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문의 야생초사랑]봄기운이 곳곳에 번지고 있습니다. 움츠렸던 어깨도 펴지고 썰렁하기만 했던 가슴에도 뭔가 기다려지는 듯한 야릇한 기대감과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것만 같습니다. 하루하루는 별로 달라 보이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계절의 변화 따라 느낌도 생각도 함께 변하는 것을 보면 사람 역시 자연 속에서 자연 따라 살아가는 종속 개체임을 느낍니다. 자연과는 다른, 별개의 개체 같아 보이고, 다른 차원의 존재처럼 보이고, 자연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 봤자 자연의 한 구성체일 뿐 자연을 벗어난 별개의 존재물이 아니라는 것을
[ 함인희 엽서한장]“추운데 밭엔 뭐 하러 나온겨?” 바로 앞집 쌍둥이 할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옵니다. “가지치기도 해야 하고 유박(비료)도 얹어주려고 나왔어요.” 아직도 어설픈 블루베리 농사꾼은 한겨울에도 마음이 바쁘답니다. 가지치기 하랴, 거름 주랴, 꽃눈 솎아주랴, 덩달아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네요. 겨울 농한기라는 말은 아마도 논농사를 기준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조치원 동구 밖 과수원 길에는 복숭아 농장과 배 농장이 즐비한데요, 복숭아나무나 배나무는 가지가 굵고 단단한 데다 키도 제법 커서, 입춘 지나 본격적인 가지치기 철
[고영회 산소리]대한민국 헌법에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하고, 국회의원은 청렴의무가 있고,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냥 적었을 뿐이고 실제 그렇게 행동하겠다는 뜻은 아닌가 봅니다.국회가 할 일은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법안 처리 통계를 보니 21대 국회에서 2024.02.21. 현재 25,711건이 접수돼 9,319건이 처리되고 16,392건이 계류돼 있습니다. 지금도 법안은 계속 접수됩니다. 국회가 할 일이 저만큼 많이 쌓였습니다.다가올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대부분이 할 일을 버려두고
[ 허찬국 경제기행 ]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미식축구 시즌 최종 경기인 슈퍼볼(Super Bowl)이 열렸습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캘리포니아주에 있었던 인연으로 내가 응원하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s)와, 2년 연승에 도전하는 캔자스시티 치프스(KC) 간의 겨루기였지요. 그간 국내에서 경기 중계를 보기가 어려워 틈틈이 단편적 소식만 접하며 지냈었는데, 이번 유로 중계가 이루어지며 경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외국의 슈퍼볼 뉴스들은 스포츠보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이야기로 도
[ 박상도 맞장구]2002년 월드컵 때, 필자는 축구 중계 캐스터였습니다. 당시 방송사 중계 캐스터 중 막내였기 때문에 시청률 경쟁이 치열한 TV중계가 아닌 라디오 중계를 했는데 그 덕에 한국 대표팀의 경기를 중계할 수 있었습니다. 신나서 출장을 가는 필자에게 아내가 “제발, 집에서 축구 중계 볼 때처럼 흥분해서 아무 말이나 하지 마세요.”라며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아내는 제가 축구중계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왜냐하면,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마치 하나의 의식을 치르듯이 경건하게 TV 앞에 앉
[방석순 프리즘]랑데 알츠하이머(Landais Alzheimer) 마을의 시간은 어느 곳보다 천천히 흐릅니다. 급히 서둘 일도 서둘 사람도 없습니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이 오히려 마을 주민 모두에게 이롭기 때문입니다. 전직 농부인 프란시스 영감은 마을 중앙 광장의 상점에서 바게트, 음료 등 간단한 식품을 사곤 합니다. 그곳에서 신문을 얻어 읽기도 합니다. 지갑을 빠뜨리고 나온 걸 깜박 잊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상점에서 물건값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비안과 필리프, 두 할머니는 간단한 요리로 함께 식사하고, 나란히 앉아 커피
[권오숙 탐독]올겨울에는 폭설이 자주 내렸습니다. 덕분에 마음이 설렐 정도의 눈부신 설경도 자주 만났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에 펼쳐진 새하얀 세상에 감탄을 연발하곤 했습니다. 육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설레며 첫눈을 기다리고, 눈이 오면 소녀처럼 감상에 젖습니다. 음력 12월생인 나는 어린 시절 생일날마다 ‘겨울 아이’라는 생일 축하곡을 들었습니다. ‘겨울에 태어난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겨울에 태어난 사랑스런 당신은 눈처럼 맑은 나만의 당신~’맑고 깨끗함, 이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일 것입니
