 분류된 세계 최대 대도서관의 아카이브 망일 것이다. 아카이브를 움직이는 설계도가 알고리즘이었다.‘아카이브 망의 설계도인 알고리즘이 교란된다면? 오 그럼, 우리의 기억과 기록은?’문지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우디의 이야기는 다소 황당했지만 그럼에도 문지의 가슴 깊숙이
노트의 요정
써니
2018.05.01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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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키와 노타모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이 속도와 기운이라면 곧 책과 노트 아날로그의 세상에도 침투해 들어올 게 분명했다. 아날로그와 사이베르는 쉽게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연결되어 있다. 만일 유모리몬이 인간 세계로 온다면 그들의 침투대상은 책과 노트가 체계적으로 분류된 세계 최대 대도서관의 아카이브 망일 것이다. 아카이브를 움직이는 설계도가 알고리즘이었다.‘아카이브 망의 서례도인 알고리즘이 교란된다면? 오 그럼, 우리의 기억과 기록은?’문지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우디의 이야기는 다소 황당했지만 그럼에도 문지의 가슴 깊숙이
노트의 요정
써니
2018.05.01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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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막의 샘을 꿈꾸는 문지 시대마다 기록과 기억을 유난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정말로 소중하여 기억하는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네마조네스 이전 과거 시대에는 주로 일기라는 방식으로 남겼다. 그런 일기로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소녀, 안네가 있었다. 유대인이었다. 게르마니가 국가적으로 아주 야만적인 학살 행위를 할 무렵,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피신한 소녀는 다락방에 숨어서 2년간 일기를 썼다. 13살에 선물로 받은 일기장에서 종이의 강인함을 발견했다고 쓸 정도로 일기를 사랑했다. 답답하고 외로운 다락방, 그 폐쇄된 삶
노트의 요정
써니
2018.04.1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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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이베르한 손에는 시집을, 다른 한 손에는 습작노트를 든 거리의 장발청년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떨어진 낙엽과 꽃잎을 책 속에 끼워 말렸던 소녀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통학버스에서 손수 적은 단어장을 외우던 고등학생의 모습은 지난날의 풍경이 되었다. 주부들의 가계부와 육아일기도 엄지손가락 몇 번이면 끝났다.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는 다들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손 안의 화면만 쳐다본다. 옆 사람한테는 관심도 없었다. 이제 세상은 사이베르(Cyber) 세상이 되었고 도시는 페르푸메의 향이 매우 옅
노트의 요정
써니
2018.04.1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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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써니] 온라인·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그러나 아주 좋았던 습관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노트하는 습관입니다.네이버 창에 ‘노트 습관’을 치면 이런 글들이 나옵니다.- 메모 습관의 힘- 미루기 습관은 한 권의 노트로 없앤다.- 엄친딸, 엄친아 되는 지름길~ 하루 10분 노트 습관!- 직장 생활을 변화시키는 노트 메모 습관- 인생이 두근거리는 노트의 마법 등등이들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요즘 사람들이 종이노트를 현저하게 안 한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안 하는 이유, 못하는 이유를 우리는 어느 정도 압
노트의 요정
써니
2018.04.09 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