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 中國이야기]

2004년 8월 중국 광둥성에서 연인들이 덩샤오핑 광고 게시판 앞에 서있다. 이 광고판은 덩샤오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일정기간 기여하다가 떠나야 하는 것이 인생의 순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있던 조직이나 직장 생활을 언젠가는 그만둬야 하고, 이는 세월이 가면 나이를 먹고 늙어 가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자의든 타의든 조직이나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비록 자랑스러운 일은 아닐지 모르나 그렇다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무릇 높은데서 떨어지면 더 아픈 것처럼, 소위 한 때 잘 나가고 대단한 지위에 있던 사람들이 더 자리에 연연하고 애착을 가져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를 본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산다는 것이 생각보다 더 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바야흐로 백세 시대라고들 한다. 평생직장은 없어졌는데 살아야할 시간은 더 길어진 시대가 온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환경의 변화나 인생의 부침이 예전보다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추모 열기가 뜨겁다. 작년 2013년은 마오쩌둥의 탄생 120주년이었고 금년 2014년은 덩샤오핑의 탄생 110주년이다. 마오쩌둥은 1893년 12월26일, 덩샤오핑은 1904년 8월22일 태어나, 마오쩌둥이 1976년 83세, 덩샤오핑이 1997년 93세까지 살았다. 덩샤오핑이 정확하게 10년을 더 살았다. 덩샤오핑의 고향인 쓰촨성 광안(廣安)시는 물론, 지금 중국 전역이 그를 기념하기 위해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백년소평(百年小平)으로 불리며, 20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위인으로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머리속에서 이직 지워지지 않고 있다.

덩샤오핑은 극도의 험한 정치판에서 세 번을 실각했다가 기적처럼 다시 세 번을 살아난 사람이다.

그의 첫 번째 실각은 1933년 중국 공산당에서 소련파와 마오쩌둥파(毛澤東)의 당권경쟁 중 반주류였던 마오쩌둥을 지지하다가 실각한 것이다. 그러나 대장정 도중 마오쩌둥의 노선이 옳다는 것이 판명되어 마오(毛)가 세력을 잡자 복권하게 된다.

두 번째 실각은 공산정권 수립 후 대약진 운동 등으로 마오쩌둥 노선과 갈등을 빚게 되면서 부터이다. 마오 측근들에 의해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이때 홍위병(紅衛兵)들로부터 반모주자파(反毛走資派)의 수괴라는 비판을 받고, 장시성(江西省) 시골의 트랙터 공장으로 쫒겨 나고 만다. 하루아침에 모든 권력을 잃고 그는 유배지에서 거의 연금 상태로 보내야 했다. 이 정도면 사실상의 정치적인 사형 선고지만, 덩샤오핑은 언제일지 모를 재기를 기약하며 이 기간을 묵묵히 버텨냈다.

1973년 3월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추천으로 복권되어 국무원 부총리가 되었으나, 1976년 1월 저우언라이가 죽자 마오쩌둥의 추종자인 4인방(四人幇)에 의하여 다시 세 번째로 권좌에서 밀려난다. 그해 9월 마오쩌둥이 죽고 화궈펑(華國鋒)이 저우언라이 계열의 노간부인 예젠잉(葉劍英), 특무부대장인 왕둥싱(汪東興)과 결탁하여 4인방을 숙청하였으나 화궈펑의 힘만으로는 정국수습이 어려웠으므로 예젠잉의 종용으로 1977년 7월 덩샤오핑은 다시 복직되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중국을 건설해 낸다.

이렇듯 덩샤오핑은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세 번을 밀려났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보란 듯이 그때마다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서곤 했다. 물론 여기에는 그의 집념이나 대세를 읽는 눈 등 탁월한 개인의 능력이 우선 되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를 믿어주고 받쳐 준 많은 사람들이었다. 마오(毛)에 대한 충성심과, 실용주의에 대한 소신, 처한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넉넉함 속에 그의 주변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이 모이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그가 먼저 신뢰하고 따르고 베풀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는 같은 조직에서 평생을 있는 시대가 아니다. 싫든 좋든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고 새롭게 극복하여 다시 일어나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다시 일어나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다시 일어나도록 손을 잡아주는 주변의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내가 살아가면서 내가 진심으로 믿어주고 내가 먼저 베풀며 내가 먼저 배려한 사람들일 수 밖에 없다.

나의 손을 잡아줄 내 주변의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살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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