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세 살 먹은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했다. 이는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이라면 상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일반적으로 중국 역사에서 3대 간신을 꼽으라면 당의 이임보(李林甫)와 남송의 진회(秦檜) 그리고 명의 엄숭(嚴嵩)을 꼽는다.

이임보(李林甫:?~752). 호는 월당(月堂). 산시(陝西:섬서) 출신. 당나라 현종 말기 별다른 학식이나 재능 없이 오직 아첨으로 재상에 올랐던 인물. 황제의 신임을 배경으로 전권을 휘두르며 조정의 기강을 크게 문란케하고 신료들이나 백성들의 충언이나 간언이 황제에게 전달되지 못하도록 언로를 막아 당의 쇠퇴를 가져온 인물로 평가 받음. 겉으로는 감언을 일삼으며 친한 척 하지만 뒤에서는 음해와 모함을 일삼아 ‘입에는 꿀이 있고 뱃속에는 칼이 있다’라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의 주인공.

진회(秦檜:1090~1155). 자(字)는 회지(會之). 강녕(江寧:지금의 북경)출생. 남송 초기의 정치가로 남침을 계속하는 금나라에 대해, 중국을 남북으로 나누어 영유하기로 합의하고 금에 대하여 신하의 예와 세폐(歲幣)를 바치기로 합의한 장본인. 특히 철저한 항전을 주장한 악비(岳飛)를 죽음으로 몰면서 민족주의, 이상주의를 내세운 후대의 주자학파로부터 민족의 반역자로 낙인찍힌 사람.

엄숭(嚴嵩:1480~1567). 자(字)는 유중(惟中). 장시성(江西省) 출생. 명나라 세종 때의 정치가. 타고난 아첨으로 예부상서, 내각대학사를 거쳐 수석대학사를 역임하며 조정의 전권을 휘두름. 아들 엄세번(嚴世藩)과 함께 사리사욕을 위해 매관매직을 일삼고, 탐욕과 불법행위를 탄핵하는 중신들을 교묘한 수법으로 누명을 씌워 숙청함.

우리가 생각하는 간신은 그 전형이 있다. 그들은 태어 날 때부터 간신으로 태어나, 튀어나온 광대뼈에 깡마른 얼굴, 찢어진 눈에 염소수염을 달고 간사한 목소리와 아첨의 웃음을 흘리는 사람들이다. 이임보와 진회, 엄숭을 떠 올릴 때면 우리는 의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우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최근 이들에 대한 또 다른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영국인 데니스 트위체트(Denis Twitchett)가 저술한 ‘케임브리지 중국사’의 ‘수당편’에는 뜻밖에도 재상 이임보를 매우 노련하고 치세에 재능을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이임보의 숙적으로 그의 사악한 행적을 황제에게 간하다가 이임보에 의해서 좌천된 장구령(張九齡)에 대해서는 속이 좁고 사소한 원한도 반드시 갚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진회는 지금도, 천년을 넘게 악비 사당에서 부인과 함께 쇠사슬에 묶여 꿇어 앉아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부상에 따른 ‘다민족 일체론’의 영향으로 그에 대한 평가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악비가 전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강경론자였던데 반해 진회는 더 이상의 희생을 막으려는 화평론자였고, 노련하고 사려깊은 대정치가였다는 것이다. 악비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진회의 술수였다기보다는 차라리 무능하고 이기적인 송 고종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최근 대두되는 평가다.

엄숭 또한 환경이나 세태 파악에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한 정치가로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시문에 능통하여 관계에 진출한 후, 도교에 심취한 명세종의 심중을 누구보다 잘 헤아린 신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임보는 무려 19년 동안이나 재상의 자리를 지켰다. 진회는 재상으로만 24년간을 있었다. 엄숭 역시 무려 20년이나 전권을 장악하다가 87세의 고령이 되어서야 정치무대에서 물러났다. 그들은 재직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시기와 간언을 물리치고 당대의 최고 권력자로부터 최고의 총애를 누렸다. 그들은 모든 일을 철저하고 완벽한 계획으로 이중 삼중의 그물망을 쳐 해결해 나갔다. 자기가 싫어하는 인물이 있어도 절대로 그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고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한방에 처리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관직의 경영’면에서는 천부적인 사람들이었다.

본인 스스로 간신의 DNA를 타고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간신을 배워서는 안 된다. 단,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조직을 위해 언제나 옳고, 다른 사람들의 윗사람에 대한 태도가 대부분 비굴한 아첨으로 생각되어 역겨운 사람들은, 우선 자기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기분이나 생각보다는 내 기분이나 생각을 우선하고,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주변 상황을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들은 간신들의 상황 판단 능력과 영민함을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최소한, 보다 높고 넓은 세계에서 꿈과 포부를 펼치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권력자의 성격과 상황을 분석하고 가장 적절하게 대처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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