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의 자유세상 3.0]

▲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오피니언타임스]한국사회는 이성(理性)보다 감성(感性)이 앞서는 사회이다. 한국인 의식의 기저(基底)에는, 샤머니즘(무교·巫敎)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한다. 심지어는 불교-기독교 같은 외래종교가 들어와도, 우리 땅에선 샤머니즘화되는 경향도 있다.

이런 샤머니즘적 감성은 긍정적 방향으로 작동하면 월드컵 거리응원처럼 신명나는 에너지로 승화될 수도 있지만, 부정적 방향으로 흐르면 광우병 난동처럼 파괴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정신은 아직 미성숙한데 몸은 훌쩍 커버린 철부지 사춘기 소년과 같은 공허한 정신세계를 채우기 위해 사이비종교와 샤머니즘의 부정적 요소가 결합돼 사회 전반적으로 싸구려 푸닥거리가 만연할 수 있는 위험성이 상재(常在)하고 있다.

그러기에 한국사회는 선동에 취약한 사회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정신과 시민사회는 미성숙한데 물질적으로 풍요해지고 욕구는 커진 상태에서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이 생겨나니 무책임과 선동은 극에 달한다. 그래서 인터넷 공간은 언제나 허구에 기초한 선동 그리고 분노와 증오로 넘쳐난다. 어느 나라에서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심하다. 숨 가쁜 변화 속에서 한국사회는 성숙할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 곧이어 닥친 정보화 시대에선 가상공간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공간이 창출되면서 증오의 에너지가 분출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해방공간’이 갑자기 생겨났다. 오프라인에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성숙한 행동을 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정신의학자들에 따르면 분노의 성향은 어린 시절 심리적 상처와 좌절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한다. 자기 정체성에 문제가 있을 경우 분노가 분출하고 흑백논리적 사고를 갖기 쉬운데, 이런 경계성 인격 장애인들은 어린 시절 정서적 상처의 경험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엄청난 경쟁사회이다.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모든 면에서 승자와 패자를 확연히 갈라놓는 면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덤비는 공부만 하더라도 소위 ‘승자’는 극소수만이 될 수 있었다. 또한 한국사회의 발전이 워낙 격변적인 스피드로 이뤄져 전체적으로는 평균적인 생활 여건의 극적인 상승을 가져왔지만, 상대적인 박탈감과 패배의식을 낳기도 했다. 서울대 전상인 교수는 한국 사회가 ‘헝그리 사회’에서 유례없는 ‘앵그리(angry) 사회’로 변환됐다고 설명한다.

과도한 인터넷 사용은 인지(認知)를 담당하고 충동을 절제하는 전두엽과 전(前)전두엽의 기능을 약화시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괴담과 선동에 취약하게 만든다. 일부 청년들은 SNS에서 천방지축 행동하며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한다. 저명한 IT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가 얘기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출현이 우려된다(카 “생각하지않는 사람들: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청림 2010). 바로 중우(衆愚)정치의 전형적 현상이다.

인터넷 토론공간에선 이성이 마비된 괴담과 음모론이 주류를 이룬다. 무슨 사건만 생기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너도나도 ‘전문가’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광우병 전문가’가 됐다가 최근에는 ‘군함 좌초 전문가’로 변신했다. 현역장교, 교수 등 전문가를 사칭해 올라오는 ‘폭로’나 ‘권위 있는 주장’들은 사실 무직자, 배달부, 심지어는 중·고생의 행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한국은 정신적 무정부 상태를 맞고 있다. 우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태국처럼 사회 기강이 무너진 나라를 보면서 걱정하지만, 이미 온라인 가상공간에선 한국도 기강이 무너진 지 오래다. 가상공간에서 배태된 이런 분위기가 오프라인 실제 사회로 쉽게 전이(轉移)되는 것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사회통합 없이 한국 사회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상공간에서 심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길 거부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처할 때이다.

어느 문명국가에서 무슨 큰 일만 생기기만 하면 우리처럼 온갖 괴담과 선동이 이토록 난무하는가? 가두시위에 애기들을 실은 유모차를 앞세우는 몰지각한 행동이 버젓이 행해지는 사회를 정상이라 할 수는 없다. 이번에도 “유모차 시위”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슬픔을 절제하지 못하고 분노를 조장하는, 우리 사회의 약점을 이용하는 악습(惡習)부터 먼저 타파해나가야 한다. 우리가 언제까지 사이비종교집단의 저질 푸닥거리와 다름없는 행태를 반복하고 살아야하는가.

선진 국가에선 국가적 재난 앞에선 일단 단결하고 수습을 하고나서 반성과 개선이 이루어진다. 우리 사회는 거꾸로 마치 “정권타도”의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날뛰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다행히 여러 번 “예방주사”를 맞아서 인지, 이런 선동은 예전같은 파괴력은 갖지 못한다.

세월호 사건 보도를 마치 24시간 스포츠 중계방송하듯 한 방송을 보자. 재난보도 방송에 관한 모든 원칙을 어긴 언론들의 선정성을 넘어선 선동적 태도는 사이비 종교집단 수준 아니었나? 방송심의 기준의 재난보도 준칙은 왜 존재하는가. 자극적 화면과 내용을 내보내지 말아야하는 가이드라인을 어긴 것은 애교에 해당된다. MBN은 선동적 괴담들을 버젓이 방송했다. JTBC에선 “다이빙 벨”이란 기구가 만능이라도 되는 듯이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내보내서 사태를 호도했다. 이렇게 부끄러움을 모르는 방송언론에는 철퇴가 내려져야한다. 재난 때마다 나타나 방송에서 요설을 하며 구세주처럼 행동하는 어느 인사를 보면, 선무당이 연상되지 않는가.

우리 정신문화의 취약성을 어떻게 타파하고 시민사회의 숙성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할 시점이다. 국가적 재난을 정치투쟁의 기회이자 수단정도로 악용하려는 후진적 정신 상태를 극복해야한다.

또한 문창극 총리후보 지명자를 둘러싼 방송과 언론의 무책임도 지적돼야한다. 문후보의 교회에서의 종교적 간증을 악의적으로 편집하고 왜곡해서 버젓이 방송한 KBS나 이것을 무분별하게 확대재생산한 언론들 거대포털들의 대대적인 자기반성이 요청된다.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여론조작과 거짓선동은 친일프레임으로 재미를 본 세력들이 자주 애용하고 있다. 이번 문 후보 역사관 논란은 조직적으로 생성돼 야당과 일부 언론이 무비판적으로 확대 재생산 측면이 크다 “친일 매카시즘”이라 명명될 수 있는 이런 집단 광기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번 사태에는 KBS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거대포털의 무분별한 유포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를 방치한 채 각성하지 않으면 우리는 야만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이 글은 오피니언타임스과 자유경제원(www.cfe.org)의 제휴를 통해 싣는 칼럼입니다.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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