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 中國이야기]

 

[오피니언타임스 함기수 중국이야기]변화에 대한 여러 정의 중에서 나는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것에 가장 공감한다. 그는 ‘미래가 우리 생활에 침투하는 과정’이 변화라고 말했다.

1987년 4월 홍콩 지사로 부임한 나의 가장 큰 미션(Mission)은 중국과의 직교역을 성사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 대륙은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모든 것을 은폐하고 있었던 소위 ‘죽(竹)의 장막’은 적어도 우리 당대(當代)에는 걷히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만리장성이나 상하이 임시정부 같은 얘기들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치부되던 시절이었다.

그리하여 중국산 농산물 수입이 주 업무였던 나는 수입되는 양의 전부를 홍콩 회사로부터 간접적으로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아직 국제 시세에 밝지 못했던 중국으로부터의 막대한 이익은 대책 없이 홍콩 중간상들로 흘러 들어갔다. 여담이지만 한·중 간의 직교역이 성사되면서 가장 피해를 본 사람들은 홍콩 무역상들일 것이다.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주로 수입했던 것 중에, 가축 사료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사용되는 박류(粕類), 즉 식물성 기름을 짜고 난 찌꺼기들이 있었다. 우리가 깻묵이라고 얘기하는 것인데 당시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일부 비료로 사용되거나 또는 그냥 버리는 형편이어서 홍콩 상인들이 이들을 수집해 폭리를 취한 것이 그 예이다. 콩깻묵 같은 것은 1~2만 톤 단위로 수입됐는데 한국과의 거래 초기에 톤 당 100불 이상을 남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고 홍콩 거래선이 실토한 적이 있다.

어쨌든 나는 부임하자마자 홍콩 섬 중심에 위치하고 있던 화륜대하(華潤大廈)를 매일같이 찾았다. 이 건물에는 중국 정부의 모든 대표부가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모든 중국 회사는 정부 기관에 속한 국영 기업이었으므로 그들 또한 이 건물에 위치했다. 지금은 셀 수 없을 정도의 개인 업체들이 다양한 형태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초기의 대(對) 중국 사업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중국의 무역회사는 산업별로 창구가 일원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직물관련 무역은 중국 방직품(紡織品) 진출구 공사, 곡물이나 식품은 중국 양유식품(糧油食品) 진출구 공사, 화학제품은 중국 화공(化工) 진출구 공사에서만 취급했다. 따라서 중국과의 무역을 위해서는 관련된 품목에 따라 한 회사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옥수수나 수수 같은 곡물과 관련해서는 양유식품 진출구 공사를, 대두박(大豆粕)같은 사료부원료는 토축산(土畜産) 진출구 공사를 상대했는데,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실로 냉담했다. 문전박대 그 자체였다.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들은 줄기차게 찾아가는 나를 줄기차게 만나주지 않았다.

‘미래가 우리 생활에 침투하는 과정’이라는 그 변화는 새벽의 여명처럼 불현듯 우리에게 다가 오는 것임을 나는 당시의 경험으로 느꼈다. 우리는 새벽 운동이나 이른 약속으로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어둠 속에 집을 나서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깜깜하던 주변이 어느 사이 훤하게 밝아져 있음을 경험했을 것이다. 우리와 중국의 관계는 그렇게 새벽의 여명처럼 불현듯 우리에게 다가 왔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초 어느 날, 그러니까 내가 홍콩에 부임해서 반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 그렇게 매몰차던 중국 회사 직원이 우리 사무실을 찾아 왔다. 그는 같이 할 사업을 의논해 보자는 말을 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중국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대륙 방문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최소한 우리 세대에는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았던 그 투박한 장막이 걷히고 우리는 그렇게 만리장성과 상하이 임시정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여년 남짓,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이 엄청난 변화는 실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변화를 예측하고 이 변화에 대해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미래는 반드시 우리 곁으로 올 것이고 변화는 그 미래가 지금의 우리에게 침투하는 과정이라고 석학은 우리에게 이미 말했다. 남북통일이 언제 어떻게 우리 앞에 전개 될지 모른다. 통일된 한반도가 만주와 연결되어 중국과 한국이 적어도 경제적으로 같은 시장이 되어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유럽 쪽으로 뻗어 나가는 변화, 그 변화는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빨리 올지도 모른다. 변화는 아침의 여명과도 같이 불현듯 우리 옆에 닥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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