[김수종 2분산책]초등학생들이 카페에 출입하는 것은 이제 특이한 일이 아닙니다. 초등학교가 있는 동네 카페에서는 어린이들끼리 어울려 테이블을 차지하고는 빵이나 음료수를 주문하여 먹으며 노는 모습을 왕왕 보게 됩니다. 사실 옛날 사고방식으로 본다면 카페는 초등학생이 출입하기엔 사치스럽고 건전해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부유해진 사회환경이나 1자녀 가정이 보편화하는 추세에서 보면, 초등학생의 카페 비용을 크게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엄마들이 많을 것입니다. 더구나 자기가 먹을 몫을 자기가 돈을 내는 더치페이 방식이
[임종건 드라이펜]사흘 뒤면 내가 태어나 76번째 맞는 설(구정)입니다. 76년의 세월 속에서 설의 세시풍속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내가 맞았던 설을 크게 나누어 보면, 고향 집 부모님 슬하에서 맞았던 설과,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부모님 품을 찾아가던 설과,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뒤 성묘를 하기 위해 고향을 찾는 요즘의 설일 것입니다.설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말하자면 나 또래의 사람들은 대개 어린 시절 부모님 슬하에서 맞았던 설을 꼽겠지요. 이불 속에서 손을 꼽으며 설날을 기다렸지요. 먹을 것, 입을 것이 넉넉지 않았던 그 시절,
[ 방재욱 생명에세이]만성퇴행성질환인 ‘성인병(成人病)’에 대비해 ‘생활습관병(生活習慣病)’이란 말이 풍미하고 있습니다. 성인병은 나이가 들며 물질대사 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하는 20대 후반에서 30대부터 병증이 나타나기 시작해 중‧장년층에서는 일상적이고 가시적인 영향을 미치는 질병을 일컫지만, 현대 사회에서 성인병은 성인만이 아니 모든 연령층에서 다원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성인병을 더 직관적으로 표기하는 생활습관병은 식습관이나 운동 습관, 흡연이나 음주, 스트레스 대응 등과 같은 일상 습관에 따라 유발될 수 있는 질환을 일컫는
[방석순 프리즘]지난 연말엔 모처럼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았다며 모두들 즐거워했었지요. 그래도 올겨울 아직 큰 눈은 없었던 편입니다. 한겨울 설경을 마다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요. 눈이 내리면 누구나 반가운 마음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눈다운 눈을 처음 본 건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서울역에서였습니다. 고교 진학을 위해 처음 서울 땅을 밟았던 그날 지붕에 하얀 눈을 이고 선 남대문의 모습이 얼마나 웅장했던지요. 눈이라곤 내리다 녹아 사라지는 남녘에서 살다가 처음 마주한 서울의 설경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눈이 불러일으키는 광경은 지역에
[노경아 쉼표]#1. “야들아, 마카(모두) 창밖을 봐봐. 눈이 무습게(무섭게) 내린다야. 와~ 하마(벌써) 발목까지 빠지겠는데. 게따가(이따가) 연화산 올라가서 썰매 탈 아들은(애들은) 여여(여기여기) 붙어라!”“나! 근데 반장, 우리 집엔 비료포대가 읎싸(없어). 난 니 뒤에 붙어 타면 안 되겠나?”“간나야(계집애야), 그럼 니는 검은 봉다리(봉지) 깔고 타. 남자가 우타(어떻게) 간나랑 같이 타나?”“지랄한다, 지랄해~ 뭐뭐 머스마(남자애)가 여자랑 같이 타면 뭐이가(뭔가) 떨어지기라도 한다 하드나? 순덕이 저 간나 봉다리 깔
[허찬국 경제기행]바다는 여러모로 중요합니다. 지구가 5대양 6대주로 구성되어 있어 대륙 간 산물을 옮기려면 바다를 건너는 것이 불가피하지요. 철도, 고속도로 등으로 연결된 같은 대륙 위의 두 지점 간에도 해운이 더 편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 교역량의 약 80%(부피 기준, 가격 기준으로는 약 50%)가 바다로 이동한다고 추계되고 있습니다. 비싼 반도체 장비는 항공기로 이동하지만 원유, 곡물, 기타 화물은 약 10만5,000척의 컨테이너 화물선이 5대양을 종횡무진 운반하고 있습니다.작년까지 흑해(黑海)가 문제의 바다였는데 올해에
[고영회 산소리]국회에서 예산 심의가 끝나자마자 무슨 예산 얼마를 확보했다는 내용으로 펼침막이 걸렸습니다. 주로 현역 의원들이 자기 치적이라고 자랑합니다. 모두 돈을 어디에 쓰겠다 하는데, 어디에서 벌어오겠다는 것은 없습니다. 저렇게 쓰기만 해도 나라 살림살이가 돌아갈지 참 걱정스럽습니다.정치는 국민이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기본일 것입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는 것이지요.누구나 과학기술은 경제를 살리는 밑바탕이라 합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술개발 성과가 나오고, 이런 성과는
