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 中國이야기]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언젠가 모 일간지에 원로 국어학자의 말을 인용해 ‘한자(漢字)는 우리 글이다’라는 기사가 났었다. ‘한자는 중국 문자가 아니라 우리 조상 동이(東夷)족이 만든 글자이며 중국 학계에서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데 우리만 모른다’라고 이 학자는 주장한 모양이다.

이에 중국 네티즌들이 발끈해 ‘중국 문화는 왜 늘 한국에 당하는가’라고 하며 뜨거운 논쟁이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다. 특히 한국이 공자와 이백(李白), 서시(西施: 춘추시대말기 월나라의 미인)등 유명인의 국적과 활자인쇄술, 혼천의(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여 천문시계 역할을 하였던 기구)의 발명, 단오절, 중의학(中醫學), 풍수 등과 같은 문화유산도 모자라, 급기야는 한자의 소유권에까지 시비를 걸고 있다고 그들은 흥분했다. 이 우주와 지구도 한국에서 발명했을 것이라는 비아냥도 함께였다.

‘한자가 우리 글’이고 ‘공자가 우리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삼단논법적인 추론에 기인한다. 한자나 공자는 동이족과 관계가 있다. 동이족은 우리의 조상이다. 따라서 한자는 우리 글이고 공자는 우리의 조상이다. 그렇다면 동이족이 우리의 조상인가?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고고학, 역사학 등 인문 과학은 물론 기상학, 지질학 등 자연과학과 함께 풍부한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한다. 사료(史料)와 물증이 분명한 근세사야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겠지만 수천년 전의 일, 자료가 거의 없거나 극히 제한되어 있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역사라는 것은 후세 사람들의 상상력에 상당부분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약 7000년 전에서 1만년 전의 황하 유역에는 이미 농경부락이 출현했다. 그리고 이 중원에서 전해져 오는 삼황오제의 시대는 이러한 상상력에 기인한 시대이다. 황제(黃帝)와 염제(炎帝)의 싸움, 황제와 치우(蚩優)의 탁록지전 등은 당시 황화 유역에서 여러 이민족들간의 주도권 싸움이 치열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한족인 황제가 동이족인 치우를 물리 쳤다는 것은 일단 황하의 중심에 한족이 자리 잡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동이(東夷)’라는 것은 서융(戎), 남만(蠻), 북적(狄) 등의 명칭과 함께, 특정한 민족 개념이 아니라 방위 개념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즉, 한족에 대한 상대적 개념의 동방 이민족의 범칭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족의 범위가 황하 일부 지역으로 제한되어 있었을 때에는 동이족의 범위가 산둥(山東)이나 허베이(河北) 등을 포함하고 있었고, 한(漢)나라 이후 이들 지역이 중화 문명에 흡수되면서 ‘동이’의 개념이 만주와 한반도, 일본으로 좁혀 지게 되었다는 설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역설적으로 한족이나 동이족,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 뿌리의 경계선이 또한 분명치 않음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한 2005년 나는 중국에 있었다. 당시 내 주변의 많은 중국 사람들이 ‘왜 단오절이 한국의 문화유산인가’라며 항의 섞인 불만을 거침없이 토로했었다. 나와 아주 절친했던 중국 거래선 사장은 나와의 관계를 잠시 잊었는지 ‘그러니까 공자까지 한국 사람이라지’라며 그 답지 않게 흥분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 ‘한자(漢字)가 우리 글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의 일그러질 얼굴 모습이 재미있을 것 같다. 결국 중국은 2009년 우리의 ‘단오제’와는 다르다며 그들의 ‘단오절’을 조선족 농악무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농악무는 우리가 아니라 중국에 의해서 지정되었다. 2011년6월 중국정부가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 우리 정부는 혼신의 힘을 다해 2012년 12월6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성공한다. 이때에도 일부 중국 측의 항의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지금 중국은 ‘한국인이 이처럼 중국과 각종 전통문화 소유권을 놓고 다투는 까닭은 한국 문화 자체가 중화민족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계승자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비꼬고 있다고 기사는 보도했다.

사실 나는 16년 동안을 중국에 살면서 ‘우리에게만 있고 중국에는 없는 것’을 찾지 못했다. 우리가 얘기하는 중국의 실체는 모호하기 그지없다. 지금의 중국과 과거의 중국은 그 근본부터 다르다. 중국 역사에 ‘중국’이라는 나라는 애초에 없었고 단지 대륙의 중심에 있다고 그들과 주변국들이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 수천년을 더불어 같이 하면서 국가라는 경계는 수 없이 변화했고 그 밑으로 민초들은 서로 섞여 갔다.

한·중간의 문화적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중국을 더 이해하고 더 가깝게 다가가야 하는 이유가 된다. 또한 이것이 우리에게 미국과 중국이 다른 분명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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