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 中國이야기]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이젠 내가 백(白)을 잡아야겠지?’ 바둑 두 판을 내리 진 나에게 상대방인 중국 친구가 내 앞에 있던 백돌을 거침없이 자기 앞으로 가져가며 한 얘기이다.

그는 당시, 나와 가장 많은 거래를 하고 있던 철강 회사의 회장이었다. 지금은 정계(政界)로 진출해 공산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중 한 사람이 되었는데, 우리는 우연한 기회에 서로 바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각별한 바둑 친구가 되었다. 나도 바둑을 좋아하지만 그는 정말 바둑 광이어서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바둑으로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바둑실력에 대해서 이실직고 하자면 그의 바둑 실력은 나보다 못했다. 대략 두 점 정도를 접어주면 엇비슷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상수가 백을 잡는 관례대로 내가 백(白)을 잡고 바둑을 두기 시작했는데 어쩌다가 내가 두 판을 거푸 지자 바로 본인이 백(白)을 잡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나에게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었다. 비즈니스 관계는 물론이려니와 향후 중국 정계의 거물로 클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의 꽌시(關係:관계)는 나로서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대다수가 그렇듯이 그가 남에게 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는데 있었다. 사실 바둑뿐만 아니라 어떤 승부에서도, 져서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는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고 승부욕 또한 남달라 승부에 대단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져 주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다보면 습관이 된다. 초기 압도적이었던 나의 승률은 점점 나빠졌다. 이러한 져주기 작전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출장만 가면 바둑 두자고 조르던 그가 어느 날부터 바둑 두자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궁금했던 차에 그의 수하 직원에게 전해들은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함 선생으로부터는 더 이상 바둑을 배울 것이 없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오늘의 중국과 그들의 속마음을 이렇게 분명하고도 간결하게 보여 주는 예를 찾지 못했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는 오늘날까지 중국 외교 정책의 근간이 되어 왔다. 또한 이 말은 매사에 신중하고 속을 잘 들어 내지 않는 중국 사람들의 특성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은 경제 대국을 지향하는 그들의 발전 전략을 치밀하고도 주도면밀하게 추진해 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속마음과는 상관없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서구 열강을 비롯한 그 누구의 어떤 지식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은 배울 것이 있을 때까지 뿐이다.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90년대 우리의 많은 기업들은, 당시 중국의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한 물량 공세에 중장기적 치밀한 전략 없이 투자했다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되자 냉정하게 등을 돌렸던 혹독한 경험들을 갖고 있다.

주변에서 사업에 실패했거나 취업을 못한 경우 중국에 가면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때마다 나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곤 한다. 그 ‘무엇’은 중국 사람이나 중국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회사라면 남들이 갖지 못한 브랜드 파워나 기술력이 될 수 있고, 개인이라면 뛰어난 중국어 실력이나 중국에 미래를 건 뜨거운 열정일 수도 있다. 그것은 최소한 오랜 동안의 준비와 각고의 노력 끝에 우러나온 진정한 ‘무엇’이어야 한다.

중국은 더 이상 앞날이 없는 사람들의 막연한 도피처가 아니다. 남들이 나에게서 배울 것이 없다면 그것은 얼마나 비참한가? 내가 만일 진정한 실력으로 그와의 바둑에서 지고 그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라고 나와 바둑 두기를 거절했다면 나는 얼마나 참담했을 것인가?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진정으로 더 넓은 세상을 필요로 할 때, 중국은 인생의 목표로서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지금 중국에서는 그들로부터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라고 냉정하게 문전박대 당하는 사람과 기업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중국에만 해당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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