[박상도 맞장구]고(故) 이선균 씨 사건을 보며 '유명한 것이 과연 좋은 것이기만 할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에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협박을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성공한 연기자의 안타까운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유명세(有名稅)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유명세는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탓으로 당하는 불편이나 곤욕을 속되게 이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명세는 보통 ‘치르다’라는 표현과 함께 쓰여서 “스타 아무개가 유명세를 치렀습니다.”라는 식으로 문장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
[정숭호 이 말 저 말]‘저렴식’을 찾아 먹습니다. 저렴식을 파는 식당에 가면 그 집 메뉴와 가격을 사진 찍어 옵니다. 엊그제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 연한 고기 듬뿍 들어 있는 진국을 소주까지 곁들여 먹은 광화문의 설렁탕집에서도 벽에 걸린 메뉴판을 찍었고, 그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들른 동네 우동집에서도 찍어 왔습니다.나와 친구들이 좋아하는 ‘저렴식’은 ‘저렴(低廉)한 음식’입니다. 소금을 덜 넣어 건강에 좋다는 음식은 ‘저염식(低鹽食)’, 우리가 찾는 음식은 값싼 ‘저렴식’입니다. 아직은 나와 친구들만 쓰고 있는 이 말은, 저렴식
[김수종 2분산책]“가라 옛날이여오라 새날이여나를 키우는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12월이 끝날 무렵에 외국에 사는 고교 동창생 친구가 보내온 카톡 연하장 제일 끄트머리에 적혀있는 이해인의 ‘12월의 시’ 마지막 구절입니다. 사실 나는 그런 시가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요즘 시간의 흐름에 대한 상념이 많아진 탓인지 울림이 컸습니다.친구는 40년 전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단짝도 아니었고 외국에서 사니 만날 일이 거의 없는 사이입니다.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나올 때 어울려 식사하는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권오숙 탐독]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건 사고 소식을 들으며 마음이 몹시 심란합니다. 오랫동안 영문학 고전들을 공부하면서 많은 작가들이 지닌 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염세주의나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염세주의와 혐오감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사건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고전 작가들의 작품 속 악인들은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그와 달리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 사고들은 불특정 다수의 삶을
[방재욱 생명에세이]2023년 마지막 날 가족들과 함께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를 마감하고 맞이한 2024년 새해 첫날 아침 ‘오늘은 남은 생애의 첫날’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지난 1년 동안 매일 적으며 분기별로 정리해온 '2023-기록'을 살펴보았습니다.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잘 적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적자생존’을 기반으로 그해에 실행하고픈 지표를 정해 실행 여부를 매일 기록해오고 있는데, 계묘년의 주요 지표는 ‘책 읽기’, ‘절주(節酒)하기’, ‘만보 걷기’ 그리고 ‘지인들 만남’이었습니다. 책 읽기는 하루에 50쪽 이상 독
[함인희 엽서한장]다른 사람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자신에게만은 큰 의미로 다가오는 일들이 있습니다. 드디어 학생들 성적표를 제출하면서 시작된 제 인생의 마지막 겨울방학이 바로 그런 일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퇴임을 한 학기 앞둔 지금까지 참으로 오랫동안 방학이 있는 삶을 살아왔네요.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 4년, 박사학위 받고 시간강사 시절 거쳐 구사일생 교수로 여기까지 왔으니, 58년이나 방학을 누려온 셈입니다.학생들에게는 줄곧 학기를 잘 보내는 것 못지않게 방학을 어찌 보내느냐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